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손님

by 백경자 Gemma

삶의 선택이 오직 그 길 밖에 없었던가. 이모, 이모 집에 누가 다녀갔어요. 막 호텔에서 짐을 꾸리고 체크 아웃을 하려고 하던 차에 토론토에 있는 조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2년이 넘게 보지 못한 딸이 몇 년 전 여름에 엄마, 아빠를 밴쿠버로 초청했다. 오래전에 딸에게 그곳에서 9월에 동창회가 있으니 방문을 하면 어떨까 하고 알렸는데 회답이없어 나는 잊고 있었는데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딸은 부모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반응은 없지만 시간과 관계없이 반드시 실천하는 성격이다. 자기 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나는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잊을 만하면 딸은 맘 하고 전화를 해 온다. 그렇게 이루어진 여행이 올여름 가족이 한자리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밴쿠버의 9월 일기는 최상의 계절이다. 그렇게 덥지도 않고 토론토처럼 습도도 없는 눈부신 푸른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 가장 적합한 체온을 유지하는 데 최적의 시기이다. 그래서 딸은 이 시기에 우리의 방문을 권장해 왔다. 나는 그토록 보고 싶은 딸을 보러 간다는 것에 가슴이 뛰고 출발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두 아이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는 시간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해 여름의 휴가는 잊지 못할 귀한 선물이었다.


딸은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서 이미 공항에 와 있었다. 공항에 나온 딸은 어릴 때 보아오던 명랑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긴 세월 힘든 공부, 오랜 기간의 전문 훈련을 받느라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힘들게 달려왔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면 엄마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내 가슴을 가볍게 짓눌러 옴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 힘든 모습이 오늘따라 말끔히 씻은 듯 명랑해 보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에게 떠날 때를 준비하고 비행기 좌석표를 어떻게 기계에서 뽑아내는 방법과 체크인 해야 할 곳들을 디지털에 능숙하지 못한 엄마에게 설명하기에 바빴다.


딸은 나에게 늘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한가지 질문을 하면 필요이상의 설명으로 얼마나 상세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던가. 그날도 그러했다. 딸은 우리를 위해서 차를 몰고 식사할 곳을 찾아간 곳이 밴쿠버의 아름다운 그랜빌이란 아이랜드의 어느 식당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식당은 빈자리가 없이 북적댔다. 이곳은 여행객으로 언제나 붐비는 곳이며 예술, 음악, 이름도 모른 해물요리, 손으로 만든 각종의 크래프트의 상점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어서 하루를 보내기에는 관광객으로는 정말로 최상의 관광 장소였다. 아름다운 해변에 정착해 놓은 크고 작은 배들, 바다 위를 나만의 세계인듯 무한하게 나는 갈매기 떼들, 보트 놀이, 푸른 하늘아래 바다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휴양 배들을 보면서 나는 천상에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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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나자 마자 딸은 내일 있을 일을 위해 자기가 있는 호텔로 가고 우리는 딸의 콘도로 왔다. 아들은 가족의 모임을 위해서 시애틀에서 이미 도착해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성탄절처럼 특별한 날도 아니건만 우리는 이렇게 기회를 만들어서 식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만남을 만들어서 오래전에 우리가 공유해 왔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이 시간. 그래서 나와 남편에게는 지난여름이 행복했던 추억의 시간으로 머문다. 아쉽게도 딸은 일터로 떠나고 아들과 우리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침에 내가 준비한 식사를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이 기쁨, 아들에게 엄마가 만든 음식을 차려줄 수 있는 이 귀한 시간, 또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간호학 교수와의 만남의 하루, 보고 싶은 친구와 선배님 과의 상면, 한식을 먹기 위해서 버나 비까지 달려가 옛 향수를 달래고 올 때 쏟아져 내린 폭우, 스텐리팍에서 엄마와 아들이 단둘이 했던 데이트, 언제 또 이런기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는 가족이 함께 했던 그때의 만남이 이젠 옛 추억으로 머문다.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만남과 헤어짐, 그것으로 오는 슬픔과 기쁨, 아마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무료할까! 우리는 호텔을 떠나면서 다시 딸에게 감사했다. 이번 여행을 만들어준 그 깊은 마음에… 그런데 난데없는 불청객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10시간이 넘도록 초조한 마음을 안고 어두움이 짖게 내려온 시간에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어떤 모습으로 방문했단 말인가? 얼마나 큰 피해를 만들고 갔을까? 끝없는 상상을 펼치면서 집에 도착했다. 쇠로 만든 강한 정문이 상해 있었다. 대담하게도 앞문을 통해서 정정 당당하게 다녀 갔다. 그들에게는 그 방법밖에 선택이 없었으나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조심스레 다녀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카의 말이 무섭게 들려왔다. 이모, 방을 보셔야 해요. 나는 순간 무서워서 얼어붙은 발을 내딛지 못한 채 남편과 조카만 위층 침실로 올려 보냈다. 따라 올라온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 평생 상상해 보지 못한 무법자의 침입 그 자체였다. 우리의 침실은 상상을 능가하게 흩트려진 그 현상. 그들이 무엇을 찾기 위해서 그토록 세개의 방들 전체를 혈안으로 파했었을까? 아마도 집공사를 할 때 보아 두었던 뭐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들이 평생 모아서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남기려던 귀중품을 송두리채 다 가져갔고 내 사생활이 완전히 폭로된 이 광경,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6 시간이 넘게 방을 정리하고 나니 해님이 창문사이로 살며시 아침 인사를 했다. 그래도 그 불청객을 용서해야는 마음을 갖는 것이 나를 이 힘든 상항에서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만이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었기에. 그러나 그 상처는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한 아픔으로 새겨져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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