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다. 뭔가 있다! 보이지 않는 밝은 그림자 같은, 들리지 않는 가녀린 소리 같은, 이리 보이다 저리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저게 바깥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듯도 한데, 막연한 간지럼을 태우고 정체를 들키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어른거린다. 무슨 까닭의 신호일까? 감춰지지도 드러나지도 않은 형체, 그저 현상에 묻힌 듯 섞인 듯하면서 돌올하게 문득문득 나를 잡아당기는 저…
근원을 모르는 이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지 않고 아예 벗어나려면, 헤쳐 나오지 못할 미로일지라도 거기 탈출구가 있다면 기어이 들어가야 한다. 숲이여, 전생의 끝에서 얼비치던 그 입구나마 일러 주시라. 지난 생에서 풀지 못한 갈구가 내내 가슴을 찌른다. 다시 한 생을 소진하여 미로의 한구석에서 몸은 다할지라도 마지막 숨결이 별똥별처럼 터져 출구를 찾을지도 몰라. 지구별에 온 이생의 까닭과 의미와 방향을 순간에 보여줄 빛, 소리, 바람 그리고 바깥…
미로가 감춰진 숲이 여기 어디일까. 길을 벗어난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데 또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느낌에 오감을 곤두세운다. 개미집으로 가는 외길이든 잔가지 끝 나뭇잎에 드리운 거미줄이든 송사리의 재빠른 지느러미든 쫓아가야 한다. 입구는, 들뜬 흙 속에 있을까. 나뭇잎 사이 걸린 거미줄일까. 소금쟁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있을까. 미로인 줄 모르는 미로에서 문을 찾아 갸웃거린다.
무얼 갖기 위해 무얼 버려야 하나, 어딜 오르기 위해 어딜 디뎌야 하나, 무얼 갖고 올라가야만 길의 끝에 닿을까. 욕구가 욕구를 넘는 징검다리를 헛디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버둥대며 물살에 밀려 닿은 물가에서 다시 길을 잃는다. 나를 이끌던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미로라면 길을 잃도록 약속되어 있었다. 약속에 맞서 기필코 출구를 찾으리라, 약속을 깰 약속을 다잡는다. 허방다리를 헤쳐 나가는 약속의 길은 어렵고 멀어서 몸과 정신이 서로를 탓하며 기우뚱거린다. 툭하면 약속을 잊는 발길을 유혹하는 길가의 요정들. 이 또한 내가 찾는 느낌과 닮아서 지칫거린다. 아님을 배우고 다시 길을 찾는다.
스치는 결에 금세 잊어버리는 지금, 여기, 살아있는 까닭. 그 까닭을 찾아 거슬러 오르면 존재가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과 이치의 겉모습은 드러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원에서 궁극으로 흐르는 까닭은, 대자연이 존재하고 돌아가는 섭리와 그 속의 비의(秘義)처럼 내밀해서, 태초의 까닭도 생명의 신비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하여도 나는 자연 안에 있고, 자연은 그 비의(秘義)의 부스러기들로 가득하다. 암시와 징조와 조짐이 너울거리는 세상이라는 숲.
산이 일어서고, 바다가 나뉘고, 바람 불고 비가 오고, 생명이 나고 죽고, 너와 내가 만나고…, 세상의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지는 않는다. 모든 현상이나 일들은 오래 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근원의 까닭을 모르듯 내가 모르는 가운데 이어지는 약속들은 얼핏얼핏 암시와 징조와 조짐을 흘린다. 도시의 번잡하고 급급한 삶 속에서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숲속에 들어서서 나무와 새와 벌레들의 모습과 소리를 들으면 그 하나하나가 일어나고 있거나 다가올 이야기가 된다. 바람 소리만 바뀌어도 동식물들은 저절로 아는데, 말과 글에 길든 나는 좀체 알아듣지 못한다. 알 듯 말 듯한 기척이 잡히다가 사라진다.
자연은 워낙 널리 연이어져 어디를 콕 짚어 이르지 않고 에둘러 이야기한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풀잎을 갉아 먹던 벌레가 노래할 때, 그 벌레를 삼킨 새가 더 크게 소리치고, 그 새가 앉았던 나뭇가지가 떨려 바람이 된다. 바람은 구름을 모으고 모인 구름은 비를 내린다. 비를 맞은 식물이 자라고, 식물을 먹은 동물이 씨앗을 퍼뜨리며 자란다. 숲속은 사람 세상보다 더 생동하는 이야기가 겹쳐 흐른다. 느닷없는 간지럼이나 재채기가 일어나면 어떤 이야기가 두드리는 기척일지 모른다. 나는 시침 떼는 나무를 안고 위를 보며 귀 기울인다.
