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가 준 뜻밖의 희망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공간은 나와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공간이라 용기를 내어 자판을 두드려 본다.
나는 초6의 딸아이를 갖고 있는 40대 중반의 여자이다. 지난주 금요일 아이는 졸업을 했고 이제 본격적인 방학을 맞이했다. 외동의 초6은 ... 그냥 부모인 내가 보기엔 아주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일어나서 다이어트를 핑계로 밥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폰을 본다. 간간히 낄낄거리는 걸 보니 친구들과 DM을 주고받으며 쇼츠를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 기준으로 기상 후 3시간 까지는 좀 참을 만한다. 만약 아이가 9시에 일어 났다면 12시까지는 그럴 수 있지 하고 건드리지 않는다.
근데.. 그 시간이 4시간 5시간이 지나면 이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방 앞으로 주섬주섬 걸어가 문을 연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이는 나를 쳐다본다. 밥이라고 먹어라. 어제 영어는 올렸냐? 그냥 그런 뻔한 소리를 하고 밖으로 나오지만 뭔가 나의 감정이 다 해결되지 않는다.
딸아이가 하는 얘기는 집에서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숙제는 폰 이외에 할 일에 넣기에는 너무 뻔하고...
근데 내가 생각해도 집에서 아이가 폰 이외에 이렇다 할 일이 없다.
그게 문제인 거 같다.
"엄마 그런 폰 말고 내가 뭐 해?"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그 말과 눈빛 속에서는 때 묻은 반항도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하는 말이란 게 느껴졌다.
그 말에 난 그냥 또 뻔한 소리를 한다.
"기타도 치고 책도 읽고..."
근데 기타도 치고 책도 읽고하라고 얘기를 했지만 내 귓전에 들리는 엄마라는 사람의 목소리는 영혼이 없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지금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채색. 아무런 재미도 흥미도 산뜻함도 없이 뻔한 이야기들...
뭔가 이런 분위기를 확 뛰어넘을 신선한 걸 찾고 싶지만 내 머릿속에도 내 능력 속에도 아이를 사로잡을 한방이 없다. 문득 아이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양육자로써 더 많은 경험을 키워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름 놀이공원, 캠핑, 키즈카페, 체험 등등 그래도 해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건 어딜 가나 나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게 눈에 띄고 이번에도 수산물시장에 갔는데 얼만전에 교복 맞추고 오는 길에 산낙지가 먹고 싶다는 아이 말이 떠올라 몇 마리 사서 가져가봤다. 가지고 가는 길에 죽을 수 도 있다고 수산물 사장님은 설명해 줬지만 싱싱하게 살아있는 낙지들을 보면서 와~ 하는 딸아이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돌아오는 길에도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면 또 빗나가 버리면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 내버리니 기대하지 말자.'
라고 되뇌며 왔는데 아이가 낙지를 반갑게(?) 맞이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스멀스멀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 동안 엄청난 이벤트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장에서 사 온 낙지를 반기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그냥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우리는 그냥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가 보다.
근데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내일도 방에 틀어 박혀서 또 폰만 잡고 있는 아이를 아니 아이의 방문을 보면서 또 나는 낙담할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가 불편한게 아니라 그런 나의 불안이 벌써부터 느껴지니 어두컴컴한 터널을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건 어떻게 해서든 이런 상황을 조금씩 나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아이를 사랑하니까 더 이상 어두운 동굴 혼자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손은 잡아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