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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로 Sep 04. 2023

네 걱정도 좀 하란 말이야

ADHD+불안+우울=너

이동장에서 노는 우리 집 햄스터 버거


풀 배터리 검사 결과, 내 반려인은 ADHD 환자가 아니었다.

너는 ADHD 환자들의 증상이 나타나는 불안•우울증 환자였다.


너는 2주 치 약이 두둑하게 들어 있는 약봉지를 들고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

네가 다니는 정신과는 특이하게도 병원 안에 약사님이 계셔서,

병원 안에서 약에 대한 설명도 듣고 조제도 받아 왔다고 했다.


네가 받아온 약의 효과는 불안과 우울함을 완화시켜서 ADHD 증상도 함께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아침약은 주의를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

저녁약은 악몽을 꾸지 않고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이라고 했다.


네가 약을 먹은 지는 몇 달이 지났다.

그 약은 하루쯤 먹지 않아도 약효가 세 달 뒤쯤 발현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지만

나는 아침약을 먹은 너, 깜빡하고 먹지 않은 너를 구분할 수 있다.


아침약을 먹지 않은 날의 너는 밥을 먹을 때 식탁이나 옷에 꼭 음식물을 흘린다.

너는 목표에 집중하지 못해서

익숙하고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도 화면에 GAME OVER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띄우고

너는 변수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까지 땀을 줄줄 흘리며 뛰어가거나 아예 늦어버린다.


네가 약을 먹으나, 먹지 않으나 똑같은 점도 있다.

너는 인터넷에 있는 글은 마우스로 드래그를 하면서 읽는다.

뭔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리를 막 떨어대고

네 옆에서 잘 걸어가고 있는 나를 가로질러 걸어간다.


너는 항상 모두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해야 하는 전날에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잔다.

그리고 아침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나의 손에 네 핸드폰을 쥐어 주면서

거절하는 문자를 대신 써 달라고 한다.


저 사람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저 사람이 나를 떠나면 어떡하나,

자기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아서 혼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루종일 걱정한다.

내가 네 옆에 항상 있을 거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너는 항상 사람 때문에 걱정하면서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

누가 너를 찾기라도 하면, 너는 밥시간만 되면 플라스틱 벽을 벅벅 긁어대는 우리 집 햄스터처럼

그를 향해 달려 나간다.

그래서 너는 네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끝마치지 못한다.

네 우선순위에서 너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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