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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Mar 30. 2024

<무릎서재> 열여덟 번째 이야기

<눈 오는 날> -- 야 놀자!

‘하삐, 책 읽어 주세요.’


3주 만에 만난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이번에도 로아는 맨 먼저 책을 집어 들고 다가온다.


‘로아야, 하삐 허그 먼저 해줘야지?’


책을 손에 든 채 로아는 할아버지 품에 쏙 안기고는 이내 할아버지 무릎에 철썩 앉는다.


로아가 커도 기억할까? 로아가 할아버지를 응대해 주던 이 모습을. 로아는 생후 3개월 되기 전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책 읽기 놀이가 시작되었으니 로아에겐 책을 들고 할아버지를 환영하는 건 자연스러웠겠지. 일종의 각인효과라고나 할까. 인공부화로 갓 태어난 새끼오리들이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여기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지.

  

새끼오리들의 각인효과는 태어난 직후 한정된 기간에만 나타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하지만, 두 돌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할아버지에 대한 로아의 각인은 지속되니 이 할아버지는 기쁘구나. 첫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로아가 혼자서도 책 보는 것을 습관적으로 즐기고 있으니 더더욱 반갑고. 어려서부터 책과 친하게 지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기술문명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야.


커가는 로아를 보면서 로아에게 책 읽는 각인효과는 앞으로도 지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단다. 대부분 아이들처럼 로아도 커가면서 책 말고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니까. 평생 책과 인연을 맺어온 할아버지이기에 책 읽는 습관은 로아에게 전해 줄 대물림으로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요즈음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자주 들여다본단다. 손주에게로의 어떤 대물림도 요행이나 공짜로 이뤄지기보다는 시간과 정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번 로아와 함께 책 읽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사실이 있구나. 책 속 세상 여행 못지않게 실재 세상 속에서 로아와 함께 많은 경험을 하기!


‘하삐... 눈’


오늘 함께 읽고 있던 책의 어느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로아가 그림 속 한 남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했던 말이야. 펼쳐진 페이지의 그림은 흑백이었고 장면도 언뜻 눈 덮인 모습처럼 보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로아의 말을 바로 이해 못 했단다. 그런데 로아가 가리키고 있는 사람을 보니 모자와 장갑, 긴 장화를 신고 눈 치우는 삽이 손에 들려있더구나.


‘아하, 지난번 로아와 함께 눈 치우던 이 하삐의 모습을 떠올렸구나.’


로아가 오기 전날부터 강릉에는 눈이 온종일 펑펑 내렸지. 로아가 도착하던 날과 그다음 날에도 그치지 않고 내렸어. 할아버지 집 마당은 로아 어깨만큼이나 눈이 쌓일 정도였지. 로아가 머물던 5일 동안, 로아는 말 그대로 눈 속에서 지낸 셈이야. 벽난로로 훈훈한 집안에서 보내기보단 로아는 밖에 나가 눈에서 놀기를 즐겨했고, 할아버지가 눈삽을 들고 눈 치우기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책 속의 장면에서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겠지.


로아가 눈 놀이에 빠져 있던 모습을 보면서 떠올렸던 동화가 있단다. <눈 오는 날>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야. 다음번에 할아버지와 함께 읽을 건데 눈 놀이 기억이 생생한 로아가 참 재미있어할 것 같구나. 줄거리는 간단하단다.


