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아 할아버지 May 17. 2024

<무릎서재> 스무 번째 이야기

한밤의 정원사  -- 성공지능

‘와, 와, 하삐, 꽃 이뻐요’

‘하삐 하삐, 개미 있어요.’

‘나비야, 어디 가니?’

‘고양이야, 같이 가.’


어린이집 등원 길, 로아는 신이 났다. 아파트 건물 현관을 나서자마자 연신 두리번거리다 길가 화단에 활짝 핀 연산홍을 보고는 다가가 꽃잎을 쓰다듬어준다. 몇 발자국 옮기고 나서는 땅 위로 기어가는 아주 작은 개미들을 발견하고는 쪼그리고 앉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고개를 들자마자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는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부지런히 쫓는다. 이제는 어린이집 방향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놀이터 쪽에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고양이를 부르며 신나서 쫓아간다.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걸어서 5분 거리이지만, 이날 아침 등원 길은 족히 15분은 걸렸다. 로아에게는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이날 아침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평소 로아 등원을 맡고 있는 아빠는 곧바로 출근해야 해서 로아는 아빠의 속도에 맞춰 등원한다.  할아버지와 동행한 이날 아침, 로아는 자신의 걸음걸이로 ‘딴청’을 있는 대로 부리고 누리면서 등원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여 교실 앞에서 선생님께 로아를 인계한다. ‘로아야, 할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로아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예쁘게 배꼽인사를 해준다. 손을 들어 쿨하게 빠이빠이까지 해준다. 그럼에도 로아 얼굴에는 일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이 나타난다. 3주 만에 본 할아버지와의 짧은 만남 뒤 헤어짐이 낯설어서일까?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어린이집 두 달째, 어른들의 염려와는 달리 로아는 한 달 만에 새로운 환경에 온전히 적응했기 때문이다. 로아의 생후 3개월부터 두 돌까지 육아를 분담해 왔던 이 할아버지로서는 로아의 새로운 환경에의 순조로운 적응이 대견하면서 보람도 느낀다.


로아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해 본다. 로아가 커가면서 할아버지와 물리적인 만남의 횟수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앞으로 할아버지의 로아 ‘돌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제 2,3주 간격으로 주말에 잠깐씩 보는 할아버지에게 다행히도 그리고 고맙게도 로아는 여전히 애착을 보인다. 커가면서 애착의 정도와 성격은 달라지겠지만, 로아와 할아버지를 지속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은 로아의 할아버지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신뢰를 보내는 로아에게 할아버지는 무엇을, 어떻게 ‘대물림’ 해줄 수 있을까? 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머리에 떠돈다. 하나는 최근의 안타까운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일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다.


최근에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다른 하나는 젊은 변호사가 자기 아내를 죽인 사건이다. 두 사건은 별개의 것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소위 사회에서 부러워할만한 ‘똑똑한’한 젊은이들이 상식에 맞지 않는 생각과 태도로 저지른 사건이다. 의대생은 수능만점자이고, 변호사는 집안이 저명한 법조집안이라는 점인데, 두 사람 모두 지적으로 뛰어났지만 사건의 성격과 사건 뒤의 태도로 보아 ‘똑똑함’에 걸맞은 인격과 지혜는 갖지 못한 듯 보인다. 이 사건은 한 인간이 갖춰야 할 인격이나 인품형성은 뒷전으로 밀어 두고 똑똑함만을 최우선시해서 대우해 온 우리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떠올린 책이 미국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의 <성공지능>이다. 책 제목에 책의 의도가 드러나 있듯,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높은 지능을 가졌다고 모두 성공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책의 논점이다. 이 책에서는 학습능력과 관련된 전통적인 지능 개념은 ‘비활성적 지능’이라면서 그동안 지능에서 제외되었던 창의성과 더불어 실천 능력을 지능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건당사자인 의대생과 젊은 변호사의 지능이 바로 실천지능을 결여한 ‘비활성적’ 지능에 해당된다. 학습능력에 필요한 기억과 분석 능력은 갖고 있지만, 현실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나 상황판단에 요구되는 실천적인 적용에는 지능이 활성화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스턴버그에 따르면, 비활성적 지능인의 특징은 자기중심적 태도와 불사신적 착각에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자기중심적 태도란 세상이 똑똑한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고려는 없는 태도를 말한다. 불사신적 착각이란 자신은 지능이 높아서 못하는 일이 없고, 자신의 행동이 불법적이고 법에 걸린다 해도 자신은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스턴버그가 제시하는 똑똑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이 두 가지 특성에 딱 들어맞는다.



