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에게는 데이터 라는게 있어..."
딸아이가 영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5시 30분이다.
4시 30분에 시작해서 1시간 수업 후 5시 30분에 끝난다.
오랫동안 다닌 영어학원. 정확히 영어보습학원 아이들 9명을 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다.
5시 40분쯤 됐을까?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온다. 근데 우리 딸만 안 나온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가 말해준다.
"예지는 오늘 늦게 와서 이제 시험 보고 있어요."
미리 나가서 버스 타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왜 2시간 전부터 난리냐는 말투로
"아직 시간 남았어." 라던 딸의 목소리가 선 한다.
그리고는 늦어버렸네. 많이 늦었냐니까 친구는 많이 늦었다고 한다.
그 말을 옆에서 친구아이 엄마도 가만히 듣고 있다.
분명히 집구석에서 폰을 보다가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늦었을 것이다. 1000%다.
내 분명히 책에서 자식을 손주 보듯 하라는 작가님 말씀을 읽었지만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도저히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아서 짜증이 났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일단 걸었다. 언제 나올지 모를 아이를 기다리는 장소로 나는 길을 선택했다.
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아파트 앞 화단을 왔다 갔다 걸었다.
문득 든 생각이 차에 있지 않고 걷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왔다 갔다...
언제 나올지 모를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계속 작은 화단 길을 걸었다. 왔다... 갔다... 네모 반듯한 보도블록들을 바라보면 왔다 갔다.
우르르 나왔던 아이들은 흔적도 없이 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번 차 안에 있지 않고 나와서 걷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짧은 점퍼를 입고 와서 엉덩이가 시렸지만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촉촉해졌지만 그래도 아까 욱했던 마음이 조금씩 거품 가라앉듯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그냥 기분이 가라앉으면 아이에게 엄청 쏟아붓지 않겠지..."
그리고 그날 저녁은 잘 넘어갔다.
근데 오늘 또... 10시 30분 수학학원에 늦을 기미가 보였다. 분명히 10시에는 출발하자고 했는데 9시 30분에 일어나서 폰을 보다가 40분에 주섬주섬 일어나 학원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왜 저렇게 인생을 아슬아슬하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식이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라는 책을 보았다. 거기에선 공부로 아이의 기를 죽이지 말라고 쓰여있다.
난 아이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그건 둘째 문제고 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성실성의 문제이니까. 우리 회사생활 할 때에도 일을 아무리 잘해도 항상 술 먹고 다음날 늦게 오거나 근태가 좋지 않은 사람 보면 뭔가 얄미워 보이고 불안정해 보이 것처럼.
난 내 아이가 성실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현재는 별로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 뭔가 시간이 항상 쫏기를 아이 같고 그게 바로 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집에 있는 인터넷 단말기를 김장무 뽑듯이 뽑아서 옷장 깊숙한 곳에 처박고 일을 나왔다.
이제 수학학원을 끝내고 집에 와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집 안 공기를 느끼고 아이는 당황하겠지.
뭔가 시원하면서도 찝찝한 이 마음... 폰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이렇게 시시콜콜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이 폰과 아이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불안하고 답답해서 글을 쓴다. 이렇게 라도 해서 글로써 쏟아내지 않으면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 갈지도 모른다.
내일 혹시 모레 또 다른 일들로 불미스러운 일들로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슬픈 예감은 아마 폰 때문에 생기는 사고 사건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거다. 어쩔 수 없다. 업보라는 단어도 생각나고 무능력한 엄마라는 단어도 생각난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슬그머니 물었다. 어떻게 있었는지.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그 삭막한 집구석에서 어떻게 했는지.
"데이터로 했어"
라고 딸아이는 말한다.
근데 희한하게 신기한 게 그냥 나의 맘이 그냥 그랬다. 엄청나게 요동치지도 욱하지 않고 뭐랄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구나 하는 무력감이 밀려왔지만 대충 참을만했다.
희한했다. 딸아이의 그런 대답에 왜 나는 화가 나지 않았나..
그 이유는 인터넷 단말기를 확 뽑아버려을 때 그리고 그 기계를 질질 끌고 가져와 농짝 문을 확! 제쳐버리고 처박았을 때 그때 난 이미 스트레스가 풀렸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일정 부분 해방된 느낌.
그 과격하고 무식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치민 울화가 풀렸나 보다.
데이터로 폰을 했다는 아이의 표정 속에서 나를 연민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엄마.. 어쩌지? 나에게는 데이터라는 게 있어. 애썼는데 쯧쯧쯧'
라고 말하는 그 눈빛을 읽었다.
법륜스님 말씀대로 현재 처한 상황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걸 오늘 새삼 느꼈다. '스님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성찰을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다정한 사춘기 상담소] 작가는 그런 말을 했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 전에 엄마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한다. 사춘기는 어린 시절의 불안정한 애착을 바로잡고 부모 자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다."
나의 마음이 먼저 바뀌면 똑같이 아이가 폰을 잡고 있는 그 똑같은 상황에서도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는지가 달라질 것이라는 걸 오늘 조금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