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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Oct 15. 2019

잠을 자는 방법

그것을 도와주는 책이 있다?

오늘 아침 알람이 울리기 조금 전 일어났다. 알람이 울렸을 때 알람을 끄러 나오는 움직임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알람을 끄고 커피포트의 물을 올려 물을 끓였다. 이후 차를 마실 때의 기분은 "상쾌함"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한 아침의 묘사일 수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혼자 지구의 중력보다 훨씬 큰 새로운 행성에서 잠을 깨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알람을 끄러 오는 그 길이 마치 부처님의 고행길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내게 오늘의 아침은 "운수 좋은 날"의 시작이 되어버릴 까 심지어 겁이 날 정도의 기쁨이다.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불면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특히 불면증이 더 심해져, 2일에 한번 정도는 잠을 아예 자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내게 상쾌한 아침이란 사치였고, 조금이나마 잠을 잤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내게 아침이란 항상 나와의 작은 전쟁이었다. 절대 움직이기 싫다는, 잠도 못 잔 몸을 이끌고 억지로 수업을 듣고 있을 때면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라는 몸이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내게 상쾌한 아침이라니, 언제 마지막으로 상쾌한 아침을 느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우연히 운이 좋아 어제 잠을 잘 잔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적은 우연이라도 매번 만들어 내고 싶은 내게 분명 이 상쾌한 오늘 아침은 분석해야 할 무언가 이다.


1. Jog on - How running saved my life.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이 책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워낙 필력이 좋아 벌써 꽤 많이 읽었다. 매우 깊은 이야기이고 많은 연구 자료가 있음에도 중간중간 작가의 시니컬한 유머에 피식피식 하면서 책을 읽다 보니 어렵지 않게 책의 진도가 쭉쭉 나가는 것 같다.

이 책은 오랫동안 정신 질환으로 힘들어하던 작가 Bella Mackie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이다. 왜 이 책이 내게 그렇게 많은 위로를 주었을까?


사실 작가는 특별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꺼내 놓을 뿐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말이다. 

2015년 78%의 학생이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고, 그중 33%는 자살 충동을 가졌다.
Seventy-eight per cent of students reported a mental health issue in 2015, and 33 percent of those had suicidal thoughts - Jog on, 20p


2. 공감


나는 어려부터 정신적으로 항상 건강하다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다. 그것이 과연 정말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었는지 혹은 그렇게 믿고 싶은 강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무한한 긍정은 잘 발휘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혹은, 건강했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도 잠을 못 잔다는 그 사실보다 잠을 못 자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더욱 힘들게 했다.


내 나름대로 인터넷에 "잠자는 방법"을 검색하고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다.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주변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생각보다 너무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못 자면 졸릴 때까지 좋아하는 영화 같은 걸 보면 안 되나?

하루 이틀이죠. 거의 매일 잠을 못 자면 너무 피곤해서 영화를 볼 여력도 안 납니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운동을 해봐! 운동하고 딱 몸이 피곤하면 잠이 올 거야~

아마 제가 그쪽보다는 운동 많이 할 것 같아요. 매일 1시간 이상 농구를 하던 수영을 하던 꽤 강도 높은 운동을 합니다. 정신적 영역은 어떨 때는 육체의 피곤함을 극복합니다.

걱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 젊은 친구가 말이야.

네. 그 걱정 좀 없애 주셔서 잠만 잘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걱정이 없을 텐데 말이죠.


기타 등등. 정말 힘들게 털어놓은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별일 아닌 것처럼 반응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작가와 새벽에 술 한잔 기울이며 센티한 감정으로 서로의 힘든 일들을 털어놓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눈에 보이는 문제가 없어도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다. 


위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를 듣고 나니 조금 잠을 자러 갈 때의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3. 수영 


또한 다른 이유가 있다면 수영을 했다는 점이 있겠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수영은 꽤 오랜만에 하는 것이었다. 


근력운동이나 구기운동보다는 확실히 유산소 운동이 정신적인 질환이나 불면증에는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달리기와 수영은 운동을 하는 순간에는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4. 전문가


특히 한국의 경우 정신과 질환으로 전문가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훈련 받은 전문가이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생활을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정신질환에는 비슷한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혼자 해결이 힘들면 전문가를 찾고, 적절한 약물 치료를 함께하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작년에 그랬고, 이번에도 전문가를 찾을 생각이다.


5. 결론

전보다 기분이 나아졌냐고? 아니. 즐겼냐고? 아니. 하지만 15분 넘게 울진 않았고, 그걸로 충분했다. 


작가의 첫 달리기를 마친 이후에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모든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었나? 아니.

앞으로 잠을 자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나? 아니.


다만 오늘 아침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다. 


분명 앞으로도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오늘 역시 잠에 잘 들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수영을 하고, 전문가를 만나서 도움이 되었다. 나의 오랜 문제를 해결하는데 좋은 첫 단추가 되었으면 좋겠다. 


p.s 특히 주변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사실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주변에 정신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 나의 반응도 비슷하게 시큰둥했다.


특별히 눈에 보이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다 보니,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해. 글을 써봐. 등의 의미 없는, 혹은 구글에 검색하면 관련 자료가  373, 000, 000 개쯤 나오는 뻔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왜? 모르기 때문이다. 다리가 부러졌거나 맹장이 터졌거나 눈을 다쳤을 때는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불편하겠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공감이 조금이나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을 한다.


그러나 정신적 문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을 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공감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쉽게 생각하거나 뻔한 조언을 건네고 관심을 그만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어떻게 느껴지는지 공감을 해본다면 그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한 마디를 들어도 진심을 담아 경청할 수 있을 것이고, 한마디를 해도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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