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잘 다니던 서비스 기획자의 퇴사일기 1편
나는 회사원이었다. 마지막 직장은 판교의 등대라고 불리는 대형 온라인 게임사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서비스 기획을 했다. 담당한 온라인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서비스 출시 준비, 출시, 고도화, 서비스 종료까지 모든 여정을 함께했으니 그야말로 ‘온라인 내 새끼’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서비스를 왜 종료하게 됐는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의 가족사와 사내 정치적 이슈들도 얽혀 있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서비스가 종료되고, 우리 팀이 해체된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의 메인 프로덕트가 온라인 게임이었다 보니, 사내에서는 서비스 기획자의 커리어를 쌓기 힘들었다.
서비스 종료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미친 듯이 이직 준비를 했다. 회사 사무실에서는 다 같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이력서를 썼다. 개발팀에서는 코딩테스트를 준비하고, 팀장님들은 팀원들의 코드 리뷰를 해줬다. 다시 목격하기 힘들 것 같은 진풍경이었다. 다들 서비스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면서도 라이브 이슈가 터지면 빠르게 대응하는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기획하고 싶은 서비스도, 가고 싶은 회사도 없는데 내쫓기듯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회사를 다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게 뭔지, 앞으로 뭘 할 것인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이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 잠깐 시간을 내어 고민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몇 년째 여러 회사를 다니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는 그만 다니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이직이 잦은 편이었는데, 어느 회사를 가든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아, 퇴사하고 싶다’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을 안 해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안전한 수입으로 먹고살고 싶다’는 의미이다. 적어도 내 또래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동료들은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남들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일하는 게 좋다. 안전한 것도 싫다. 안전한 일만 하면 주변 환경에 변화가 없고, 도전하기 힘들고, 스스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내가 왜 퇴사했는지 여러 핑계를 밝히며 스스로를 방어해 보려고 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