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발목을 잡는 것은
유학, 교환학생, 해외여행에 공통적으로 꼭 필요한 것은?
정답은 언어도, 용기도 아닌 돈이다.
생각보다도 많은 돈.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었기에 돈에 관한 나의 서사를 풀어내야 시작이 될 것 같다. 첫 에피소드인 만큼 왜 해외로 나가고 싶었는지 동기도 조금 보탰다.
유학 없이 해외취업에 성공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현실적으로 와닿고 도움이 될지 고민했다. 모든 사람의 상황이 다른 것처럼 이 글도 어쩔 수 없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될 수밖에 없겠다.
우선 나는 여유가 있어 해외로 나온 것이 아니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방학 때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용돈을 받아 쉽게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들까지도 부러웠다. 나는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고 엄마께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결국 가지 못했다.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오빠와 스무 살 차이 나는 늦둥이 동생이 있다. 그나마 내가 외동이라면 사정이 좀 달랐을 텐데, 엄마는 세 명을 혼자 먹여 살려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일만 하며 우리를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엄마가 힘들어 보이니까 어떻게든 일찍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교 근처에 있는 떡볶이 집이었다. 정말 얼마 안 되는 생에 첫 월급을 엄마에게 드렸다. 이렇게 자라 온 내가 교환학생을 보내달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수능을 마치자마자 11월부터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줄기차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성인인데 용돈을 받기에는 염치없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자립심이 강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는 1년 동안 휴학하고 다시 일을 했다. 다만 그냥 닥치는 대로 알바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이 있고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들만 골라했다. 그렇게 열심히 모은 돈으로 적금도 들었다. 시각디자인과의 졸업전시로 인당 백만 원 정도가 걷힐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저것 재료비와 출력 비용까지 하면 추가로 몇 십만 원은 가볍게 넘어갔다. 학생 때는 정말 가진 것이 없었고, 시급이 낮으니 돈을 모으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단순 서빙 이외에 영어 강사나 피팅모델처럼 시급이 높은 일들만 골라 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며 목돈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창 배워야 미래가 밝아지는 시기였기에 나갈 돈 투성이었다. 자기 계발로 코딩도 접해보고 싶어 학원을 짧게나마 다녔었고, 디자인 포트폴리오 학원도 어떨지 궁금해 다녀봤고, 토익 학원도 방학 특강으로 다녔었고, 취미 활동도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연애도 했고, 여행도 다녔으니 시간을 쪼개 열심히 번 돈은 고스란히 다 나갔다. 그래도 그 시기는 한 번뿐이고 나중에 봤을 때 그 돈의 액수는 적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회는 조금도 없다.
다만 그 당시에 학생 신분으로 혼자 모두 벌어서 쓰고 저축한 돈이기에 해외로 가 생활하기에는 풍족할 수가 없었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2월, 호주행 편도 직행 티켓을 끊었다. 한 달만인 3월 중순에 거처를 옮겼다. 나의 첫 해외살이가 시작되었다.
한국이 싫었다.
나와보니 지금은 한국의 좋은 점들도 극명하게 보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학생인데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더 힘들까, 중압감이 졸업 전부터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타고난 기질이나 마인드셋도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 힘들기도 했다. 가치관이나 집단문화, 다른 이런저런 문화들에서 튀지 않아야 했으니까.
막연히 해외에 나가 살아보고 싶다는 판타지 같은 것도 있었다. 대학생 때 책을 읽었던 기록을 살펴보니 해외살이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많이도 찾아 읽었다.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등의 책을 읽고는 했는데, 지금 내가 호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으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생활비를 얼마나 들고 가야 하는지 궁금할 텐데, 그냥 최대한 많이 가져오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 적게 쓰고 빨리 취업하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온다면 내가 원치 않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와서도 바로 취업하려고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일한 이야기 같지만 정말로, 정말로 일을 할 곳 자체는 많다. 내가 고르고 골라내기 때문에 취업이 늦어지는 것뿐이지, 막상 부딪혀 살아가다 보면 굶어 죽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해외로 거주를 옮기면 최소 첫 한 두 달은 여행도 다니고 여기저기 맛집과 펍, 공원 등 다양하게 돌아다니며 정말로 해외에 왔음을 실감했으면 좋겠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 이것도 현실적인 이야기에 포함된다. 왜? 일을 시작하면 쉬는 것은 힘들어질 것이기에.
나는 첫 두 달을 꽉 채워 놀고나서 취직을 했다. 바로 구인구직에 들어갈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그 기간에 타지생활을 즐기고 적응하며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곧 올라올 다른 회차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전문직 취업 가능한가요?>에 구체적으로 적을 예정이다.
생활비를 참고할 글은 여기에 있으니 보면 도움이 될 법하다. 해외여행도 포함된 매 달의 지출을 자세하게 적었다.
아, 비자 비용도 꽤 어마무시하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선 이번 에피소드는 아주 간략하게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돈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다른 큰 문제가 남았다.
'유학 없이' 해외 취업이 가능한지에서의 또 다른 큰 고민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언어, 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일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잘해야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 취업의 관문을 뚫을 수 있을까. 심지어 그 경쟁자들은 영어권 사람들이 대다수일 텐데.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희망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정말 가능하다. 심지어 나는 직장인으로서 경험을 쌓고 돈을 벌다가 이민을 시도한 케이스가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말 딱 두세 달 정도의 생활비만 들고 왔다. 그러니 이미 경력도, 모아둔 돈도 어느 정도 있는 사회인들에게 해외취업은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에 그냥 쉽게 거저먹는 일은 없다는 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는 법이다. '운이 좋은 편이어서'라는 글들을 웹상에서 심심치 않게 접했는데 정말 그들은, 나는, 운이 좋아서 가능했을까?
유학도 없이 토종 한국인인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 만에 먼 땅으로 날아와 어떻게 취업을 했을까? 이제 언어공부, 영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호주 데일리 라이프 & 비거니즘 콘텐츠 업로드: @genevieve_ji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