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우면서도 간절하게 믿고 싶은 한 가지
마음 속 깊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인생의 단 한가지의 그 무언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 진짜 나를 발견하는 데에 핵심이 될 중요한 감정이다.
무엇을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아마도 너무 행복하면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인걸까. 이토록 처절하게 원하는 것, 그건 다시 말해 나의 가장 유약한 부분이 된다. 가지지 못 하면 절대로 안 될 것이니까, 마음 속 더 깊이 숨겨버리는 마음. 그리고 그걸 가지기 위해 간절하다 못해 비루해 지기까지하는 극단적인 나 자신을 보기 싫은 그런 마음.
언젠가부턴가 열망하는 그 무언가를 꽁꽁 숨기려 들었다. 빼앗길까봐서 였을까. 혹시나 가지지 못 한 나 자신을 예상하고 비참한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였을까. 무언가를 갖지 못한 상태를 드러낸다는 게 처량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한없이 미약한 내 모습이 싫어서였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는 사실 두렵거나 불안한 감정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어떤 희망찬, 언제라도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같은 수준의 것이다.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의 버킷리스트라고 한다면 대부분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유럽 여행을 가 본다, 스카이다이빙을 해 본다, 어떤 체험의 무언가.
삼십대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버킷리스트는 텅 빈 백지였다. 경험해 볼 만한 것들은 이미 다 해 봤다. 앞으로도 여행은 하고 싶긴 하지만 엄청나게 열망하는 그 무언가는 아니다. 버킷리스트를 다음 연기 수업을 진행할 소재로 쓰일 거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너무 어려웠다. 지금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열망하는 배우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기 수업을 듣고 있었고, 다음 코스를 느리지만 계속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 자체가 행복하고, 오로지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당연히 촬영 현장에서 신들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된 내 모습, 그건 버킷리스트에 남겨두었다.
배우가 되고자 하는건 살면서 내가 계속해서 바라보고 지향하는 꿈이라 이루고 끝나는 어떤 체크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럼 그 외에 나는 어떤 걸 삶에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자유, 그리고 사랑이었다.
두 단어를 연결해 본다면 자유롭게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하고 나면 지울 수 있는 체크리스트 개념의 버킷리스트는 아니다. 그래서 이 상태에 도달하려면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보는데, 너무 복잡해 보인다.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텐가. 그걸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순수한 아이처럼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텐데. 나 자신도 나를 모르는데다가 알아가는 과정에서 강렬한 저항이 있을 것이고, 언제쯤 30년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막막해 졌다.
그래서 단순하게 결과만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상태는 인간 모두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버킷리스트로 지정하기 좋을 단 하나의 사랑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단 하나의 사랑,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어쩔 수 없는 생애 단 한 명인 그런 사랑. 서로가 무언가를 굳이 하지 않아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의 사랑. 그 사람을 만나서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사랑을 맹세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완전한 사랑의 상태가 허황된 것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으나, 나는 믿고 싶다. 그런 믿음이 현실에선 참담한 비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믿고 싶고, 내가 믿는다는 견고한 마음이 중요하다.
이해의 간극, 싸움, 그리고 수많은 배신을 목도해 왔다. 그토록 믿고 싶었던 단 하나의 사랑은 희미해져만 갔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건 비겁한 현실이 이상향 더럽히도록 놔둘 것인지, 아니면 나의 믿음을 강건하게 지키고 싸워나갈 것인지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이 비루하고 약하기만 한 ‘믿음'은 나의 확신과 의지가 없다면 무너져내리기 십상이다.
연기를 하는 일도 나의 상상과 감각에 확신을 갖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상상하며 보고 느끼는 것은 내가 확신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이걸 기반으로 소리를 내면서 표현을 한다.
단 둘이서 사랑의 서약을 맺기에 좋은 흰색 옷들을 어느 옷가게에서 사고, 놀이터로 가서 놀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서 맹세를 해 보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놀이터는 뭔가 황량한 것만 같아, 가로등이 켜지는 밤을 기다려 서울의 인적이 드문 어떤 가로수길을 버진로드로 삼아 함께 손을 잡고 걸어보기도 했다. 우리의 반지는 풀잎으로 대충 엮은 반지. 어떤 사랑을 주겠다는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며 미래를 맹세했다.
사랑만 있다면 그 어느 것도 가지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을 위해선 수많은 것들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니냐 할 수 있다. 맞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 사랑이 있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유일하고 소중하다. 그런 사랑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리내어 말한다. 나는 단 하나의 사랑을 꿈꾸고 있다고. 나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말함으로써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지켜내 본다. 나와는 다르게 여러 개의 사랑을 선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이해하지 못 하는 바도 아니지만, 나의 꿈은 단 하나의 사랑이다.
그리하여 나는 또 소리내어 말한다. 사랑에 나를 자유로이 맡길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