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을 정리할 때나 결정이 필요할 때 표를 자주 활용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 놓고 보면 전체의 맥락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어느 쪽을 더 많이 나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열된 요소 하나하나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다 나열하고 나면 그걸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비교한다. 아래는 회사를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고민하면서 작성한 표이다.
그러면 내가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알게 된다. 선호하는 쪽으로 편향이 치우치게 된다. 예를 들면, 나는 회사 안에서 얻는 것으로 ‘일하는 노하우’를 추가할지 고민했다. 풍요로운 인프라에서 뛰어난 동료와 함께 일하면 분명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프라가 그렇게 좋지 않다면? 뛰어난 동료가 없다면? 언젠간 회사 밖으로 나올 텐데, (이미 여기서 결정이 어느 정도 진행됨) 배운 노하우가 회사 밖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면? 더 배울 게 없다면? …
반대로, ‘삶에 대한 여유’는 회사 안에서 잃는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스트레스와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회사 밖에서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뭔가를 적을지 말지 헷갈리면 더 이상 작성하기를 멈춘다. 이제 전체 내용에 대해 회고하며 검토할 타이밍이다.
이제 요소 하나하나의 무게를 달아본다. 우선 세로로 비교한다. 표는 생각나는 대로 나열했지만 대체로 우선순위가 더 높은 요소를 먼저 적게 된다. 내 무의식을 존중하며 요소들의 상하관계를 조정한다. 더 중요할수록 위에 놓는다.
그다음엔 가로로 비교한다. 표의 1번에서는 내가 회사에서 받는 돈과, 회사 안에서 잃는 나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력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소중한지 결정한다. 내가 회사원으로서의 몸값을 최대한 올렸을 때를 가정한다. 그럴수록 내가 잃어가는 나의 가능성과 상상력이 커진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반대로, 나만의 가능성을 마음껏 실험하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가정한다. 이 때는 회사 안에서 받는 돈보다 적은 벌이로 생활해야 될 경우를 함께 상상한다. 이미 경험이 있다면 양쪽의 무게를 가늠해 보기 더 쉽다. 나는 돈벌이 수단이 뭐가 됐든 내 생각과 상상력을 잃는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다.
그러면 내 1번의 결정은 회사 안에서 잃는 것이 더 아깝다는 쪽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나머지 번호도 비교한다. 같은 번호끼리만 비교하지 않고 반대쪽의 우선순위가 높은 항목과도 무개를 재본다.
우선순위를 다 매기고 나면 잠시 시간을 가지며 쉰다. 우선순위를 며칠, 몇 달에 걸쳐 회고할수록 나는 더 신중해지고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회사를 계속 다니거나 그만두는 결정을 한다. 우선순위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수록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만약 회사 안에 있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든 회사의 돈을 많이 빼먹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 이직을 해야만 급여를 높일 수 있다면 포트폴리오 컨설팅도 받고, 면접 연습도 수백 번 하고, 시험이나 자격증을 위해 공부한다. 이직을 안 해도 사내 평가로 급여를 높일 수 있다면 좋은 평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게 일반적인 평가기준과는 관련 없더라도 돈을 많이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같은 우선순위였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력은 얼마나 어떻게 표현할 수 있든 아쉬워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력을 생산하고 표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한다. 삶에 대한 여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도 의식적으로 쌓아간다.
위의 방식은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은 포기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나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게 힘들다. 그래서 한 가지에 몰입하고, 몰입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다음 전략을 세우는 삶을 살고 있다. 대안을 만들고 타협하는 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