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아 할아버지 Apr 23. 2024

<무릎서재> 열아홉 번째 이야기

<씩씩한 마들린느> -- E pluribus unum

로아의 감기가 3주째 낫지 않고 있구나. 이번 감기는 유난히 오래가는 것 같아. 며칠 전에는 밤에 로아가 잠에서 깨어나 심하게 울었다지. 평상시에는 없던 일이라 엄마 아빠가 많이 놀랐고 걱정이 되었겠지. 엄마가 퇴근 후 로아를 병원에 데려가 진찰받았는데, 감기로 인해 중이염이 급성으로 발전하여 가장 심한 단계까지 갔다고 해. 로아가 한밤중에 깨어나서 마구 울어댔던 이유가 중이염 때문이었고.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많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단다. 특히, 로아가 입원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의 일 년 전이구나. 로아가 심한 열로 10여 일 동안 입원했던 것이. 아빠는 뉴욕 출장 중이어서 엄마와 할아버지가 교대로 로아 곁을 지켜주었는데, 그때도 열로 인해 한밤중에도 깨어나 울곤 했단다. 해열제 주사를 맞고 지쳐 잠든 로아 모습에 한참을 젖은 눈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지.


지난 주말에는 로아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로아 모습에 마음이 많이 놓였단다. 아빠가 세미나에 초대받으면서 제공받은 가족 숙소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로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 로아는 여전히 콧물이 흐르고 목이 잠기고 간간히 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평소의 활달함과 호기심만은 여전했단다.


처음 와보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에서는 신이 나서 마구 뛰어다니면서 연신 할아버지의 걸음을 재촉했지.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와 할머니의 부름은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야.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탑이 보이면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며 어느 틈에 마음에 드는 돌을 하나씩 빼냈다가 다시 쌓아놓기도 하고, 돌 몇 개를 골라 로아만의 돌탑을 쌓기도 했지. ‘저게 뭐지?’하며 숲 속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귀여운 다람쥐 모습을 발견하고는 쫓아가다 넘어지기도 하면서 오히려 재미있어했던 로아였지. 노랗게 핀 현호색 꽃, 언덕에서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 쓰러진 나무밑동으로 뚫린 터널, 숲길 옆으로 흐르는 커다란 시냇물에 난 작은 폭포 등등, 전나무 숲길 길섶의 모든 것이 로아의 눈과 귀와 손을 잡아 이끌었고, 로아는 연신 발걸음을 재촉하다 멈추기를 반복했지.



월정사 경내에서도 로아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어. 경내에 걸려있는 많은 연등에 눈길을 주며 탑 주변으로 낮게 걸려있는 아기 연등을 만져보려고 연신 탑돌이를 했지. 마침, 탑의 낮은 펜스 안쪽으로 바람에 날려 떨어진 아기 연등을 발견하고는, 로아는 어느새 펜스 안쪽으로 들어가 그 연등을 손에 집어 들었지. 그리곤 의기양양하게 어른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지 않았겠니. 얼마 안 있어 저녁 범종 타종식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종성의 소리 울림이 로아처럼 작은 아이들에게는 압도적일 수 있음에도 눈 깜박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었지.



저녁식사 자리에서 로아는 ‘낯섦’을 체험하기도 했단다. 세미나를 주관한 스님 옆에 할아버지가 앉았고 로아는 할아버지 품에서 그 스님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었지. 낯을 가리는 나이인 로아에게 머리를 면도한 스님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었던지, 처음에는 할아버지 품에서 그 스님을 곁눈으로만 살피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로아도 그 스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아님, 무시하고?) 옆 의자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단다. 스님 일행이 먼저 자리를 뜨게 되자, 로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이바이’ 손 인사를 했지.


로아야, 로아가 통증으로 한밤중에 깨어나 울었던 것이나, 감기로 인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명랑함을 잃지 않고 로아만의 발걸음과 끌림으로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한 일, 까까중 스님 모습의 낯섦에 곧 적응하는 로아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떠올린 어린 소녀가 있단다. <씩씩한 마들린느>란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들린느가 그 소녀야.  할아버지가 로아 모습에서 왜 마들린느를 떠올렸는지는 스토리 내용으로 보면 알게 될 거야.


