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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Mar 07. 2024

<무릎서재> 열일곱 번째 이야기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 -- 과학기술, 어떻게 할 것인가

로아야, 이번 글에서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동화를 한 번 더 이야기해 보자구나. 지난번 이야기에서 음식낭비와 기후변화를 주제로 다뤘다면, 오늘은 이 동화를 과학기술에의 의존이란 주제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단다. 로아가 두 돌이 되어가는 지금이나 로아가 살아갈 미래는 과학기술에의 의존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야.


이 동화 속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에 의존하는 '츄앤스왈로우' 마을사람들의 모습과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단다. 동화 속 마을사람들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낯설고 기이하게 생각했지만 음식을 따로 준비할 수고를 덜 수 있었으니 곧바로 낯선 현상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편리함에 익숙해졌겠지. 그러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에 의존하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지.


현대인들도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첨단 기술이 등장하자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놀라고 막연한 두려움까지 느끼지만, 곧바로 이 기술이 자신들의 삶과 업무에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져 왔고 점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단다. 앞으로도 새로운 과학기술은 더 짧은 주기로 계속 나타날 것이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와 삶의 모습 역시도 변화할 것이란다.


첨단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단다.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할아버지는 로아와 같은 어린이를 고려해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우려되는 부분을 이야기해보려고 해. 츄앤스왈로우 마을사람들이 음식을 함부로 낭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날씨패턴 변화와 기후변화로 음식재난이 발생한 것처럼,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과 기계에의 맹목적인 신뢰와 지나친 의존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 집중해 보자.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동화를 바탕으로 2009년에 만들어진 만화영화가 기존 스토리에 과학기술 요소를 담아내며 이러한 우려를 잘 보여주고 있구나. 


이 만화영화의 배경과 장소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동화 속 츄앤스왈로우 마을이 생기기 이전으로 원래 마을 이름인 '스왈로우 폴(꿀꺽 폭포)'이야. 이 마을은 정어리 어업이 주요 경제활동이었지만 세계적으로 정어리 수요가 줄어들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지. 마을주민이자 어려서부터 발명에 관심이 있던 주인공 플린트란 청년은 대기 속 수증기를 음식으로 변환시키는 기계를 마침내 만들어 냈고, 이 기계 발명은 마을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어.
이 기계장치는 마을 상공에 올려 보내지고 지상에서는 플린트가 개발한 통화 장치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기계는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어 마을로 내려 보내지. 이 신기한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마을은 곧 방문객들로 넘쳐나게 되고, 마을은 음식 관광지로서 돈을 벌게 되었어. 방문객들이 많아지면서 욕심이 생긴 마을 사람들은 더욱 다양하고 사이즈도 더 크고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하게 되지. 애초에 단순하고 간단한 음식만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이 기계장치는 이때부터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거대 사이즈 음식이나 돌연변이 음식을 내려 보내기 시작해.
기계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플린트는 기계 작동을 멈추려고 하지만, 욕심에 눈이 먼 마을 지도자의 실수로 주문을 넣는 통화 장치가 망가지게 되지. 이때부터 기계는 스스로 알아서 음식을 만들고 거대한 음식 태풍을 만들어 훨씬 넓은 지역으로 엄청난 음식을 쏟아내지. 더 심각한 문제는 기계가 거대 미트볼 소행성을 만들어 스스로 지배자가 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음식을 내려 보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어. 스스로 활동하는 거대 미트볼이나 햄버거, 스파게티와 같은 음식 피조물은 마을을 온통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건물과 도로를 파괴하고 마을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한단다.
플린트는 기계로 인한 더 이상의 파멸을 막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여러 시도 끝에 기계를 공중 폭파하는 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마을은 옛날의 모습을 되찾게 돼. 이것이 만화영화 줄거리야.


