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와 회화나무

by 수경

마치 나목의 계절이 없었던 것처럼 4월의 느티나무는 출렁이고 물결칩니다. 이에 비해 회화나무는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를 직감하고 비로소 한 잎 두 잎 가녀린 잎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회화나무는 제가 여지껏 알고 있는 나무 중에 새잎 내는 시기가 가장 늦은 나무 중에 손에 꼽힙니다.


아주 친숙한 느티나무에 비해 회화나무를 조금 낯설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서로 견주어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나무는 은행나무, 팽나무, 왕버들, 플라타너스와 더불어 수명이 길고 몸집이 웅장한 거구수종에 속합니다. 이중에서 회화나무는 느티나무보다도 키와 몸집이 더 크게 자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회화나무는 학자나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세 직책인 태위, 사도, 사공이 회화나무 세 그루가 심어진 자리에서 정무를 보았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에서 비롯해 회화나무는 고귀한 학문과 높은 관직을 상징하며 학자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같은 유교 문화인 우리나라에서도 학문과 지혜, 벼슬길의 상징으로 회화나무를 귀하게 여겨 서원이나 서당, 혹은 명문가의 집 근처에 많이 심었습니다. 대구에서는 계명문화대로 가는 가로수 길이 모두 회화나무로 심어져있고,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뜰에 어린 회화나무가 꿈을 품고 자라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한 나무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건강하게 오랜 세월을 자란 느티나무는 가지를 넓게 펴 넓은 그늘을 만들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으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아이들은 그 아래에서 뛰어놀았으며 잔치날에는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던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기억의 공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웅장한 모습으로 오래된 수령을 가진 느티나무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차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겨울에 잎이 지고 난 뒤 줄기와 가지의 골격으로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임경빈 님의 <이야기가 있는 나무 백과>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회화나무의 골격은 호탕하고 대담무쌍하며 일정한 순서와 섭리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수형이다. 이에 비해 느티나무는 세밀하고 성실하며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착실하게 따르는 성품을 나목의 자태에서 느낄 수가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동몽선습이나 논어를 읽는 것이 격에 어울린다면 회화나무 아래에서는 삼국지나 장자의 소요편을 읽는 것이 격에 어울린다. 그럼에도 어느 나무가 앞서고 뒤서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이야기기 있는 나무 백과, 임경빈)


시간을 두고 지켜볼수록 느티나무의 모든 수형은 가지들을 정성스럽게 들어올려 공손하게 하늘을 받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래 된 회화나무가 느티나무만큼 쉽게 만날 수는 없어서 그 모습을 시시때때로 관찰할 수는 없지만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있는 수령 70년 쯤 된 회화나무를 보며 확실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시간을 재촉하고 서두른다 해도, 회화나무는 자신만의 질서로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었습니다. 마음 속에 품은 의문과 굽히지 않는 소신으로 과정을 탐구하여 결실을 맺는 모습은 무릇 학자와 선비가 행해야 할 자세가 아닌지, 늦은 4월에도 잎을 피워야 하는 정확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회화나무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학자나무로서의 회화나무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목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풍성한 느티나무와
때를 기다리는 회화나무
중국단풍과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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