피터라는 꼬마 아이가 있었어.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밖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거야. 설레는 마음에 피터는 서둘러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갔어. 눈 위에 발자국 찍기,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하기를 하면서 신이 났단다. 눈에 드러누워 팔을 오르내리며 천사 모습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배를 썰매 삼아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하면서 온종일 눈 놀이에 정신이 팔렸단다. 장갑과 양말이 눈에 젖어 추위를 느끼자 피터는 집에 돌아가는데 그래도 아쉬웠던지 커다란 눈 뭉치를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집안으로 들어갔어. 물론 따뜻한 집안에서 눈 뭉치는 녹아버렸고 피터는 속상했지만, 다음 날 또 밖에서 놀 생각으로 마음은 부푼 채 잠자리에 들었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피터가 눈을 갖고 한 놀이나 반응이 로아가 한 놀이와 반응과 정말 비슷했다는 점이야. 피터가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모습을 보고 신나 했던 것처럼, 로아는 차에서 내려 할아버지 집 마당에 들어서면서 이미 로아 어깨만큼이나 쌓인 눈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눈 쌓인 모습을 보았으니 신기할 만도 하지. 피터처럼 로아도 눈에서 그리고 눈을 갖고 다양한 놀이를 했지. 할아버지와는 열심히 눈길을 내고, 언덕에 눈썰매장을 만들어 함께 썰매를 타고 내려왔지. 엄마 아빠하고는 눈사람도 만들고, 아빠가 몇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 얼음집인 이글루 속에 들어가 신기한 듯 ‘와~, 와~’를 연발했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하고 함께 동네 눈길을 걸으면서 눈을 수북이 이고 있는 나무들을 신기한 듯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피터나 로아가 눈에서 그리고 눈을 갖고 하루 종일 놀면서도, 그다음 날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즐거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몸짓과 행동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바로바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야. 수북이 쌓인 눈에 몸으로 자국 내기가 그렇지. 피터나 로아 모두 깨끗한 눈 캔버스에 발자국을 내면서 연신 신기한 듯 발자국을 뒤돌아본다든지, 엉덩이나 몸으로 다양한 눈도장을 찍으면서 즐거워했지. 막대로 나뭇가지를 두드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것이나, 눈이 뭉쳐지면서 커지는 모습이나 뭉친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가며 눈과 코, 입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박수를 치기도 했고.


이처럼 자연에는 어린이들에게 호기심과 탐험 정신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하단다. 그리고 피터나 로아의 눈 놀이와 탐험에서처럼 어린이들의 자연에서의 활동에는 무엇보다 오감이 큰 역할을 한단다. 어린이들의 오감을 통한 경험과 탐험은 장소나 시대와도 무관하지. <눈 오는 날>의 피터의 눈 놀이는 1962년 미국 뉴욕이 배경이고, 로아의 눈 놀이는 2024년 2월 대한민국 강릉이었지.


피터와 로아 모두 쌓인 눈을 밟으면서 눈에 새겨지는 발자국을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뽀드득뽀드득’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좋아했지. 장갑을 벗어던지고는 맨손으로 눈을 뭉치면서 빨개진 손을 아랑곳없이 눈이 전해주는 차가움을 즐기기도 하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 뭉치를 몸으로 맞으면서도 깔깔 웃어대기도 했지. 로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함박눈을 향해 고개를 들고 혀로 받아내면서 눈의 차가운 촉감을 재미있어했어.

피터나 로아가 몸을 통해 눈을 즐기고 경험하고 파악하는 모습은 어린이들이 순수한 기쁨 속에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란다. 그런데, 어린이들의 몸, 특히 오감을 통한 즐거움과 세상 알아가기 경험은 앞으로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이 살아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주도 시대에도 중요할까?


당연히 중요하고 의미 있단다. 어린이들이 자연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할 기회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감 능력은 더더욱 중요할 것이야. 기술발달과 더불어 인간 삶도 기계문명에 더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지만, 인간 삶에서 근본적으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은 여전히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 그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몸과 오감으로 직접 체험하고 탐색하고 경험하는 일의 즐거움과 배움이란다. 피터나 로아가 몸으로 눈 놀이하면서 느끼고 탐색하고 눈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된 것처럼 말이야.

기계문명 시대에 자연에서의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여전히 자연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나 상상력과 창의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 아빠가 만드신 얼음집 이글루 속에 들어가서 로아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신기해했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손에 닿으면 녹아 사라지는 솜같이 부드러운 눈이 단단한 집으로 변했다는 점을 로아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기술 문명의 발달도 상당 부분 자연에서 힌트를 얻고 자연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란다. 비행기나 드론은 새나 곤충의 나는 모습과 원리를, 배는 물고기의 헤엄치는 모습과 원리를 적용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지. 광합성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저장하는 식물의 잎 구조를 태양광 패널에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도 앞으로도 인류의 창의적인 기술은 여전히 자연의 원리에서 힌트를 얻을 것이란다.


