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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가영 Mar 29. 2024

임신기간의 황금기

새로운 취미 캠핑, 임산부의 유일한 진료 침술

 임신 25주를 넘겼다. 배가 꽤 많이 나와서 이젠 어딜 가든 임산부 티가 났다. 옷차림은 원피스나 펑퍼짐한 편한 스타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무릎과 발바닥이 아프고 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진 않았다. 때때로 꽤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 행동이 둔해졌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정기가 지나고 나면 불편한 게 덜해져서 다니기 편하다고 하던데 그야말로 임신기간의 황금기를 맞아 날아다녔다.


 장롱면허로 운전을 안 했었는데 남편에게 운전을 배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운전이 꼭 필요해 보였다. 주말마다 차를 끌고 한적한 곳으로 가 운전연습을 했다. 며칠 하니 익숙해져서 바로 혼자 운전을 하고 다녔다. 그간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급정거나 사람들이 많이 탈 때마다 불안하고 불편했었다. 임산부석 앞에 서 있어도 임신초기엔  티가 나지 않으니 임산부석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앉아있는 분께 '저 임산부니 비켜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버스를 이용하던 출퇴근을 차로 하기 시작하면서 불편함이 사라졌다. 하지만 움직임이 줄어서인지 급격하게 살이 찌는 듯했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새로운 취미로 캠핑을 시작했다. 남편과 둘이 이런저런 장비를 챙겨가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는 소소한 어른들의 소꿉놀이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무 데도 다니지 못한다고 임신기간에 많이 놀고 다니라는 임신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우린 1~2주에 한 번씩 캠핑을 떠났다. 


 주말마다 여기저기 다니고 즐기면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답답함이 가셨고 더불어 우울감도 해소되었다. 물론 조금 예민하긴 했지만 남편은 강약중간약으로 뛰는 나의 기분에 잘 대처해 주었다. 


 캠핑은 생각보다 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주말이 기다려졌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것저것 캠핑용품을 사는 재미에 들떴고 둘이 힘들게 텐트 치고 들어가 누워서 하늘도 보고 가을의 냄새도 맡았다. 더없이 행복한 취미였다. 캠핑을 다니는 덕에 일을 줄여 주말은 온전히 다 쉬게 되었고 조바심 내며 하던 일에도 여유가 생겼다.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일은 없어졌고 캠핑을 다니며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좋아졌다. 임신기간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1위가 캠핑이란 취미를 갖게 된 것이다.


 날이 갈수록 배는 점차 불러왔다. 많이 놀러 다니고 많이 먹어서 그런지 한 달 새 3kg이 늘었다. 완전히 배가 만삭이 되기 전이 허리가 들어간 만삭배라서 28주쯤 만삭사진을 찍기로 했다. 만삭 사진 원본을 받은 나는 충격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간 애써 외면해 오던 현실을 마주한 나는 적나라한 원본 사진에 적잖은 당황을 했다. 엄청난 팔뚝살에 흘러내릴듯한 배. 만삭과는 별개로 온몸이 퉁퉁해져 버린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다. 살이 너무 찐 거 같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당연하게 찐 건데 왜 그러냐고 여전히 이쁘다고 말해 주었다. 


 울퉁불퉁한 살들로 둘러싸인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인 만삭사진은 깔끔하고 날씬한 팔다리로 변신시켜 수유등이 되었다. 잘 관리한 임산부 같았다. 출산을 하고서도 살이 다 빠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 살이 그대로 빠지지 않고 나와 평생을 함께 하려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연예인들 보면 출산 후 몸도 빨리 회복하고 몸매도 빠르게 회복하던데 내 주변은 출산 후 90%가 살이 빠지지 않았다. 나도 그 90%에 속해 이대로 살에 파묻힌 삶을 살아야 하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원본 사진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다.


 출산 후 다이어트를 매일밤 검색하고 걱정하던 28주 어느 날 새벽. 여느 날처럼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등과 허리에서 '뿌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게 디스크가 터진 건지 운동을 안 하고 몸이 둔해져서 근육이 놀란 건지 살이 쪄서 어디 갈비뼈라도 부러진 건지 오만오천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을 소리 질러 깨웠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을 보고 나도 남편도 놀라서 잠이 확 달아났다.


 다음날 새벽. 남편은 회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하루 휴가를 냈다. 새벽 내내 119를 부르겠다고 호들갑 떨던 남편을 애써 침착하라며 달래고 아침 9시에 병원문 열면 한의원으로 가자고 설득했다. 누워있다가 일어났는데 뼈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새벽 내내 우리는 임산부가 할 수 있는 치료에 대해 검색을 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였다. 하지만 이대로 내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을 수는 없으니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것이 임산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가 침술이라는 것이었다. 약도 엑스레이도 모든 게 안되는데 침술은 가능하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한의학과 친하지 않았다. 양의학과 더 친숙했지 한의원은 어르신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하지만 임산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한의원에 도착해 임산부라는 걸 고지하고 침대에 누워 침술을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침술이 신기하고 이런다고 나아지는 게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따끔거리는 걸 참으며 침술을 받았다.

효과는 생각 그 이상이었다. 침술 직후 점점 통증이 가시더니 침술 5시간 만에 불편한 게 사라졌다. 이날부터 한의원을 자주 들락거리며 침술러버가 되었다. 게다가 임신 중 한의원은 임산부 할인 혜택이 있어서 진료비가 4000원 정도였다. 나와 한의학이 이렇게 잘 맞는지 몰랐다.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몸은 하루하루 점점 더 무거워져 가고 불편한 곳도 점점 많아졌다. 배가 커질수록 '아가야 빨리 나와라'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 임산부들끼리 쓰는 말이 있다.


"빨리 방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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