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게 애정하는 방식
“넌 참… 잔인하다”
뇌리에 박혀 자꾸 맴도는 말이다. 나는 정말 잔인한 사람일까, 나는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행동하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평등하게 같으면 좋겠지만, 똑같은 무게나 양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사랑을 받고 싶고 갈구하게 되는 마음. 그런 불평등한 저울질이 있어 어떻게 보면 관계가 이어져 나가고 성장해 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저울질 때문에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참 잔인하게 되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불평등해 보이는 마음의 저울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저울질은 할 수 없다. 사랑하는 모양과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수십년 살아온 배경과 양상이 다르고, 각자가 겪어온 사랑의 관계와 상처의 경험이 다를텐데, 어떻게 정형화된 일반적 잣대를 들이대며 너와 나의 사랑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
잔인하게 굴었던 사람에게 잔인하다는 말을 직접 한다는건, 그만큼 이전 관계에서의 태도와 정반대가 되었기 때문일거다. 그 간극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이게 정말 너의 실체였냐고 되묻고 싶었던 걸까. 또는 이전처럼,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전의 애정을 조금이라도 보이며 대해주지 않겠니, 라는 에두른 요구일까. 아마도 그렇게 단박에 인연을 끊지 않고서도 서서히 멀어지는 방법도 있지 않겠냐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어떤 애정의 관계가 끝이 났을 때 대체로 나는 잔인하다. 잔인하다는 건, 헤어짐을 고하고 난 뒤에는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는, 한 번에 끊어내는 행동을 말한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기로 결정했고, 그렇다면 이전의 관계와는 양상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잔인하게 애정을 끊어내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컸기 때문이고, 그 애정이란 것은 미련이라는 모습으로 탈바꿈해 자꾸만 관계를 이전처럼 지속하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정은 함께 해 온 시간과 기억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지울 수가 없다. 어떤 흔적들이 내 안에 남게 되는데, 그 흔적들을 이전과는 다른 관계 속에서 재정의하고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면을 스스로 열어야만 한다.
잔인하게 비춰진다 하더라도 잔인한 사람이 힘들지 않았다 할 수는 없다. 이전과 180도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나 역시도 그만큼의 큰 에너지를 들이면서까지 잔인하게 돌변한다는 의미다. 관계라는 것이 하나의 흐름일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변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에너지를 쏟으면서까지 잔인한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처음 시작될 때의 우리의 모습이 변하는 걸 보면, 그 역시도 큰 에너지로 180도 돌변한 모습이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라고 느끼는게 사랑이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걸 감내하면서까지 이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고 느끼는게 사랑이다. 돌연 변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별도 돌연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연 변하는, 강력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내가 속으로 바라고 있는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경의와 상대방의 삶에 대한 응원이다. 더 이상 함께 걸어갈 수 없지만 헤어진 상대방 자체의 선택을 존중하고 앞으로의 너의 삶을 응원해,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지금은 당장 참을 수 없을만큼 아프더라도, 빠르게 행복할 수 있을거니까. 너에 대한 어쭙잖은 말 한 마디와 선의 하나가, 네게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 네가 그 희망 때문에 너의 길을 걸어가는 데에 주저하거나 또다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실은 어쩌면 나 역시도 이 관계로부터 또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삶에서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장 큰 사람이다.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누군가에게 잔인한 사람으로 남고 싶을까. 게다가 애정하는 그 누군가에게, 증오 어린 마음을 받고 싶을까. 증오를 감당하기엔 스스로도 힘들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 증오를 감당하고서라도 나 때문에 더이상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인해, 다른 그 무엇으로 인해 행복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다시 행복해 지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이별을 고했든, 이별 통보를 받았든, 두 가지 상황 모두에서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잔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별의 상황에서는 이별을 누가 먼저 고했느냐와는 관계 없이 양쪽 모두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이 뒤따른다. 더 이상 그 고통을 이전처럼 전 연인에게 공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 자신이 오롯이 견뎌내야만 하는 독립적인 영역이라 여겼다. 나는 나의 마음을, 상대방은 상대방의 마음을 스스로 직면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잔인한 고립된 선택이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보일 수 있으나, 나의 마음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건 내가 나 자신과 너, 각자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의 다음 사랑에 떳떳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다. 과거의 사랑에게 떳떳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음 사랑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그러니 나는 그대들에게 세상 가장 잔인하면서도 여전히 애정한다고 말하고 싶다. 끝까지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바라고 궁금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