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강한 꾸준함의 힘
시작은 소소하게
비록 운동으로 힐링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튼튼한 코어를 만들어보겠다는 나의 각오는 비장했다. 하지만 시작할 때 지나친 의욕은 언제나 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또한 이제는 내가 조금이라도 의욕이 앞서면 몸에서 작은 신호들이 느껴졌다.
"야, 얘는 그냥 말로 해서는 안돼."
나의 몸이니까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내가 무리하지 않도록 고맙게도 알아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주는 덕분에 나는 아주 천천히, 무리하지 않게 시작했다. 어차피 하루의 시간이 통째로 비어있으니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나의 루틴은 이러했다.
처음 운동은 몸을 풀어주는 가벼운 요가 동작으로 시작한다. 몸이 어느 정도 가볍다 느껴지면 코어운동 중 대표적인 데드버그, 버드독, 플랭크, 힙 브리지 등 나름 공부하며 배운 운동들을 천천히 이어간다. 몸 컨디션이 좋은 날은 계단 오르기 기계에 올라서 조금 땀이 날 정도로 마무리 운동을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무리다 싶은 날은 아주 가볍게 경사로 해놓고 러닝머신을 걷는다. 그것도 하기 싫은 날은 그냥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천천히 운동을 늘려가며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니 허리에 통증도 사라져 갔다. 그동안 운동의 80프로 이상을 유산소에 썼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전반적인 근력강화를 비롯해 자세 교정 등에 80프로 이상의 시간을 썼다. 절대 무리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조용한 헬스장에 있는 게 너무도 행복해 나는 하루에 두 시간 세 시간씩 그곳에서 나만의 여유를 즐겼다.
이거 진짜 되네
코어운동 중 사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운동은 바로 복부운동이었다. 혐오라는 단어는 좀 과격하지만 나는 그만큼 복부운동을 싫어했고 그 이유는 단순히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복부는 코어운동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나도 언젠가는 이 복부운동의 두려움을 극복해 보겠다 생각해오고 있었다. 사실 복부운동은 1년 전 2023년이 시작되던 때 하루에 딱 10분만 해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이미 6개월 이상 해오고 있었다. 여러 영상을 따라보다 발견한 운동 유튜버 심으뜸 님의 복근 영상. 9분이 채 되지 않지만 복근이 존재하지 않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운동이었다.
나름 빠지지 않고 했던 덕분인지 이 6개월 동안 아주 미세하게 자리 잡은 복근은 나의 코어강화운동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나름 팔굽혀펴기도 3년이나 해왔기에 전반적인 기초로 몸을 잡아주고 허리 통증이 줄어들자 꽤나 빠른 시간에 몸이 제법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갑자기 허리가 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무리해서 운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초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음을 느낀 나는 몇 가지 루틴을 추가하고 헬스장에 있는 다른 기구들과 덤벨을 추가해 조금 강도가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도 같이 병행했다. 처음 운동할 때 몇 번 개인 트레이너에게 배운 것과 가끔 그룹 운동 수업 같은 걸 등록해서 익혀온 것들이 있기에 처음부터 기계를 다루는 게 많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내가 집중했던 운동들은 매트 위에서 맨몸으로 속근육을 만드는 운동들이었다.
처음 한 3개월은 아마 나만 몸의 변화를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6개월이 되자 주변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외적으로도 확연히 달라졌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근육들이 온몸에 자리 잡았음이 느껴졌다.
너를 기다리며
내가 참 좋아했던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대사가 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한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생각해 보니 정신력으로 몸의 한계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20대의 에너지로나 가능했던 얘기였다. 이미 고갈된 에너지로 허우적거리는 몸은 몰아붙일수록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몸이라는 소중한 나의 일부를 마치 잠시 쓰고 버릴 부품처럼 다루던 때를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라도 버텨준 게 새삼 고마워진다. 다시는 이렇게까지 방전된 상태까지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싶다. 이제는 몸도 알아서 신호를 보내는 나이가 되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그러나 살다가 또 균형을 잃고 번아웃이라는 녀석이 찾아오면 그때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지친 뇌를 쉬게 해 주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보단 딱 한 가지에 집중하겠다. 그것이 나에겐 산책이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때로는 운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것만 제대로 하면서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줄 것이다. 강요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면 분명히 다시 돌아올 것이다. '삶의 의욕'이라는 선물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