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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포맷을 바꾸면 인사이트가 생긴다

by 오경희

드라마에서 봤던 이야기다. 한 팀장이 직원을 괴롭히기 위해 보고서를 퇴짜를 놓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닦달을 하자, 옆에서 그 괴롭힘을 지켜보던 직원이 이전에 제출했던 기획안의 포맷과 색깔을 바꾸었는데 우려와 달리 만족해하는 장면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수도 있다. 드라마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구성을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AI솔루션 개발 부문장을 맡아서 일할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력 사업은 상담사와 고객의 대화를 STT(Speech to Text)로 변환해서 VOC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당시 사업팀 팀장이 개발 중인 회사의 담당자와 프로그램 검증 과정에서 엄청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당시 VOC데이터를 분석해서 제공했는데, 그 회사의 기존 데이터와 우리 시스템에서 분석한 데이터 값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검증을 하는 마지막 절차이기도 했는데, 그동안 상담사들이 분석해 놓은 VOC와 우리 시스템에서 분석한 데이터가 다른 결과값을 내놓으니 고객사에서는 당연히 우리 데이터에 의구심을 가졌고, 우리 회사의 개발자들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결국은 필자까지 개입해서 데이터 검증 작업 확인을 했는데, CS에서 분석업무를 자주 해 왔던 내 눈에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보였다.


상담사들은 업무 매뉴얼에 따라서 VOC값을 남긴다. 예를 들면, 내가 근무하던 통신사의 경우는 요금문의, AS문의, 가입문의, 해지문의, 기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요금 문의에서 하위 필드로 들어가면, 환불문의, 청구요금문의, 등등으로 나뉜다. 그러고 나서 처리 코드라는 것이 있어서 고객의 접수 행위로 넘어가면 접수코드가 생기는 구조였는데, 대부분의 회사들 역시 고객의 문의에 대응하고 처리하기 위한 코드들이 생성된다.


그러면 여러 상담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최종적으로 고객이 접수한 내용이 가장 많이 등록될 수밖에 없고 무수한 상담이력은 데이터 상에 기록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피드백을 해 주었다. 상담사들이 그동안 남겼던 VOC와 우리가 AI프로그램을 통해서 수집하는 VOC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AI를 통하여 수집하는 VOC의 범위가 훨씬 넓다. 그동안 중복되는 데이터 또는 상담사가 판단해서 중요치 않다고 생각되는 데이터는 기록되지 않았는데, AI 분석 시스템은 분석하고 싶은 데이터를 새로운 분류 체계에 누락없이 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값을 수집할 거였으면 AI를 도입하면서까지 데이터를 수집할 이유가 있을까? 그동안 상담사를 통해서 수집되지 않던 데이터를 수집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더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고객사와 다시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고, 당연히 고객사와의 미팅에서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기왕 데이터 분석에 손을 댄 김에 조금 더 검증해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 조직에 있는 데이터 분석 전문 직원이 그 회사를 포함해서 우리 솔루션을 제공받는 회사의 데이터를 한번 들여다 보고 모니터링을 하도록 했는데(참고로 우리 데이터 분석가는 콜센터에서 QA까지 거치고 분석 역량이 뛰어나서 데리고 온 직원으로 현장에서 고객상담 및 VOC 분석 경험이 있는 직원이었다) CRM데이터를 몇 개 붙이면서 재미있는 자료들을 내놨다. 그냥 단순하게 보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각도를 틀어서 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 예를 들어보자. 보통은 콜센터에 인입되는 문의 건은 생각보다 휘발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단순문의 건이었는데,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특정 브랜드 문의 건이 데이터에 많이 쌓여 있었다. 해당 유통센터에 방문하기 전에 구입하고자 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문의하는 건이었다. 보통 매장문의관련해서 콜이 많으면 회사에서는 어떤 브랜드들이 있는지 알려주는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그 유통업체에 입점하지 않는 브랜드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그 지역 소비자들의 브랜드 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러한 데이터를 묶어서 보내줬는데, 그 회사에서 반응이 좋았고 당시에 파일럿으로 활용하던 시스템을 정식계약하는 것으로 이어졌었다.


이렇듯 고객의 VOC는 수집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값을 제공한다. 기업은 컨택센터를 통해 수집된 VOC를 가장 많이 관리하지만, 그렇게 수집된 VOC 대부분 불만성이 많기 때문에 소비자조사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요구를 사전에 알아내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소비자 조사들이 제품 지향적이지 고객 지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서비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지를 체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서도 해당 기업의 혁신에 기반을 두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체크하기 때문에 그들의 숨은 니즈를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고객관점에서의 관심사를 잘 관찰해야 한다.


고객은 우리 서비스만 보는 것이 아니고, 서비스의 수준도 같은 업종 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목표를 잡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서비스의 지향점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읽고 인사이트를 발굴해 내야 한다.


필자는 연초가 되면 구성원들에게 리포트 포맷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 직원들이 상당히 우려를 한다.

"어떻게 바꿀까요? 어떤 내용을 추가하나요? 혹시 원하시는 데이터가 있나요?" 나는 "일단 가로와 세로만 일단 바꿔봅시다."라고 말한다. 가로 세로만 바꿔도 데이터는 다르게 보인다. 익숙한 포맷은 익숙한 사고를 낳는다. 조금만 시각을 비틀어도 새로운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리더의 눈높이에 맞춰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새로운 리더가 부임해 오면 그 리더가 이전에 사용하던 포맷을 구해와서 맞춰주거나 한다. 익숙한 포맷, 익숙한 기준, 그러나 그렇게 하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데이터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익숙한 숫자 속에서, 고객의 진짜 이야기를 읽어내야 한다.


포맷을 바꾸는 작은 시도에서부터 진짜 통찰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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