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싶은 건 내가 선택할 거야! 36살에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거실에서 엄마가 사 온 호떡을 함께 먹다가 엄마에게 언성을 조금 높여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그날 엄마는 치즈 호떡과 꿀 호떡을 사 오셨다. 부채꼴 모양으로 네 등분으로 하고 하나씩 나에게 건네주며 무엇이 맛있느냐는 말에 ‘음.. 둘 다 맛있어’ 라며 대답했다. 단맛이 나는 꿀호떡을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남은 두 조각을 다 가져가셨다. 난 하나 달라했다. 주지 않으셨다. 다시 달라고 했다. 그제야 건네주셨다. 엄마는 그때 나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빠는 꿀호떡을 좋아하셔, 넌 둘 다 좋아하니깐 치즈 먹으면 되지! 구태여 그렇게 먹어야겠니?!".
난 약간 서럽고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난 분명 둘 다 맛있다 이야기했고 꿀 호떡이 조금 더 땅겨 건네 달라고 한 거야!"
엄마의 은근히 깔아뭉개는 듯한 특유의 잔소리가 조금 더 이어졌다. 난 너무 화가 났다. 항상 이런 식이 었다. 의견을 물어보시는 거 같지만 결국 ‘답! 정! 너!’인 것이다. 그때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면서, 뒤돌아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내가 먹고 싶은 건 내가 선택할 거야!’라고 언성을 조금 높여 소리쳤다. 그리고서 나도 모르게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면 난 죽고 싶을 때가 있었어!’라고 아우성쳤다.
분명 오랜 시간 묵혀 있었던 내 안의 무언가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발산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난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날까 아주 잠시 생각하다 감사하게도 이내 곧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이 작은 거 하나 고르는 데 있어 선택권이 없는 나에게 앞으로 살면서 과연 어떠한 선택권이 주어질 수 있을까? 단순히 작은 호떡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과 배우자에 대한 선택에서 엄마와 아빠의 지나친 개입이 싫은 것이고 선택에 대한 나의 결정권을 나에게 맡겨 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 사고에서 의식적 사고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선 흔한 경우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온 영향 때문인지 가끔 이렇게 선택과 결정권을 두고 나와 부모님은 알게 모르게 사투를 벌인다. 나의 이러한 면을 특히 아빠가 탐탁히 여기시는 거 같아 보지 않는다. 눈치가 여전히 조금은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는 생각 때문에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의 의견을 피력하며 살고 있다. 나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감사하게도 이러한 나를 부모님께서 아주 조금은 받아 주시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러다가도 아주 때론 나만의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생각하게 만드시는 말씀을 여전히 하실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의 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였던 20대 중후반 때보다는 아주 많이 가까워졌다. 내 생각을 존중받고 싶고 부모님의 말로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은 대략 30살쯤이었다. 부모님의 첫 반응은 무언의 충격이셨다. 부모님의 표정과 느껴짐으로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선 며칠 동안 아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내 삶에 그렇게까지 무거운 공기는 처음 경험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의 어색한 짧은 대화가 조금씩 오가면서 시간이 더 흐르자 자연스럽게 사이가 풀어져 갔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날 이후 부모님이 조금은 조심스럽게 나를 대해 주시는 노력의 모습을 처음 보았고 그날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녹아 내려져감을 느꼈다.
처음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존중받는 느낌은(특히 부모님)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전엔 나만 이렇게 부모님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힘든 줄 알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몇몇 주변 사람들과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집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론, 부모님이 살아오신 시대를 배우게 되면서는 서로의 다름을 조금은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 세대가 조금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격차가 미세하게나마 좁혀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격차로 인해 와해되기 쉽다. 실은 이미 와해되어 1인 가구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임을 슬프게도 인정 안 할 수 없다. 세대 간의 불소통,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모습, 너무 빠른 시대변화 등으로 인해 그다음 세대들은 행복의 모습(정답)을 찾아가느라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해 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는 교육면에서 총체적 난국이라 한다. 나 또한 교육을 공부를 하면서 실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상식이 잘 잡혀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이상 경쟁이 아닌 협력에 대한 교육을 배워 나간다면 쉽지 않고 시간은 걸리겠지만(모든 가치로운 건 시간이 걸린다 생각한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시에 나의 주체성과 선택권을 놓치지 않으려 조금의 긴장감을 안고 산다. 살짝 피곤하면서도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고 나면 복잡했던 나의 내면이 단순화되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무튼 그날 이후 나의 마음은 가벼워짐을 느꼈다. 물론 엄마는 나의 솔직한 아우성에 어느 정도 충격을 받으신 거 같다. 이날 이후 엄마가 나에게 대하는 게 조금 다르다. 자상하다. 살 것 같다. 완화된 긴장감으로 삶이 이토록 편할 수 있는지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