로아야, 이 만화영화 내용도 동화만큼이나 엉뚱하지? 현실에서는 수증기를 음식으로 변환시키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우리가 소비하는 육고기를 배양하여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장치는 곧 상용화 단계에 있긴 하지만. 그런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기계 오작동에 있듯이, 기계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단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2018년도와 2019년도에 각각 발생한 여객기 보잉 737기 추락이나 테슬라 자율주행차의 잦은 사고 모두 자동장치 오작동이 원인으로 밝혀졌단다. 이들 사건은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 해도 과학기술과 기계장치에의 맹목적인 믿음이나 지나친 의존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현명하게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지.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에의 의존이 어느 때보다 높은 현재와 그리고 그 의존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로아가 살아갈 미래에 과학기술에의 의존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스토리와 연관 지어 두 가지를 이야기해 보자구나. 하나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혼동이고, 다른 하나는 주도적인 미래 대비 소홀이야.


먼저, 현실과 가상세계의 혼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가 나타나지. 하늘에서 비나 눈 대신 음식이 내린다는 내용은 동화 속 마을 사람들이나 이 동화를 읽는 로아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에게 발생 가능한 현실과 상상 속에서나 발생할 가상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야.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가상현실과 같은 낯선 상황에 적응하고 음식이 내리는 날씨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날씨패턴이 변덕을 부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이 마을에 위협이 되면서, 현실적인 것과 가상현실 간의 차이는 명확해지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가상 세계를 자신들의 현실로 착각하며 지낸단다. 이 동화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점은 현실과 가상현실 간은 경계 구분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야.



사실, 최근에 우리의 일상에 적용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들은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있단다. 인공지능 기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 딥페이크 기술, 챗봇 등이 떠오르는구나. 각 기술의 내용은 복잡하지만 기술에는 문외한인 할아버지에게도 쉽게 떠올려지는 것으로 보아 이들 첨단 기술이 우리 사회와 삶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 이들 기술은 인간의 삶에 유익한 방향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다. 동시에, 이들 기술은 정보조작이나 통제, 사생활 노출이나 침해와 같은 문제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현실과 가상현실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단다. 그래서 사용자 입장에서 이들 기술은 맹목적인 의존보다는 현명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세계 3대 미래학자로 통하는 영국의 리처드 왓슨도 자신의 저서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원제: 디지털 대 인간)에서 기술발달이 인간에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으로 가장 먼저 현실과 가상세계 간에 경계가 사라진 현상을 들고 있단다. 그 구체적인 예로서 왓슨은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들고 있어. 온라인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 이야기야. 이들 부부에게는 예쁜 어린 딸아이가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가 굶은 상태로 방치되어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이들 부부는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아바타 딸아이를 키우느라 PC방에서 매일 12시간씩 게임에 몰두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낳은 실제 딸은 방치했기 때문이란다.


이 사례가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왓슨의 책에서 할아버지가 두렵게 느끼는 점은 이런 유사한 일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구나. 그 이유를 왓슨은 우리 뇌의 속성으로 보고 있어.


“무엇보다 우리의 구닥다리 뇌는 진짜 인간관계와 의사 사회관계인 가상 세계에서의 관계를 제대로 구별할 능력이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끔찍한 사건 중 게임과 현실을 혼동해서 발생한 것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왓슨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단다.


우리의 뇌가 ‘구닥다리’라는 점은 우리 뇌는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사고와 행동,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야. 이러한 뇌의 특성은 할아버지가 로아와 같은 어린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두 번째 요점인 과학기술에의 맹목적 의존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 대비 소홀과도 연관이 있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에서도 이 문제를 살펴볼 수 있지. 츄앤스왈로우 마을에 비나 눈 대신 음식이 내리기 시작할 때도, 음식날씨 패턴이 바뀌고 변덕을 부리기 시작할 때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도 없었고 더더구나 대비나 준비도 하지 못했단다.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의 편리성에 익숙해졌고 아무 생각 없이 의존만 했기 때문이었지. 온종일 한 가지 음식만 내린다던지, 상한 음식이나 평소보다 큰 음식이 내리는 등 이상 징조가 분명하게 나타났고 미래에 닥칠 더 큰 재난에 대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야.


