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째 ADHD 약을 먹는 친구의 고백
시작은 내 동거인의 친구(이하 A양)의 고백이었다.
나는 내 동거인만큼 A양과 친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 셋은 대학교 생활을 같이 했기에 건너 건너 알고 있다.
그날은 A양이 으리으리한 국내 대기업의 팀장직을 그만두고 빠듯한 나이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며 고백하던 날이었다.
동거인도 A양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고, 뭔가 색다른 도전을 해 보고 싶다며 A양을 응원했다.
동거인과 A양은 MBTI도 ENFP로 같으며 성격과 습관 또한 여러모로 비슷하다.
대화 중간에도 갑자기 다른 주제의 말을 꺼낼 때가 많다든지,
관심사가 계속 바뀌고 추진력도 강해서 항상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든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계속 탭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나는 내 동거인과 A양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활발하고 어딘가 독특한 면이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A양의 두 번째 고백을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A양은 ADHD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을 십 년째 먹고 있다며 고백했다.
그 약이 아니었다면 사회생활을 하고 일상을 꾸리는 일이 못 견디게 힘들어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뜨렸다.
나는 내내 웃는 A양이 그동안 그의 삶을 버텨 내느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맞춰 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내 동거인은 A양과 헤어지고 집에 와서도 A양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신 산만하고, 집중하기 어렵고, 충동적인 자신의 모습이 사실 A양처럼 ADHD 때문은 아니었을지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걱정되면 정신과에 가서 한번 진단해 보지 그래, 라며 남의 일처럼 제안했지만
동거인은 바로 다음 주에 정신과에서 약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며칠에 걸쳐 ‘풀 배터리 검사’라는 것을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동거인은 자기가 ADHD이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 실패, 후회로 남은 행동과 결정들이 ‘사실 당신은 ADHD였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용서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동거인은 나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풀 배터리 검사에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는 말을 해댔다.
네가 ADHD이든, 중2병이든 언제나 너와 함께 하려는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일주일 내내 지겹도록 그놈의 ADHD 타령을 듣다 보니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됐다.
삶에 변화를 가져올 어떤 결과를 들을 때마다 내게 냅다 전화부터 하던 동거인은 집을 떠난 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동거인을 맞이했고, 결과를 전해 들었다.
풀 배터리 검사 결과, 너는 ADHD 환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