느낌은 감미롭다. 돌아갈 수 없는 엄마의 품이나 첫사랑에 안긴 듯 가슴이 뛴다. 엉뚱한 데 기웃대고 먼 길 돌아온 날들, 알지 못할 서러움이 북받치며 내 얘기를 먼저 하고파 나무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까지 온 실마리조차 잊는다. 까닭 따위 다 잊고 그저 하나가 되고 싶어도 세속에 길든 몸으로는 나무의 문을 열고 들어서지 못한다. 허공에 수놓아진 나뭇잎 무늬가 다 암시인 듯하지만 알 수가 없다. 이 나무가 문이기를 바라는 욕구는 조바심이 된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호를 찾아야 한다. 나뭇가지에 스팽글이 걸려 있다.
욕구는 목적과 방향이 바뀌어도 마음의 눈을 가린다. 진작 사람 세상에 갇혀 나를 잃고 까닭도 의미도 모른 채 도구가 되어 내 생명은 소모되었다. 몰랐다,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변명은 스스로 제 모양을 지키며 어우러져 사는 이 숲의 뭇 생명들 앞에선 그저 부끄러움일 뿐이다. 그나마 타력에 끌려가는 삶과 자력으로 되려는 삶 사이 어긋나는 틈에서 한순간 까닭을 찾은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다. 이 또한 이제 실현된 약속이었음을 안다. 문을 찾아야 한다.
숲에는 입구인지 출구인지 모를 문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여기가 미로임을 다시금 알아차린다. 문들은 다시 미로를 되도는 함정이고 단 하나만 바깥을 향한다. 째깍째깍, 실존의 한계로 몰아가는 초침 소리. 시간의 결이 달라지는 문을 일러줄 암시나 조짐이 있을까. 미로는 유한하고 과정일 뿐이건만, 몇 번의 생을 소진하여도 벗어나기 어렵다. 통과도 탈출도 아닌 이 시공에서 아예 벗어날 길은 태초의 까닭과 감응하고 영원히 이어진 시간의 벽을 넘어야 한다.
시간은 온 우주에 그득 차 있을 뿐 흐르지 않는다. 무한한 시간의 통로에 빼곡히 박힌 문과 문을 존재들이 지나가고 통과하며 나아갈 뿐이다. 찰나의 순간에 시간의 틈새가 열리는 단 하나의 문만이 바깥으로 향한다. 존재는 시간의 한 시각에 머물 수 없기에 시간을 넘어서려는 욕구는 오래되었다. 존재가 실린 시간은 외줄기이고 형체 없는 표면은 미끄럽다. 시간을 이기려는 한 가지 욕망을 이루려 시간을 탔다면 시간의 멱살이라도 거머쥐고 머리를 그 속에 처박아야 한다. 아니면 시간의 부력에 튕겨 나가 아무도 모를 어둠에 박제될 테니.
뒤로 휙휙 지나가는 타인의 시간과 결이 다른 나만의 시간을 꽉 붙들고 있다면 어찌 될까. 나만 정지된 채 공간은 기차 밖의 풍경처럼 뒤로 사라지고 나는 늘 내 모습이어도 남들에겐 보이지도 않겠지. 다가오고 지나가는 시간 곁에 밀려난 듯 실려 있겠지. 찾던 까닭 따위 잊어버리고, 벗어나려 찾던 찰나에 열리는 틈새는 거듭 놓치겠지. 시간이 흐르지 않아 어디에 다다르지 못했으면서, 변하고 구부러진 한 가지 욕망마저 땀에 젖고 힘이 빠져 미끄러지면 잊었던 내 자리가 그립고 서러워 울지나 않을까. 그러면 그만 손을 놓겠지, 진땀 나도록 부여잡고 매달리던 까닭은 지리멸렬해지고 꿈도 욕망도 스러진 거기서.
여전히 있다. 늘 곁에 뭔가 있다. 먼 우주에서 툭툭 끊어지며 여기까지 온 별빛 부스러기. 궁금해하면서도 덮어두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 궁금증이 이끈 상상의 숲에는 곳곳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답이 있고, 그것은 다시 어디로 통하는 문이 된다. 문밖의 시간에 매달렸던 여행에서 울면서 되돌아온 지금, 여기, 어둠 속을 흐르는 빛과 소리. 이제는 정체를 알만한 어둠이 암시하는 허공. 거기 별똥별처럼 터져 궤적을 그리는 내가 있다. 그 자리에서 점 하나로 희미해지며 소멸하리. 여기 숲속 나무의 문을 열고 나온 나는 다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