우리 삶에서도 과학기술에의 맹목적 추종과 의존은 미래에 대한 자기 주도적인 생각이나 대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단다. 특히, 로아와 같은 어린아이들은 더더욱 어렵단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보자. 


먼저, 기술의 수동적인 소비야. 로아가 어른들의 휴대폰 화면을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다. 특히, 어린이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갖춰지지 않아서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면 몇 시간이고 생각 없이, 즉, 수동적으로 게임에 몰두하는 이유란다. 이럴 경우, 사회성을 기르고 심신과 인지발달에 필요한 야외에서의 친구들과의 어울림이나 활동과 경험은 제약을 받게 되지. 사실 야외에서의 활동과 경험, 탐색은 어린 시절 자신의 관심과 재능을 스스로 파악하고 기를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요인이란다.



두 가지 이유를 더 들어보자. 하나는, 기술이 주는 즉각적인 반응과 보상이야. 고용량의 스마트 폰을 통한 정보 찾기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이든 게임이든 고성능기술이 주는 즉각적인 반응과 만족감에 익숙할 경우, 인내심 부족과 주의지속 시간 단축, 자발적인 사고 결여로 이어지게 되지. 이럴 경우,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생각이나 준비는 기대하기 힘들단다. 또 하나는, 소통방식의 기술에의 의존 문제야. 이미 지금의 젊은 세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자질인 인간관계 형성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은 제한을 받게 될 수 있단다.


로아가 성장하며 살아갈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도 더더욱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고 예측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구나. 그럼에도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이 미래를 대비하여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인지과학에서 활발하게 제시하고 있는 ‘에피소딕 미래 사고’란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에피소딕’? 이 말이 조금 어렵지? 에피소드란 쉽게 설명하면, 구체적인 이야기나 사건을 다루는 짤막한 토막이야기야. ‘에피소딕 미래 사고’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상상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미리 체험하는 것인데, 미래에 일어나 일을 특정 상황이나 사건을 가정하고 생생하게 시각화해서 그 안에 로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로아를 비롯해 어린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나고 공상도 자주 하지? ‘에피소딕 미래 사고’는 공상과 다를까? 인지과학자들은 뇌 활성화 정도에서 그 차이를 설명하는구나.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막연히 미래를 공상할 때 뇌는 6 영역에서 활성화되지만, 에피소딕 미래 사고를 하게 되면 그보다 배가 많은 12개 영역에서 활성화된다고 보고하고 있어. 우리가 이미 당도한 것처럼 미래를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뇌는 그만큼 활성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 머릿속에서만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적극 노력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도 어렸을 때 에피소딕 미래 사고를 종종 했던 것 같구나. 로아나 다른 아이들도 이미 에피소딕 미래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네 살이나 다섯 살 무렵에 이미 에피소딕 미래 사고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온전히 갖춘다고 해. 다만, 성장하면서 상상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특히나, 과학기술에 수동적으로만 의존하게 되는 경우 주도적인 에피소딕 미래 사고는 더욱 어렵게 되겠지. 그렇다면, 에피소딕 미래 사고는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이 기술발달로 더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기 위해 꾸준히 실천하고 갖고 가야 할 능력이 되겠구나.


우리 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빈칸으로 남겨둔다고 하지. 그 빈칸은 기술이 채워주지도, 그저 채워지지도 않는단다. 이 점에서 분명 우리 뇌는 ‘구닥다리’ 뇌구나. 그럼에도 구닥다리 뇌이어서 고맙지? 왜냐면, 에피소딕 미래 사고처럼 각자가 스스로의 노력과 시간, 끈기로 채워가면서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로아의 에피소딕 미래 사고에는 이 할아버지도 등장할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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