파리에 있는 한 기숙사에 열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살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두 줄로 질서를 지키며 생활했습니다. 잠잘 때도 두 줄로 놓인 침대에서 나란히 자고, 식사를 할 때도 양치질할 때도 두 줄로 나란히 했고, 아침 산책길에도 두 줄로 나란히 걸었습니다. 마들린느는 그중 가장 작은 아이였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호기심이 많았고 용기가 많았습니다. 식당에서 쥐를 보고는 호기심에 엎드려 다가갔고, 동물원에서 으르렁 거리는 호랑이 우리에 바짝 다가가서는 호랑이를 향해 으르렁 소리로 대꾸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움츠리지 않고 신나게 얼음 위를 달렸습니다.
어느 날 밤, 클라벨 선생님이 아이 울음소리에 깨어 아이들 침실로 가보니 마들린느가 울고 있었습니다. 곧 도착한 의사 선생님은 맹장염 진단을 내리고 급히 구급차를 불러 마들린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고, 마들린느는 병실에서도 여전히 씩씩하게 지냅니다. 선생님의 인솔로 마들린느의 병문안을 가게 된 아이들은 병실에 있는 장난감과 인형의 집, 사탕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마들린느가 제일 자랑스럽게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배에 난 수술자국이었습니다.
기숙사에 돌아온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규칙적으로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밤중에 선생님은 아이들 우는 소리에 급히 기숙사 방으로 달려갑니다. ‘우리도 맹장 수술 해 주세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울고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자 더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마들린느는 기숙사의 규칙과 규율에 따른 단체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용감하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그래서 선생님을 가장 많이 놀라게 하는 아이지. 다른 아이들은 징그럽다거나 무섭다고 피하는 쥐나 호랑이 앞에서도 호기심과 용기를 잃지 않지.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수술도 당당하게 받고 침대 위에 올라서서 친구들에게 수술자국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아이였어.


할아버지가 로아의 모습과 동화 속 마들린느의 모습을 쉽게 연결 지었던 것은 로아의 어린이집 생활하고도 연관이 있을 것 같구나. 로아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지 아직 한 달 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린이집에서도 로아의 성향과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더구나. 난생처음으로 선생님의 지도와 보살핌을 받으며 다른 아이들과 어린이집의 규율과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면서도 평소의 호기심 많고 독립적인 로아의 모습 말이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활동에 참여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따로 떨어져 나와서는 로아만의 관심거리에 집중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더구나. 야외 활동에서 로아가 좋아하거나 신기한 것을 발견하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머물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선생님께 자랑스럽게 알리는 모습도 보이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담임 선생님께서 매일 자세히 적어 올려주시는 알림장과 사진을 통해서 할아버지도 어린이집에서의 로아의 모습을 접하고 있는 것이야.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전,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년 넘게 다녔던 로아의 문화센터 수업에 할아버지가 자주 동행했기 때문에 알림장 내용과 사진만으로도 어린이집에서의 로아의 모습이 눈앞에 쉽게 그려지더구나. 알림장과 사진을 보면서 할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경우는 대개 로아 모습과 마들린느의 모습이 겹쳐질 때이지.

      

동화 <마들린느>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 동화가 쓰인 1930년대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고 있단다. 작가인 루드비히 베멀머즈는 오스트리아에서 자라면서 답답하고 지루한 호텔에서 지냈고 나중에는 기숙학교에 보내졌지만, 적응하기 어려워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단다. 동화의 배경인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잠잘 때도, 식사할 때도, 이동할 때도, 야외활동에서도 두 줄로 나란히 대열을 맞춰 선생님의 지시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모습은 작가의 어려서의 경험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이 동화가 나온 1939년 유럽은 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던 혼란의 시대로서 작가는 이 동화를 통해 인간 사회의 질서 역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단다. 동화의 배경인 마들린느가 다니는 기숙사가 있는 프랑스 파리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곳으로 질서를 상징하는 도시였지. 동화 속 그림에서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 개선문, 방돔 광장, 센 강변을 반복해서 등장시켜 이들 인류 문명의 상징적인 유물들이 전쟁으로 파괴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야. 흔히, 기숙사를 소재로 삼는 동화나 소설에서 기숙사와 사감선생님을 개인의 자유와 정신을 억압하는 교도소와 교도관과 같은 포악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 자유의 영혼을 지닌 마들린느 조차도 기숙사에서 명랑하게 생활하고 선생님도 아이들을 잘 대해주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 이유로 보인단다.


