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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콤보 Sep 14. 2021

운수 좋은매물

임사자 매물을 물어왔는데 왜 즐겁질 못하니?

작년 여름 임대차 3 법이 발효된 이후 무주택자의 집을 구하기는 누구나 알다시피 더 고달파졌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고, 이사를 준비하다 막상 이사 당일이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 사상을 조금 엮어 소회를 밝혀본다. 예비 신혼부부의 전세 신혼집 구하기, 그 쓸쓸함에 대하여..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일은 보통 '예식홀 예약'이다. 그다음은 '신혼집'인 거 같다. 10평대 투룸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나로서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결국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신혼 전셋집을 구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매물 서칭에 돌입했다.


장장 한 달 여간 네이버 부동산, 직방, 다방에 매일 접속하여 기계적으로 스캐닝하는 일과가 추가되었다. 매번 접속할 때마다 새로 올라온 매물 위주로 괜찮은 조건인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지체 없이 부동산에 전화는 거는 방식이었다.

한 번은 관심단지 아파트에 시세보다 1~1.5억 싼 매물이 리스팅 되었고, 바로 전화를 걸어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겠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올 리 없었다. 아마도 우리보다 먼저 전화를 건 쪽에서 집을 보기로 약속되어 있어 이렇게 공격적인 제안에도 응해주지 않았다.

대게 이런 물건은 임대사업자 매물인데 임대료 상한 요율이 있어 종종 이런 게 등장한다. 네이버 관심단지에 모니터링할 단지를 등록해놓고 수시로 들여다보기를 어언 한 달째.. 황금 같은 저렴한 매물이 다시 등장했고 속으로 환호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이길' 생각하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처음이었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올 줄이야..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고 약속 날 부동산을 방문했다. 중개업자는 7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였고 상가는 허름했다. '우리말고도 5군데나 연락이 더 왔다'라고 하시며, 우리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겠다는 사람, 꼭 들어가야 한다며 사정했다는 사람도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혜택인양 얘기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며칠 전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집은 무난했다.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소위 올수리를 몇 년 전에 한 것 같았고 특히 새시와 화장실이 깔끔했다. 문제는 부엌 천장이 위험해 보일 정도로 내려앉아 있었다. 중개사는 도배한 게 조금 내려온 거라며 문제를 자꾸 축소하려 했지만 우리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집에는 하자가 있었지만 (당연히 너무나 좋은 가격이기에)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하고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다만 당부했던 게 천장이 내려앉아있는 부분을 해결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계약일에 집주인은 지방에서 올라왔다. 아들 명의의 부동산이었지만 위임장을 들고 와서, 본인 것인데 아들 명의로 되어있으니 연락할 일 있으면 본인한테 하라고 했다. 본인 이름으로도 부동산이 몇 채 있을 테인데 아들 명의까지 넘겨서 임대사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아들은 지방에서 결혼을 할 예정이라 했다. 2년 뒤에 살겠다고 들어오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실제론 집주인 아버지)도 나이가 중개사와 비슷해 보였고, '은행에서 연락 와서 귀찮게 하는 게 싫다시며 전세대출 안 받는 세입자를 받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세로 들어가며 전세보증금 대출을 매번 받던 나로서는 충격이었고 집주인이 요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로 보였다. 집주인 역시 '그런데도 너네와 계약을 해주는 나에게 감사해야 해' 하는 뉘앙스가 대화 중간중간 풍겨졌다. 우린 이 집에 꼭 들어가고 싶었으므로, 중개사와 집주인에게 계약 시 특별한 요구사항을 제시하진 않았다. 다만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던 부엌의 천장 꺼짐 문제만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손 쓰기로 합의했다. 

이윽고 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친 후 사이좋게 모두 전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여 상태를 점검하였고,  이게 단지 도배문제가 아니라 석고보드가 내려앉았고 전등위치 등 부엌 내 안전사고가 우려스러우니 반드시 조치를 해달라고 난 요청하였고 현장에서 모두가 수긍하며 합의했다.


드디어 잔금 날이 되어 부동산을 다시 찾아 부동산 중개수수료 금액을 치르기 전이었다. 천장 수리 진행상황을 보고 수수료를 입금하겠다 했지만 중개업자는 '입금 먼저 하고 가라'라고 엄포를 놓아 어쩔 수 없이 그리하였다. 


'드디어 내 집이구나.. 겨우 2년 오래동안이지만..


천장 수리 상황을 보고자 도착한 집에는 80대 어르신이 혼자 도배를 하고 있었다. 은퇴하고 쉬셔야 할 정도로 연세가 있으셨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석고보드가 내려앉건 말건 상관없이 당신은 도배만 다시 하고 가실 생각이셨고, 난 돈 주는 사람이 아닌지라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안된다고 열심히 설득을 해대고 있는 차에 부동산 중개인이 집에 들어왔고, 자꾸 문제없다고 단속을 하려 했다. 결국 중개인과 고성을 섞어가며 또 한차례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사실 계약 후 2주 정도 지나 인테리어 일정과 인테리어 업자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 했을 때 한차례 전화로 대판 싸웠었다. 부동산의 갑질이 곧 집주인의 갑질이었고, 세입자 신분이 서러웠다.


결국 이삿날이 다가왔다. 당일 비 예보가 있어 이사는 예정보다 1시간 먼저 시작되었다. 아저씨 두 분,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셨고, 사다리차 기사님이 오셨다. 

비가 와서 두배는 힘들었던 이사를 우여곡절 끝에 모두 마치고 조연들이 모두 퇴장한 시각은 오후 7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주인공인 나와 그녀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있었다. 지친 몸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줄 오늘의 제대로 된 첫끼가 필요했다. 비 오는 저녁이기에 배달음식을 미리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여서 서로 말없이 짐 정리만 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 도착했던 그녀는 나와 작업자들의 일을 거들어 주지 않았다. 대신 전화통을 계속 붙들고 어디론가 열심히 전화를 걸어댔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이 집의 첫인상과 불만사항을 제기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가족과 지인들이었다.

나의 사고방식으론 그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작업자들이 모두 떠난 후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그들이 있었을 때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진한 작업들이 사방에서 눈에 들어왔다.

이젠 다 나와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이다. 그들이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을 떠나고 후회하고 있다니.. 그녀에 대한 원망과 함께 또 서글펐다. 이미 내 허리도 끊어질 듯 힘들었고, 온몸에 피로가 느껴졌다. 뒤늦게 어쩔 수 없이 중식을 배달시켰으나 1시간 반 만에 도착한 홍콩반점 발 짜장면과 탕수육은 그날의 화룡 점점이었다. 우린 9시 반이 돼서야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후에도 그녀와 의견 대립은 계속되었다. 도저히 오늘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급한 부분만 하고 미루려 했는데 그녀는 이제야 발동 걸린 듯했다. 당장 오늘 취침과 내일 출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책더미를 책장에 가지런히 꽃아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상했을까?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발견할 수 없었던 안방 벽지의 곰팡이처럼, 비 오는 날 신혼집으로 이사하는 우리에게는 지금껏 서로 미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최근의 일련의 사태와 더불어 이삿날 느꼈던 나의 슬픔은 마치 일 년 치의 서글픔이 한순간에 몰려온 것 같았다. 


비 오는 날의 갑질 하는 집 주인집으로의 힘겨운 이사를 하고 나니 2030 영끌 내 집 마련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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