로아야, 로아의 ‘인생 멘토’를 꿈꾸는 이 할아버지가 스턴버그의 ‘성공지능’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실천적 지능’이란다. 실천적 지능이란 사람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처하는 상황과 환경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적응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단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과 환경이 자주 변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이 실천적 지능이 필요하단다. 어린 로아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만 해도 변화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그 변화의 폭과 영향도 우리 삶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정도란다. 그런데, 로아가 성장하면서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에서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은 지금보다도 훨씬 빠르고 클 것이어서, 직장에서든 개인의 삶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새롭게 도출되는 문제와 환경에 적합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된단다. 여기에 요구되는 능력이 성공지능으로서의 실천적 지능이구나.


로아는 어떻게 하면 실천적 지능을 기를 수 있을까? 로아의 실천적 지능 성장에 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스턴버그는 이 지능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환경에서의 다양한 직접적인 경험과 더불어 높아진다고 지적하고 있구나. 새로운 환경에서 마주하는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나 상황, 현상을 접하고는 호기심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그러한 환경에 적응시키고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말하겠지. 어린이집 등원 길에 로아가 자신의 속도로 꽃과 개미 앞에 앉아 ‘딴청’을 부리던 관심과 태도 역시 일종의 실천적 지능 연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생활습관과 생각, 마음가짐,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린 시절 형성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



그렇다면, 멘토로서 할아버지의 역할은? 보호자이자 동반자로서의 동행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날 아침, 할아버지는 그저 로아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로아의 반응에 추임새를 넣어주고, 할아버지를 향한 로아의 뿌듯하고 반짝이는 시선을 표정과 마음으로 받아주었을 뿐이야. ‘성공지능’ 개념에서 ‘성공’이라는 것도 세속적인 출세라기보다는 로아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고 더불어 로아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할아버지는 받아들인단다. 여기서 할아버지가 떠올리는 스토리가 있어. <한밤의 정원사>라는 동화야.


이 동화는 로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이미 읽었던 책으로, 간략히 줄거리를 적어보자.      


새로울 것이라고는 없는 따분한 한 작은 마을에 윌리엄이라는 소년이 있었어. 어느 날 아침, 윌리엄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서둘러 밖으로 나가서, 어제까지 자신이 그늘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무의 무성한 잎이 멋진 올빼미 모양으로 바뀐 것을 보았지. 이때부터 매일 아침 마을의 나무들이 차례로 토끼와 앵무새, 코끼리, 용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었어. 마을 사람들이 잠든 사이 누군가가 조각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 새로운 조각이 새겨질 때마다 윌리엄은 감탄하며 하루 종일 조각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어.
어느 날, 하루 종일 나무 조각에 마음을 빼앗겨 저녁 늦어서야 집으로 향하던 윌리엄의 눈에 앞서 가던 한 낯선 할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왔어. 그분의 어깨에는 사다리와 커다란 가방이 들려있었지. ‘혹시 저분이?’라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윌리엄은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갔단다. 모퉁이를 돈 그 할아버지는 윌리엄이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아챈 듯 뒤를 돌아보고는 윌리엄에게 말을 걸었어. “얘야, 이 공원에는 나무가 아주 많단다. 조금 도움을 받았으면 싶구나.”
윌리엄은 밤새 할아버지가 나뭇잎을 조각하는 것을 도와드리다가 그만 나무 위에서 잠이 들어 버렸어.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보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대신, 자신이 누워있던 바로 옆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전지가위가 놓여있었어. “윌리엄에게”라고 적힌 이름표가 붙은 채로. 할아버지가 윌리엄에게 선물로 남겨두고 간 것이었지. 그  뒤로 윌리엄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나뭇잎 조각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했어.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들려준 동화는 대개 오래전에 출판된 고전 동화들이었지. 이 동화는 테리와 에릭 펜 형제에 의해 2016년도에 출판된 것으로 최근의 그림동화이지만, 이번에 로아에게 들려줄 주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어서 다루게 되었어. 대개 그림동화에서 말로 표현된 스토리 못지않게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이 동화는 더더욱 그런 것 같구나. 말은 꼭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그림으로 채워주는 식이지. 할아버지가 이 동화에서 로아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밤중의 정원사 할아버지와 윌리엄의 관계와 영향 역시 말보다는 그림이 잘 드러내주고 있단다.