이 동화에서 중요시하는 질서는 그림과 운율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어. 로아도 이 동화책을 펼치면서 바로 확인하겠지만, 이 동화 그림에서 열두 명의 아이들은 언제나 두 줄로 질서 정연하게 잠을 자고 식사하고 걷는 반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로아에게 운율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비슷한 음이 일정한 위치에서 반복되는 것을 말해. 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인해 글이 노래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씩씩한 마들린느>의 원어인 영어 글에는 운율(영어로는 라임)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멋지게 이어지면서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 파리의 질서 정연한 모습을 글자와 발음으로 담아내고 있어. 로아가 영어를 배우고 나서 이 동화를 원서로 읽는다면 노래 가사를 읊조리는 느낌을 받게 될 거야. 우리말 번역에서는 이 동화의 운율을 살리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구나.


로아가 식당에서 바로 옆에 앉아계신 스님 외모의 낯섦에 어색해했는데, 이 동화 속 규칙에 따라 집단생활을 하는 12명의 아이들은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모습도 드러난단다. 특히, 얼굴 형태나 안색으로 보아 외국에서 온 어린이도 섞여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 이 동화의 배경인 1930년대 파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전 세계로부터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몰려들었고, 당시 유럽 여러 나라에 새롭게 들어선 독재 정권의 억압과 박해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선택해서 머문 국제도시였단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파리에 있던 기숙학교 학생들도 다국적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지.


이 점에서 이 동화는 로아가 살아가고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글로벌 시대를 미리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 마들린느는 이 글로벌 시대, 더 나아가 기술발달 시대에 갖춰야 할 마음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고. 로아가 살아갈 글로벌 시대와 기술발달 시대에 필요한 마음과 태도는 무엇일까?


E pluribus unum!


라틴어로 ‘다수로부터의 하나’란 뜻이야. 언뜻 보면 개개인보다는 공동체의 협동과 단합에 무게가 실린 듯 보이지. 실제로도 대체로 그렇게 해석해 왔어. 그런데, 달리 해석해 보면 개체에 초점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단다. ‘하나’가 ‘다수’에 종속되거나 함몰되어 흔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수로부터’ ‘하나’로서의 개체성을 간직하는 것은 아닐까. 마들린느가 기숙학교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듯이. 여전히 미숙하지만 로아가 어린이집에서 로아만의 관심과 행동을 보이듯이. 그래서 할아버지는 이 말의 뜻을 공동체적 질서와 개개인의 독자적인 정체성 사이의 균형으로 받아들이고 있단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로아가 살아갈 시대에 갖춰야 할 요건으로 공동체적 정서나 질서보다는 개인의 자립적이며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해왔단다. 한국은 개인보다는 공동체와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며 획일성을 강조하는 문화를 갖고 있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많이 의존하는 기술문명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


이 글에서는 공동체에서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 그리고 성격만이 아니라 외모가 낯선 사람들과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잘 지내는 것은 글로벌 시대와 기술발달 시대에도 중요하다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실리콘 밸리 정신’이 좋은 예이지.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을 비롯한 현대인들의 삶에 혁신을 가져온 그리고 지금도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정보 검색과 외부 소식, 타인과의 소통에 크게 의존하는 닷컴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이들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의성과 혁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마인드와 태도로 흔히 ‘실리콘 밸리 정신’으로 불린단다. 이들 회사를 창업하고 키운 구글의 브린과 페이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지금은 메타로 이름을 바꾼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모두 개인적으로 천재적인 능력과 도전정신, 창의성을 갖춘 사람들이고 이들 회사 직원들 역시 대개는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인 점은 분명해. 그래서 실리콘 밸리 정신하면 개인적인 역량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


그런데 실리콘 밸리 정신의 이해에서 흔히 간과하는 점이 있단다. 협력 정신이야. 이들 회사를 비롯한 현대의 첨단 산업과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협력과 협업을 중시한단다. 경쟁 속에서 회사의 성공여부는 단순히 혁신적인 기술개발만이 아니라 소비자 경향과 만족, 마케팅,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에 달려있으며, 이용자나 소비자들 역시 전 세계에 걸쳐있기 때문에 단순히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고 다양한 영역에 걸친 사람들의 협력과 협업이 필요한 이유이지.


실리콘 밸리에서의 협력과 협업에는 글로벌 마인드 역시 필요하단다. 실리콘 밸리가 미국에 있고 여기에 입주해 있는 회사들 역시 명목상 미국 회사들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는 글로벌 빌리지이자 다국적 기업으로, 이곳에서의 협력과 협업에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 문화를 아우르는 글로벌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단다. 이러한 경향이 실리콘 밸리만의 특징이 아니라 로아가 살고 있는 한국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단다. 앞으로 로아가 성장하여 살아갈 시대에도 마찬가지이고.

작가의 이전글 <무릎서재> 열여덟 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