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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vieve Nov 13. 2022

호주 회사에서 만난 사람새끼들 (하)

직장 상사에게 뻐큐를 했다

https://brunch.co.kr/@genevieve/48

전 회사에서의 그 매니저 이야기부터 풀어나가 볼까.


나보다 경력이 훨씬 기니 그에 맞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상사이니 리스펙 할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업무  하나는 홈페이지에 디스플레이된 메인 슬라이드(배너 사진) 매주 교체하는 일이었는데, 그의 방향 제시는 이러했다.


이 때 바로 퇴사를 했어야 했다.


그는 열광하며 이런 디자인이 Fantastic 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Fantastic이라는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내가 그를 리스펙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느낄 터이니 나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문제가 없는 디자인을 포함해 심지어 그가 제시해 준 방향대로 디자인물을 만들어 주어도 계속 수정을 요구했다. 입가에 살짝 머금은 미소가 일부러 괴롭히는 것임을 확신하게 했다.


직원들끼리 자리도 붙어 있었고 대화를 많이 하며 일하는 분위기였는데, 임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나에게 시급을 받는지 연봉을 받는지 물었다. 연봉이라고 대답해 주었을 때에는

'Wow successful woman!'

라고 하며 히히덕댔다. 직원 모두가 풀타이머로 일하고 있었고, 나의 직급은 리드 그래픽 디자이너였기에 파트 타이머일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 물어본 그였다.


회사에서 실제 성격과는 조금 다른 페르소나(부캐)를 가지고 일을 하는데,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해서일까 가만히 있을수록 가마니로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침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제네비브 부캐 속의 본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몇 마디만 더 해라 넌 뒤졌다.'


계속해서 그는 본인의 얕은 인성을 알 수 있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가고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숨어있던 나의 자아가 그 무시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너 이거 할 줄 알아?', '네가 뭔데?' 등의 직접적 발언부터 누가 봐도 무시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0.1초 이내로 '어.' 하고 말을 자르며 대답하는 것, 그가 자신의 아기 사진을 보여줄 때 한 2초 간 숨길 수 없는 썩은 표정을 전시하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귀엽다~'한 후 그의 굳은 표정을 확인하는 정도?

아 맞다. 눈앞에다 대고 뻐큐도 했다. 물론 다들 장난치는 분위기 속에서 한 것이었지만 그에게 나의 진심은 전해졌으리라.


한국이었다면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매니저(보통 해외에서는 팀장/차장/부장 통틀어서 매니저)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실 내 모국어인 한국말이었다면 나는 더 신명 나게 깠을 수도.


사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회사 생활이었어서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니 많이 잊어버렸는데, 거의 사내 괴롭힘에 가까웠다고 보면 된다. 이 작은 온라인 팀은 나를 포함해 고작 4명이 전부였고, 나머지 셋의 대화에서 누가 봐도 내가 배제되어 있음이 느껴지는 말들이 오갔으니 분위기를 캐치하는 것은 쉬웠다.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는 했다. 리드 그래픽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자 상태 때문에 항상 나만 칼퇴근을 하고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나 없이 초과근무를 많이 감행한 모양이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했는데 수당도 못 받는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너는 주말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을 느껴라 이거지.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쉬운 일에다가 근무 시간 외에도 업무를 해야 했으니 분노의 표적은 뚜렷했다.


이 매니저 말고 브라질에서 온 다른 직원도 있었는데, 이렇게 감정적이고 다혈질인 사람을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같은 여자이기에 함께 공감대를 나눌 부분도 있을 것이고 함께 일하며 나아갈 동료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 잠시 생각했는데, 그는 팀의 매니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이니 동참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매니저와 다른 남자 직원은 점심을 사러 나갔고, 이 직원과 나는 둘이 남아 점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어색해 내가 먼저 분위기를 풀어야겠다 생각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점심 싸온 거 뭐야? 타이? 베트남?'

그리고 그는 답했다.


'둘이 구분도 못해? 외식 안 해?'


하. 정말 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걸까. 내가 뭐가 그렇게 미울까. 만만해 보이는 걸까. 전 에피소드에서 '간섭받는 것을 싫어해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나의 성향을 언급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먼저 절대 타인을 건드리지 않는다. 남에게 관심도 없거니와 일터에서 사람으로 인한 감정 소비를 조금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누가 시비를 건다? 넌 진짜 뒤졌다.


'뭐라고?'

'타이랑 베트남 음식 둘 구분도 못하냐고'

'야 너 발음이 X 같아서 뭐라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한번 말해봐'


그리고 그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게 괘씸해 더 이어갈까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는데 일하는 곳에서 굳이 이렇게 할 일은 아니지 않니?'


다시 돌이켜 봐도 그곳은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진짜 보스는 바빠서 사무실에는 몇 번 들르지 못했고, 보스의 역할을 해야 할 매니저가 회사의 분위기를 흐렸다. 리드 그래픽 디자이너인 나는 다른 팀원들과 더 남아 일을 하지 못했으며, 초과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마땅치도 않거니와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분노의 방향은 보스가 아닌 내게로 향했다.

내가 할 말을 다 하고 어디 가서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분이 나쁜 말들을 들어도 웬만하면 최대한 많이 참는다. 지나고 나서 속상하니까 생각도 많이 난다. 정말 둥글둥글했던 나였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많이 깎여나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일하고 싶은데 그게 왜 이리 힘들까? 왜 인간은 서로에게 나이스 하지 못한 걸까.


몇 년 간의 사회생활에 이 짧은 몇 문장의 에피소드밖에 없었을 리가 없다. 오늘은 이만 줄이겠지만 혹시라도 더 궁금한 사람들이 생긴다면 풀어낼 의향은 있다.

우리들의 밥벌이가 최대한 평온하고 마음이 온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호주 데일리 라이프 & 비거니즘 콘텐츠 업로드: @genevieve_j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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