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석관동 캠퍼스 공개 발표회를 다녀오며
작년 6월 어느 초여름날,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를 방문했다. 연기 선생님이 한예종에서 한 학기동안 수업하신 셰익스피어 연극의 연기 실습을 공개 발표회 하는 날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던 시절의 연극처럼 야외 공간에서 1부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2부는 연극원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캠퍼스의 야외 공간 곳곳을 활용한 발표회는 새로웠다. 모든 공간이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관객들이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말을 하고 소리를 내며 반응할 수 있었다. 가령, 배우가 연기를 하며 울고 있으면, “울지마!”, “에이 왜 울어?”, “너 가짜 눈물이지?” 등의 반응을 할 수 있다. 관객들이 반응으로써 참여를 하지만 연극은 지속된다. 배우의 역량에 따라서 관객의 반응을 수용하여 그에 걸맞는 반응을 할 수도 있고, 원래 하던 대로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준비한 연극에 멋대로 반응을 하면 몰입이 깨질 것만 같지만, 오히려 관객도 배우도 더욱 이 상황에 몰입하게 되었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연극, 그것은 즉흥적으로 이 순간에 살아있는 연극이 되어, 일방향으로 단순히 전달하여 관객이 감상만을 하는 연극과는 달리 생생한 활력이 돋았다. 그 시간에 모인 사람들이 연극을 함께 완성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연극이었다. 그리고 그 날, 그 시간에 진행되었던 연극은 다시는 복제될 수 없는, 유일한 연극이 되었다.
한예종 공개 발표회에 참석했던 이유는, 나와 같은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있고 싶어서였다. 연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저게 맞을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모습이 저 모습일까. 공개 발표회가 진행된 6시간 동안 꿈쩍하지 않고 지켜봤다. 각각의 무대가 시작될 때마다 설렜고, 각각의 무대가 끝날때마다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극을 하고 있는 배우가 되기도 하고, 극중 인물이 되어보기도 했다. 분명한건 나도 나의 무언가를 꺼내어 나만의 다양한 결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지고 연극원 실내에서 오필리어의 독백 장면을 볼 때였다. 정신이 나간 오필리어의 독백 장면 중 오필리어가 관객들에게 꽃을 나누어 주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만수향, 기억하라는 뜻이야 - 나의 사랑, 잊지 마세요 - 그리고 이것은 상사꽃, 생각해 달라는 거에요. 당신에겐 이 회향꽃과 매발톱꽃을…”
당시 오필리어는 내게 회향꽃과 매발톱꽃으로 푸른 구슬 두 알을 쥐어주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을 옷 주머니에 넣고 구슬을 매만졌다.
배우의 꿈을 응원하던 언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의 마음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우라고. 하나는 배우의 꿈을 대변하는 개, 하나는 현실의 직업을 대변하는 개. 이 두 마리의 개에게 먹이를 줄 때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먹이를 잘 배분하여 키워보라고 했다. 구슬을 받지 못한 관객도 있고, 한 개만 받은 관객도 있는데, 나에게만 두 개의 구슬이 쥐어진 게 마치 나의 지금 상황을 상징하는 것만 같아, 언니의 말을 곱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에 푸른 구슬을 들어올려 보았다. 마치 나만의 달 같았다. 나의 푸르른 두 개의 달.
지금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작년 6월에 받은 푸른 구슬 두 알이 있다. 매일 잊지 않고 본다. 새로운 꿈을 향해 가는 현실이 녹록치 않아도 내겐 나만의 푸른 달이 소중하게 있다는 걸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