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agna . 켜켜이 쌓아 올린 기쁨
<아내의 요리>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은 우리 부부의 주말 장보기 목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온갖 생필품과 저장식품이 마트마다 동이 나고 있어 우리 역시 마음이 바빠졌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간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먹거리를 준비해둬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유심히 마트 진열대를 살폈다. 쌀은 한 포대도 남아있지 않았고, 맞은편의 파스타 칸도 텅텅 비어있었다. 그 와중에 눈길을 끈 아이템은 넉넉히 남아 마트를 지키고 있던 라자냐. 이것도 저장식품인데 왜 이렇게 인기가 없지...? 남편도 나도 라자냐를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어 얼마간 머릿속에 버퍼링이 생겼지만, 며칠 전 만든 가지 그라탱 재료들이 냉장고에 꽤 남아있던 터라 엄두를 내보았다.
[재료]
양파 1개, 올리브유 2Tb, 간 고기 2컵, 타임 조금, 토마토퓌레 1컵, 다진 마늘 1Tb, 월계수 잎 1장, 라자냐 면 6줄, 소금 한 꼬집, 가지 1/2개, 스위스 치즈 취향껏
1.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한입 크기로 썬 양파를 넣고 약불로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나는 흰색 양파에 익숙한데, 남편은 적양파를 곧잘 쓴다. 적양파는 대부분 흰색 양파보다 맛과 향이 더 강해서 양파가 자기주장을 해야 하는 메뉴에서 빛을 발한다.
2. 양파를 볶던 팬에 토마토퓌레, 다진 마늘, 타임, 월계수 잎을 넣고 볶는다. 토마토와 각종 허브의 조합은 요리가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추기도 전부터 코를 즐겁게 한다.
3. 토마토소스의 수분이 약간 증발한다 싶으면 간고 기를 더한다. 소스가 완성되면 불을 끄고 식혀둔다.
나는 채식을 하는 관계로 Beyond Meat 1/2팩을 넣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금치나 가지만 넣어 가볍게 먹고 싶었지만, 고기를 사랑하는 남편에게 고기 씹는 느낌이라도 선사하고 싶어 내린 결정. 스테이크나 바비큐처럼 고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메뉴라면 무리지만, 토마토소스의 풍성한 맛에 약간의 식감을 더하는 재료로서 Beyond Meat는 훌륭한 대체제이다.
4. 소스가 끓는 동안 세월아 네월아 소스만 바라보고 있으면 곤란하다. 바로 냄비에 물을 받아 라자냐 면을 삶는다. 라자냐 면은 레이스가 달린 벨트 같이 생겼다. 14분 정도 삶아야 하는데, 우리 부부가 자주 먹는 링귀니보다 2배가량 더 오래 삶아야 한다. 채에 걸러 물을 빼준 다음 식혀둔다.
드디어 가지 차례다. 메뉴 이름은 <가지 라자냐>이지만 이것저것 볶고 삶는 절차가 많아 막상 가지는 잊을 뻔했다.
5. 가지는 라자냐의 1/2 넓이로 썰어 물기를 뺀 다음 소금을 솔솔 뿌려둔다.
6.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팬에 가지의 양면이 모두 살짝 투명하게 익도록 볶는다. 가지를 얇게 썰었기 때문에 30초 정도만 볶아도 충분하다.
7. 오븐 용기 바닥에 토마토소스를 한 겹 펴 바른다.
왜 많은 재료들 중에 소스를 먼저 바르는지 궁금했는데, 그 위에 다른 재료들을 쌓아 올리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재료들이 바닥에 눌어붙거나 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고, 라자냐가 익는 동안 소스가 아래위에서 그 풍미를 골고루 퍼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한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8. 소스 위에 2 등분한 라자냐 면을 올린다.
요리 초보이다 보니 베이킹 도구들이 제한적이다. 라자냐는 대부분 네모난 용기에 굽지만, 나에게는 아직 집 앞 마트에서 충동구매하여 초반부터 본전 제대로 뽑은 동그란 파이 접시뿐이다. 여기에 파이도 굽고, 타르트도 굽고, 케이크도 굽고, 그라탱도 만들고, 이제 라자냐까지 만든다. 최근 요리를 하면서 '반드시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야만 하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정답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동안 갖지 못한 요리 도구를 아쉬워할 것이냐, 가진 도구로 창의력을 발휘해볼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다. 나는 언제고 후자를 택하여 즐거운 시간을 만들겠다. 그렇지만 조만간 네모난 용기를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ㅋㅋㅋ
9. 라자냐 면 위에 살짝 볶은 가지를 올린다.
10. 얇게 썬 스위스 치즈를 올린다.
11. 토마토소스 - 라자냐 면 - 가지 - 치즈 순서로 반복해서 쌓아 올리다가 맨 위에는 파마산과 스위스 치즈를 듬뿍 올려주었다.
12. 190C (375F)로 예열한 오븐에 40분간 넣어둔다. 원래는 라자냐 위에 포일을 덮어 20분, 그 후 포일을 걷어내고 20분을 구우라고 추천하지만, 포일이 없는 관계로 그냥 쭉 구웠다. 그 결과 맨 위에 올려둔 라자냐 면은 마치 나초처럼 바삭바삭해졌다. 음~ 앞으로 일부러라도 포일을 덮지 않겠어!
라자냐 면이 더해지고 재료들의 구조가 달라졌다는 것 외에는 가지 그라탱과 흡사한 레시피다. 비주얼은 그라탱이 더 예쁘지만, 한 끼 식사로 삼기엔 라자냐가 월등히 낫다. 켜켜이 쌓은 재료들이 오븐 안에서 구워지는 동안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디쉬로 완성되었다. 뜨거운 라자냐를 뚝뚝 썰어 접시에 담은 다음 차가운 코티지치즈를 몇 스푼 곁들여 먹으니 정말이지 행복하기 그지없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