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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09. 2024

13_무너진 몸을 재건하면서

코어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라

중심이 무너지면


나에겐 삶의 중심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나의 몸을 지탱해 주는 척추의 중심도 함께 무너져버렸다. 보스턴으로 회사를 옮기고 처음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현장 감독을 위해 출장 가기 3일 전이었다.


뭐지, 이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기분 좋게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평소와 다른 것 하나 없는 순서로 샤워를 하던 중 아주 살짝 허리 어느 한 부분을 누르는 순간, 뭔가 쐐한 기분이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든 지 1초도 되지 않아 마치 허리 아래 하반신이 사라진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뒤 바로 허리에 아주 강한 통증이 왔고 어떻게 샤워를 마무리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커다란 샤워타월 위에 축축이 젖은 머리로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고 누워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심하게 허리에 통증이 온건 처음이었지만 2년 전쯤에도 허리를 삐끗해서 이틀정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 허리에 무리가지 않게 무거운 것도 안 들고 나름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일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일단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좀 삐끗한 것 같은데 그래도 출장까지 3일 남았으니 그때는 괜찮을 거라고 전달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나의 허리가 하루 이틀이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나는 한 3일쯤 됐을 때서야 겨우 허리를 구부정하게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중요했던 출장은 취소해야 했고, 회사에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누워있지만 않을 뿐이지 그때 나는 아주 천천히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으로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 뒤 한동안은 평소에 1-2분이면 걸어갈 아파트 주차장을 10분이 넘어서야 도착할 정도로 상태가 생각보다 빨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 운동은
가짜였던가


나는 앞서 말했듯이 운동이 나의 힐링 방법 중 하나일정도로 평소에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그 시작은 아마 대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이때 정말 평생 먹어야 할 술을 다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매일 과친구들이나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고3 때 하루 5끼를 먹었을 때보다 아마 이때 찐 술살이 더 많았었고,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나는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니 그 자체가 즐거워졌고, 나는 미국에 와서도 정말 숨쉴틈 없이 바쁘던 대학원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운동이 내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다. 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했기에 나의 운동 방식은 스트레칭이나 요가로 몸을 풀어주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유산소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한 4년쯤 전이었을까?

우연히 '왜 여자는 팔 굽혀 펴기를 하지 못할까?'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순간 '에이, 그래도 나는 한 개는 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바로 바닥에서 팔 굽혀 펴기 기본자세를 취했다. 힘차게 팔을 굽혔다. '자, 다시 올라오기만 하면 되겠어!' 하고 팔에 힘을 집중해서 다시 올라오려는데 아니 왜 몸이 안 올라가는 걸까?


상상대로라면 여전사처럼 멋지게 올라와야 할 나의 몸은 잠시 후들후들 거리다 맥없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 나도 못하는구나.' 별것 아닌 팔 굽혀 펴기에 왠지 씁쓸해졌다.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해왔는데 어찌 팔 굽혀 펴기도 하나 못하는 걸까?' 이건 아니다 싶었고, 그날이 바로 나의 팔 굽혀 펴기 도전의 시작이었다.


이건 시작이었구나


나의 첫 도전 2-3개월 정도는 주방 카운터에 두 팔을 대고 팔 굽혀 펴기를 연습하는 걸로 시작됐다. 그냥 횟수를 세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가볍게 해 줬다. 이게 익숙해지자 바닥에 무릎을 대고 하는 걸 또 한 2개월쯤 연습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이제 정자세로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안될 거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계속해보라고 강요했다.


'아직 안된다니까.' 하는 스스로 이미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권유하는 친구의 고집을 못 말린 나는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바닥에서 자세를 취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한 번을 성공하고 두 번, 세 번, 그렇게 나는 열 번을 정자세로 팔 굽혀 펴기에 성공하였다. 운동을 꽤나 많이 한 그 친구는 왠지 네가 심리적으로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계속 시켜본 것이라고 말했다.


팔 굽혀 펴기는 나에게 몸을 통한 꾸준함의 힘을 알려준 고마운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주 작은 한걸음부터 시작하면 된다. 멈추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반드시 성과가 있음을 나의 몸이 경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주일에 4-5번 정도 팔 굽혀 펴기를 해오고 있고, 그 결과 20번씩 두 세트 정도는 어렵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 이 정도면 근력 좀 있는 여자 아닌가?' 이런 착각 속에 사는 나를 겸손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실내 클라이밍을 하러 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더링(bouldering), 즉 하네스 같은 줄을 매고 높이 올라가는 클라이밍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만 보통은 3미터, 또는 4-5미터의 높이의 벽을 올라가는 운동이다.


첫 보더링을 경험은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딘가 숨어있을 거라 믿었던 나의 근육은 사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문제를 풀며 올라가는 보더링에 재미를 붙이고 나는 한동안 클라이밍을 다녔었다. 이것도 1년이 되지 않아 허리 통증으로 인해 잠시 멈추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운동을 통해 정말 상체근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내 인생처럼 나의 몸에 맞는 운동을 찾는 과정도 참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부상을 통해서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코어(core, 중심) 근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척추를 둘러싸고 있는 허리-골반-엉덩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코어근육이 약하니 자꾸 여기저기서 탈이 나는 것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전문 선생님과 재활치료처럼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여기는 미국 아닌가. 정말 심하게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 나 같은 일반인이 허리 좀 아프다고 장기전이 될 이런 재활 치료를 다니는 곳이 아니다.


일단 공부를 시작했다. 코어근육은 무엇이고, 어떤 운동을 통해 강화해야 하는지, 그리고 초보자가 지켜야 할 주의 사항 등 고마운 유튜브 선생님들을 통해 기본 지식을 쌓았다.


아쉽게도 이번엔 나의 힐링의 마지막 무기인 '운동'이 아니라 '재활'에 가까운 나의 몸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다짐했다.


“천천히 가자.

아픈 몸을 치료한다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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