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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콤보 Apr 13. 2022

한 마리 순한 양

#5 


압수한 폰을 경찰들은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주고받은 메시지, 사진 등 모두 들여다보았고, 가끔 이건 뭐냐며 미심쩍은 게 발견되면 나에게 물어댔다. 


조사를 받는 입장이 되자 난 바짝 엎드린 신세가 되었다. 무서운 생각이 엄습했고, 나의 여행은 고사하고, 직장,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소위 말하는 '빨간 줄'에 대한 큰 공포가 밀려왔다. 사실 그 공포는 아까 처음 제압당할 때부터 느꼈었고, 동시에 후회도 밀려왔다.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지?'


난 지금 범죄국가, 치안이 그렇게 안 좋다는 필리핀의 경찰에게 붙잡혀 있다. 그것도 현행범으로..


난 여기 왜 왔을까, 왜 혼자 왔을까, 이 휴양지에..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한 경찰이 내게 다가와 조사를 시작했다.


너는 누구며, 언제 필리핀에 왔고, 누구랑 왔고, 언제 나갈 예정이고, 직업은 뭔지 등등 

일반적인 신원조사부터 시작되었고,  바로 내일 점심쯤 예정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이야기하자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넌 갈 수 없을 거야"


나의 공포감은 두 배로 커졌다.



하필 이 타이밍에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게스트 하우스 두 형들은 연락처도 몰랐다.

주머니에 있는 게하의 명함 한 장이 전부였다.


난 한 마리 양이되었다. 

내가 한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조용한 양 말이다. 최대한 협조적으로 조사에 임해야 그나마 참작을 해줄 거 같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나의 행동을 후회했고,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믿어졌다.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고민이 절반, 절대적인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포기한 심정이 절반이었다.


조사는 계속되었고, 짧은 영어로 최대한 논리적으로 오늘의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크리스털 코브 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내가 오늘 정신이 나갔다."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말을 믿을 수 없어 이런 상황이 되었고,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행동을 후회한다."


더할 나위 없는 진솔한 이 표현에 경찰은 대꾸했다.


"너 혹시 약했어?"


정신이 나갔다는 나의 표현에 나를 조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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