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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Dec 11. 2020

잠시 쉬어가도 괜찮겠지?

중년부부의 중남미 배낭여행기


 프롤로그  


3년 전쯤인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여행의 꿈을 갖게 되었고 이런 나의 꿈을 주변 지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구지 나의 꿈을 주변에 말을 하는 이유는 나는 말의 힘을 믿으며, 믿음으로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엔 아무도, 심지어 찰스 조차도 ‘얘가 또 뭔 소리야...’ 하는 식으로 나의 꿈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겼다. 나에게는 든든한 믿음의 빽이 있으니깐. 위의 성경구절처럼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실현해 나가는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세계여행의 꿈을 갖고 기도제목을 내기 시작했고,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날 도와주시리라 믿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오늘이다.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은 했다. 내가 간다 남미!!


1. 최대한 가볍게 챙긴다고 했지만 1인당 2개의 짐을 꽉꽉 채워버렸다.    2. 우리를 캐나다까지 데려다 줄 Air Canada 비행기



Latin America! 내가 직접 갈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곳을 지금 내가 가고 있다. 친한 동생인 지희를 통해서 알게 된 남미. 그곳은 나에게는 상상 속 미지의 땅이다. 내 상상 속의 그곳. 마치 아직도 원주민이 뛰어다닐 것 같은 그곳. 아직도 고대 문명과 태초의 자연이 살아 있을 것 같은 그곳. 나에게 남미란 그런 곳이다. 세계일주의 첫 행선지를 동남아시아가 아닌 중남미를 선택한 이유는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그곳부터 가야 할 것 같았다. 태초의 신비와 그 순수함이 곧 파괴될 것 같은 느낌. 이것은 그저 나의 상상이고 핑계일 뿐이다.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고 나는 그냥 하루라도 빨리 중남미에 가고 싶었다. 장기여행의 첫 행선지를 중남미로 선택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 같았지만, 여행에 있어 법칙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맘 끌리는 대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일 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매일매일 새로운 곳을 찾고, 공부하면서 기대와 흥분,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 및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여행 준비의 시작은 지도를 보는 법부터 시작되었다. 지도를 보면서 지명을 익히고, blog 및 youtube에서 좋다는 곳을 점을 찍어 나가면서 남들이 좋다는 곳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구분해 일정을 완성해 나갔다. 일단 110일을 예정했고, 모든 숙박과 항공편을 예약했다. 혹자들은 중남미 여행은 예정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모든 일정을 정해놓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영어도, 스페인어도 익숙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여행 준비에 있어서 예약과 결제는 나에게 여행을 실감 나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할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고 현실감이 없었다. 처음으로 예약한 것은 출발과 도착 비행기 티켓이었다. 최종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찰스와 나는 한 5분 정도를 한다! 한다! 진짜 한다! 하면서 망설였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결단의 시작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엎을 수 없는 진짜 현실이었고, 앞으로의 일을 상상만 해도 입가에는 미소와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10년 넘게 운영해온 학원을 정리해야 했고, 자금 마련도 해야 했다. 학원을 정리하고 여행을 시작하기 전 1~2달간은 수입이 거의 없어서 생각보다 은행 잔고가 빠르게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가 심했었는지 몸 곳곳에는 이유 없는 발진이 나타났고 여러 번의 몸살을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내가 꿈꿔왔고 20년 간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에게의 보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몸이 아픈 것, 스트레스 이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좋았고 마냥 행복했다.


겨우 100여 일간의 여행이지만, 내 마음은 마치 이민을 가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 심지어 여행을 핑계로 집안의 가구며 안 입는 옷들, 쓰레기를 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집이 휑하니 마치 이제 막 이사를 온 것 같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이렇게 장기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아직 없었으니… 모두들 감이 안 왔던 것 같다. 언니와의 작별인사는 뭉클했고, 아빠와는 서운함과 어색함이 있었고 동생 내외와의 농담 섞인 인사… 형부의 싸우지 말라는 당부, 예은이의 어색한 인사. 모두들 걱정이 마음속에 한가득 있었겠지만 어쨌든 응원과 당부를 아끼지 않았고, 무언가  해줄 게 없을지 생각해 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혜정이의 용돈, 진영이의 응원, 예찬 언니의 당부, 언제나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지희,  우리의 안전하고 건강한 여행을 위해 응원과 기도를 아끼지 않은 목장 식구들까지. 난 항상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적어내려가니 내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생각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 가장 감사한 일은 남편과 함께 이 긴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남편과 함께 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장 고마운 사람 찰스!


학원을 정리한 것도 내가 지금 여행길에 오른 것도 아직은 모든 것이 실감 나지는 않지만 오늘 하루를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다. 후회 같은 것은 하지 않도록… 그냥 너무 좋다. 담임목사님 말씀처럼 너무 좋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난 지금 그런 상황인 것 같다.     

                                                    2019.10.23  밴쿠버행 비행기 안에서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책을 만들었다. 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고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사진이 문학의 역할을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된다.

나는 그 사진 속의 이야기를 실제 글로 써보려고 한다. 설사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 일지라도 나와 찰스의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사진에 글을 더하여 더 풍성한 살을 붙여주고 싶다. 나중에 펼쳐 봤을 때 그 글로 인해 우리의 사진이 아련하고 그리움의 냄새까지 머금을 수 있도록.


나는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어 영원히 내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기억은 쉽게 잊힐 수 있지만 추억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머물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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