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자
사랑의 언어
나의 인생의 큰 행운 중 하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엄마의 아래서 컸다는 것이다. 당연히 비교대상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엄마가 해주는 따듯한 집밥의 소중함을 처음 느낀 건 20살이 넘어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였다.
학교 정문에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나의 작은 자취방이 있었다. 나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시설은 다 되어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일이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교 식당에서 먹는 밥도 나쁘지 않았고, 여기저기 새로운 식당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좋았다. 그렇게 몇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왜 배는 부른데 속이 헛헛하지?' 밥을 먹었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은 참 낯설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봄학기를 보내고 잠시 여름방학을 맞아서 대전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그때 엄마가 해준 밥상에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취향대로 직접 산에 가서 뜯어온 나물로 만든 반찬들과 엄마가 직접 재배한 야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생선구이가 있었던 것 같다. 밥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속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집밥이 왜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지 과학적인 설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건 그 여름 나의 헛헛한 속이 엄마의 밥으로 꽉 채워졌던 기억이다.
나에게
배달 음식이란
다행히도 나는 요리를 하는 걸 아주 좋아하고 엄마의 손맛을 닮아서인지 웬만한 요리는 어렵지 않게 만드는 편이다. 이런저런 식재료를 구경하러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하고 그걸 정리하고 예쁘게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그 모든 행위를 즐겁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나도 몸과 마음이 지치면서 점점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집밥을 먹는 사이에 가끔 먹는 별식으로서의 배달음식이 아니라 억지로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배달음식은 너무 다르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으로 먹는 그 음식에는 나의 텅 빈 영혼을 채워줄 사람의 온기가 없다. 아마 나에게 음식은 그저 배를 채워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요리는 지친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수단이었고, 애정하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나만의 사랑의 방식이다.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가 메뉴를 구상하고 장을 보러 가서 좋은 재료들을 구해온다. 집에 와서 재료를 다듬어 요리를 시작한다. 물론 간단한 요리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 때면 '아, 이건 정말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귀찮은 세세한 과정이 요구된다.
나는 추운 겨울이 되면 호박죽을 자주 끓이는데 그 딱딱한 호박을 다 자르고 다듬어서 겨우 냄비에 쏟아부어도 그다음 할 일이 또 남았다. 냄비 아래에 붙지 말라고 그걸 계속 저어 주어야 하는데 나는 이걸 생각 없이 젓다보면 가끔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어릴 적 허약 그 자체로 태어난 나 때문에 엄마는 몸에 좋다는 건 뭐든 만들어서 나에게 주곤 했다. 민물붕어가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는 말에 아빠는 열심히 낚시를 가서 생선을 잡아오셨다. 엄마는 그 커다란 생선을 다 다듬어서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약재와 정말 오랜 시간을 끓였다. 어릴 적엔 그 괴상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뿌연 물을 자꾸 마시라고 하는 엄마가 싫어서 코를 틀어막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는 그걸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까 싶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이나 반복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나는 정말 대단한 엄마의 사랑을 받았구나 싶다.
건강한 백수가
되기 위하여
백수가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위한 맛있는 점심을 차리는 일이었다. 사실 요리의 종류로 보면 거의 같은 메뉴였다. 그것은 바로 샐러드. 내가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기 시작한 건 아마 미국에서 일을 시작할 때쯤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정해진 점심 식사시간이 따로 없다. 여기도 보통 12시쯤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가지만 미팅이 있거나 해야 할 업무가 있으면 그냥 대충 샐러드나 샌드위치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본인의 일이 끝나면 퇴근을 해도 크게 눈치가 보이지 않는 문화이기에 점심시간에 일처리를 최대한 많이 해놓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빨리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나에겐 샐러드였고 백수가 돼서 집에 있으면서도 나의 샐러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야채를 좋아하던 엄마의 영향인지 나는 야채 그 본연의 신선함을 너무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제는 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기존에 먹던 방법과 다른 레시피를 찾아보는 재미에 빠졌고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어서 사진에 저장해 두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중 특히 지중해식 샐러드에 푹 빠져서 인스타그램 속 전 세계 샐러드 세상을 여행하며 온갖 레시피를 다 저장하고 하나씩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먹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가끔은 혼자 먹으려고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하나 싶었지만 그것은 내가 나를 대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동안 너무 일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던 나의 몸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온기를 담아 정성껏 점심 한 끼를 나에게 대접했다.
무너진 몸이 점점 회복되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인지 어느 날 우연히 본 나의 얼굴에는 생기라는 것이 돌았다. 나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얼굴이 피는 그 시절을 살아야 할 시간에 얼굴이 오히려 그 빛을 잃었던 것 같다. 지금도 예전 사진을 보면 커다란 눈 밑에 다크서클까지 있어서 어찌나 퀭해 보이는지. 나는 원래 타고난 건조한 피부라서 얼굴에 광 같은 건 날수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쉬니 나의 얼굴에서도 건강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이렇게 나를 돌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히려 더 망가져서 멈춰졌다면 돌아오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나의 의지로 백수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순간 자부할 수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백수라고 말이다. 그리고 살다가 어쩌면 이렇게 나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