윌리엄이 살고 있는 마을 거리 이름인 그림록(Grimlock)은 이 마을이 어둡고 칙칙한(grim) 분위기가 마치 자물쇠로 채워진(lock) 상태로 변화가 없는 곳을 의미한단다. 그림에도 그러한 분위기가 잘 전달되고 있어. 생기 없고 어둡고 칙칙한 모습의 마을 거리며 사람들 표정이 흑백톤으로 그려져 있지. 이와는 달리, 할아버지가 만든 나무 조각은 생생한 컬러로 그려져 있고 마을 가로수 잎에 새겨지는 조각이 늘어날수록 마을 거리와 사람들의 표정도 생기 있는 컬러 그림으로 바뀌게 되지. 나무 조각이 늘어남에 따라 마을 거리에도 발고 생기 있는 표정의 마을 사람들도 점차 늘어난단다.



정원사 할아버지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윌리엄이야. 그림에 나타난 창백한 얼굴의 윌리엄은 그림록 거리에 있는 보육원에서 부모가 없이 외롭게 지내는 아이이지. 그래서 누구보다도 윌리엄에게는 삶에 의욕과 희망을 주는 일과 멘토가 필요했단다. 윌리엄이 마을 가로수에 새겨지는 나뭇잎 조각에 정신을 빼앗기고 정원사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이유도 그 점에 있지 않을까 싶어. 이 동화 제일 앞 그림에는 윌리엄이 고아원 바로 옆 나무 그늘에서 혼자 외롭게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정원사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지. 이 그림에서 정원사 할아버지는 윌리엄이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야.


“얘야, 이 공원에는 나무가 아주 많단다. 조금 도움을 받았으면 싶구나.” 조각가 할아버지가 몰래 뒤따라오는 윌리엄을 돌아보고 건네는 말도 실제로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윌리엄의 삶에 멘토가 되어주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으로 보인단다. 정원사 할아버지는 윌리엄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시는 분이었어. 나뭇가지 위에서 잠든 윌리엄을 할아버지는 품에 안고 내려와 나무 둥치 아래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자신의 담요로 덮어주었지. 그림 속 이 모습에는 윌리엄을 애틋하게 대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단다.

   

한밤중의 정원사 할아버지는 윌리엄 이외에는 끝내 마을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조각이 마을사람들과 윌리엄에게 남긴 영향은 아주 컸단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떨어져 멋진 나뭇잎 조각은 모두 바람에 날려 사라졌지만, 마을은 여전히 활기를 띄었고, 윌리엄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나뭇잎을 조각하며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게 된 것이야.



스턴버그의 실천적 지능이 일상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거나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라고 했지. 이 동화 속 한밤중의 정원사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공지능으로서의 이 실천적 지능이지 않을까. 정원사는 주어진 마을의 물리적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고 차례로 나무 하나하나의 잎을 다듬고 멋진 형상으로 만들어 마을의 모습을 변화시켰지.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고.  실천적 지능이 실제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듯, 정원사는 자신의 재능으로 이 마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던 정체되고 고립되고 활력을 잃은 삶에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속되도록 바꾸어 놓았단다.


정원사 할아버지의 실천적 지능은 윌리엄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는 점도 중요하구나. 동화 속에서 정원사 할아버지와 윌리엄의 실질적인 만남은 하루저녁에 불과하지만, 함께 보낸 물리적 시간과 접촉은 크게 중요하지 않단다. 정원사 할아버지를 만나기 이전에 윌리엄은 이미 정원사 할아버지가 남긴 나뭇잎 조각을 보면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삶의 활력과 의욕,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 정원사 할아버지의 나뭇잎 조각을 도와드리면서 할아버지의 자신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배려, 마을 사람들을 위한 태도와 정신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고. 윌리엄이 정원사 할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조각하는 행복한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실천적 지능이 윌리엄에게 대물림된 모습이 나타난 보여 할아버지도 마음이 따뜻해진단다.


정원사 할아버지가 윌리엄에게 실천적 지능의 도구로서 물려준 전지가위, 로아에게 이 할아버지가 물려줄 전지가위는 무엇일까?

작가의 이전글 <무릎서재> 열아홉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