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Feb 26. 2023

메소드 연기 훈련 초급반을 마치며

다섯명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3개월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3개월 간의 메소드 연기 훈련 초급반을 마쳤다.


12년 만에 다시 시작한 훈련이자 배움이었다. 그 때도 겨울이었다. 대학로 지하 어느 극단 연습실에서 훈련을 했었는데, 지금은 연습실이 강남으로 옮겨갔다. 따뜻한 어느 지상의 연습실에서 훈련을 하고 있자니, 마치 배우가 되는 것을 선언한 것을 수면 위로 내보였던 나의 중심 이동과 같은 행적을 보는 기분이었다.


3개월 간의 훈련을 마치고 스스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규율과 규범, 획일화된 도덕성의 잣대로 인해 진짜 내 안의 목소리를 내는 시간은 하루 중 많지 않았다. 어쩌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 안의 어떤 생각이나 소리를 머리속에 머물게 하거나 삼키게 했지, 입 밖으로, 몸짓으로 꺼내어 발산시켜본 적이 없다. 한 번의 말실수가 관계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컸고, 그럴수록 더 조심해야만 했다. 내 안에 머무는 생각들이 회사에서 어떤 사업영역에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었고, 심지어는 사회생활에서 내 안의 소리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틀린 것이며 고쳐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권력이 있는 자의 생각만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 그건 권력의 남용이자 자유의 속박이었다.


연기 훈련 중에는 나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벗어나 존중받을 수 있었다.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느끼고 마음껏 소리내었다. 나의 마음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세상에 꺼내어 보일 수 있었고, 어떤 비난도 받지 않고 세상을 향해 울려퍼졌다. 연습실 그 공간은 나의 울림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낯설고 어색하게 꺼내어 본 나의 울림은 그 어떤 것의 비난을 받을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밝고 환희에 차 있기도 하고, 때론 섬세하고 어둡기도 한, 어쩌면 세상의 조그마한 그 무엇과 연결이 되어 있는, 그런 아름다운 존재였다.


나의 것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를 마주하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세상을 향해 사랑의 울림을 내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안의 사랑은 밖으로 소리내어 보낼 수록 더 크고 힘이 있어졌다. 비로소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미처 몰랐지만 나와 연결돼 있었던 세상 밖의 많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훈련의 시간, 나의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나’들을 발견했다. 수많은 ‘나’들이 부풀어올라 가슴이 벅차는 순간들, 나는 더 크게 부풀어올라 세상을 가득 메우고자 하고 있다.


이렇게 더 크고 따뜻한 훈련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함께 했던 초급반 사람들 덕분이다. 다양한 연령과 역사를 가진 다섯 명의 사람들이 3개월 간 함께 했다. 우리들은 모두 합심이나 한 듯이, 수업시간에 늦는 법이 없었고 수업 1시간 전에 모여 있기도 했다. 각자의 연기를 향한 꿈에 진심을 다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 과정에 함께한 우리 다섯은 개인의 마음보다 배가 된 마음으로, 꿈을 향해 더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서툰 존재다. 어쩌면 한 마디 말, 한 번의 눈짓과 손짓, 한 번의 건넴으로 우리의 서툴고 낯선 관계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우리는 각자의 꿈과 상상을 서로에게 말을 하며 건네고, 그런 나날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우리 다섯명을 만들었다.


개인의 꿈과 상상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매시간 목캔디 요정이 되어 준 JJ, 초급반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 자리를 만들어 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멋진 어른이 되는 건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JJ가 없었다면 우리 다섯의 함께 한 이 소중한 번외 추억들이 없었을거다. JJ는 한 번 생각하면 이루고야 마는 사람인 듯하다. 여태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하고 싶었던, 하고자 하는 바들은 정진해서 이루어 온 삶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어우르는 특유의 위트, 아마 사람들에게 믿음과 웃음을 주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장면연기에서 나의 동생 역할을 맡았던 주예, 따뜻하고 다정한, 말갛게 웃어주는 얼굴로 함께 해 주어서 고맙다. 주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게 참 자연스러운 친구다. 짧은 시간이지만 수업을 마치고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길을 걸으면, 주예 생각이 날 것만 같다. 캐릭터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생긴 궁금증과 생각들을 조잘조잘 늘어놓던 모습, 내가 본 대로 캐릭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따뜻한 배우로 스크린에서 보게 될 것만 같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밝게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소은, 어쩜 마음이 그렇게 예쁠까. 소은의 마음이 예쁜 건 단순히 곱게만 살아온 사람의 예쁨과는 다르다. 어린 나이에 빠르게 혹독한 사회에 놓였고, 어떻게보면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중심이 되는 곳에서 본인의 꿈을 키우고 이루어냈다. 거친 풍파를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쁜 마음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힘. 그것이 소은을 더 아름답게 해 줄 것이고, 더 깊고 강한 배우로 만들거라 생각한다.


한 번도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귀여운 관제, 선생님한테 혼날 때마다 머리를 긁으며 어리버리한 표정을 짓더니, 다음 시간에는 그새 모든 피드백을 수용해 성장하던 모습이 선하다. 사실 장면연기에서 맡은 역할이 관객들을 모두 반하게 만들어야 하는, 멋진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관제 본연의 성격이 반영된 연기도 매력있었다. 선생님께서 찌질한 캐릭터라 표현하셨지만, 내겐 오히려 귀여워서 더 마음이 간 캐릭터 연기였고, 그 본연의 캐릭터를 살려서 연기를 한다면 관제만의 특별한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될 거라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 준 준삼 선생님, 변하는 나의 모든 모습을 함께 해 주셨고,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거다. 든든하고, 감사하다. 얼른 변화하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 진다. 내가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까지, 그리고 훌륭한 배우로 거듭나는 순간까지 함께 해 주시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처럼 모든 이들의 대나무숲이 되어 사랑을 언제든 주고 받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 다섯명이 현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고대합니다.

그 날을 위해 게으르지 않게, 꾸준하게, 하지만 느리지 않도록 정진할게요. 소중한 사람들, 사랑합니다.


이전 07화 대기업10년차, 갑자기 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거야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