기술 문명 시대에 오감은 여전히 중요한 데, 첨단기술 역시도 인간의 오감에 의존하기 때문이란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그 좋은 예가 되겠다. 로아야, 혹시 아빠가 거실에서 커다란 스키안경과 같은 것을 쓰고 양손에는 조이스틱을 들고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때로는 신이 나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말이야. 아빠의 그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도 안심해도 돼. 아빠가 존재하는 곳은 바로 가상현실 안이란다. 한 번은 아빠 권유로 할아버지도 해봤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그 뒤로는 해보려고 하지 않았어. 이 어지럽다는 것이 바로 시각과 청각과 같은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지.


물론 할아버지는 오감 자극에 민감해서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이용한 기술이 우리의 평소 오감을 이용한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단다. 가상환경은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속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용자의 오감 피드백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야. 로아가 어려서부터 자연에서 다양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오감을 발달시켜 두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해. 더구나 앞으로는 교육에도 이들 기술이 더 많이 적용될 것이니 말이야.


어려서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자연에서의 오감을 통한 활동이 어린이들의 인지와 감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란다. 거꾸로,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나 활동이 제한될 경우, 어린이들의 인지와 정서 발달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도 자주 지적되어 왔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자연결핍 장애’가 있어.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라는 리처드 루브의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원제목은 ‘자연결핍 장애로부터 우리 아이들 구하기’라는 부제가 붙은 <숲 속의 마지막 아이>야. 기계 문명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멀어진 채 살아가는데서 오는 문제점이 원제목에서 보다 심각하게 나타나는구나.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 ‘자연결핍 장애’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와 같은 전자 장치와 도구에 아이들이 몰입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들은 다양한 행동 장애와 발달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이 책이 나온 2005년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만이 아닌 스마트폰과 같은 보다 다양하고 중독성이 강한 기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커진 만큼, 이 자연결핍 장애 문제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구나.


자연결핍 장애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루브는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늘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 루브는 어린이들의 오감 활용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의 자연에서의 활동과 탐구에는 오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명확하단다. 자연결핍 장애는 자연에서의 오감자극 활동 결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선은 자연결핍 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오감 자극 부족을 겪고 있단다. 어린이들이 주로 실내에서 전자기기와 보내는 경우 자연스러운 오감이 아닌 인공적인 오감 입력 과다로 자연스러운 오감 발달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해. 인공 오감에의 과다한 노출이나 자연 오감 자극 부족은 아이들의 성장 발달 장애로 이어지게 된단다. 어려서의 인지발달이나 정서 및 신체 발달은 무엇보다도 오감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야.


반면, 자연에서 아이들이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풍부한 빛과 색상을 보고, 향기로운 꽃 냄새를 맡고, 산딸기의 맛을 음미하고, 시냇물의 시원한 촉감을 경험하게 된다면 오감은 자연스럽게 활발해지고 발달하게 되지. 자연에서 다양한 오감 자극에 노출될수록 아이들은 오감 처리 능력도 발달하고 집중 능력과 집중 시간도 늘게 되지. 자연에서의 아름다운 꽃을 보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면서 아이들의 정서가 발달하고, 자연에서 뛰어놀고 탐구하면서 신체도 발달되는 거야.

‘우리 몸이 기억한다.’

 

어려서 자연 안에서 오감을 통한 활동과 경험은 대개는 한 사람에게 평생 자연과의 연결을 결정지어 주기도 한단다. 어린 시절 몸을 통한 경험은 성장하면서도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에 남기 때문이야. 아주 오래된 경험은 대체로 머릿속에서 지워져도, 일부는 여전히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야. 할아버지도 종종 경험하는 일이고. 어려서 자연에서 오감을 통해 멋지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 자연을 찾을 때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해. 자연에서 호기심을 느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자연에서 오감 놀이를 즐기면서 로아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익혔으면 한단다. 자연은 지금도 많이 아프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서야. 자연과 친구 되기는 자연사랑, 자연존중의 출발점이 될 것이야.


<로아와 친구들>


올봄 할아버지 텃밭, 로아 이랑에 세워둘 팻말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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