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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20. 2020

핀란드에서 배운 3가지

마지막을 정리하며

오울루를 2일 이후에 떠난다. 1년 하고도 2개월, 참 긴 시간이다.


1년 동안 타던 자전거를 팔고, 은행 계좌를 정지한다. 1년간 생활하던 짐을 정리한다. 겨울옷부터 여름옷까지 정말 많다. 공부하면서 읽었던 아티클을 버리고, 출력하여 읽었던 책도 버린다. 최대한 짐을 줄이려 하지만 여전히 많다.

지난 학기 친구가 만들어 줬던 핀란드 국기에 받은 롤링페이퍼. 벌써 8개월 전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참 어렵다. 요즘 글쓰기가 참 좋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내 감정을 한글이라는 어떤 언어를 통해 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군대 가기 전 대학교에서 연극을 참 열심히 했다. 연극이 너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상상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우는 배우대로, 스텝은 스텝대로, 연출을 연출대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의 조각가가 된 기분이다. 아무 모양 없는 돌처럼 두리뭉실한 감정과 생각을 다듬고 깎아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다듬지 않았다면 그냥 돌에 지나지 않았을 생각과 감정이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여행을 마칠 때쯤에는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쉬운 마음이 들 때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어야 다시 돌아온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그 아쉬운 마음에 2번씩 방문한 도시들도 제법 있다. 14개월이라는 여행을 마치는 지금은 유독 여러 가지 감정이 많이 든다. 이 곳을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잘 모르겠다. 아마 다시 오게 되겠지.


이제 한국으로 떠나는 여행을 채비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길면 1년 반 정도 생활하다 다시 해외로 나갈 계획이다. 한국이라는 여행지에서도 행복하게 잘 적응해서 생활할 것이다. 앞으로 이처럼 계속 여기저기 여행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핀란드 여행을 통해 배운 점을 한번 돌아보자. 한번 돌아보는 점검은 앞으로 있을 여행을 더 잘 꾸려나갈 수 있게 할 것이다.


1. 채식


가장 큰 변화는 채식으로 대표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다. 한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주변에도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핀란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코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우리 세대가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절한 양만을 사용하여 우리 뒷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참 숭고하고 멋진 가치다.


그 방법으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내겐 채식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몸도 가벼워지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고생하는 일도 없어졌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채식을 할지 아직 모르겠다. 한국의 상황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지속가능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2. 사람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핀란드는 한국 못지않은 단일 민족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대학의 환경은 굉장히 국제적이다. 오울루 대학의 석박사 과정의 50%가 해외에서 온 학생들이다. 내 친구들은 다양한 인종, 성별, 성장배경을 가졌다.


각 문화권 별로 다양한 사회적 기준이 있다. 이곳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옳은 것도 저쪽에서는 옳지 않다.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고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맥락이 있을 뿐이다.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거나 쾌활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두 가지 모두 옳다. 틀린 것 없다. 다를 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여드름은 꽤 스트레스였다. 한국인 중 외모에 완전히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어느 정도 그러한 시선에 종속돼있었다. 그렇기에 여드름이 없어지기를 바랐고, 여러 가지 시도도 해봤다. 생각보다 잘 없어지지 않았다.


핀란드에 오니 역설적으로 외모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을 보면 흑인, 백인, 동아시아인, 동남아시아인, 아랍계, 인도계 등이 있다. 다들 정말 다르게 생겼다. 다양한 그룹의 친구들을 보면 하나의 미적 잣대로 누가 더 잘 생기고 못생기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느껴진다.

다들 자신의 얼굴 그 자체로 매력 있다. 수직선에서 점수를 매겨 줄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나의 여드름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 한다. 여드름 있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 있는 나라는 것을 말이다.


다양한 문화가 존중받는 핀란드여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3. 남이나 사회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


한국에서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문은 언제나 가지게 되는 의문 중 하나다. 나아가 함께 졸업한 고등학교 동기나, 대학교 동기들이 취업을 하거나 멋진 일을 하면 축하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들곤 했다. 그들과 나를 다시 수직선에 놓고 비교하기 마련이었다.


핀란드에서는 개인 공간이 중요하다. 이는 물리적인 공간보다 오히려 정서적 공간을 말한다. 함부로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특별히 내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닌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안녕과 행복이다. 다들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고, 이 일이 맞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쉽게 새로운 진로를 찾는다. 수많은 복지혜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컴퓨터공학 수업에서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사회와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진정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꼭 그 길을 가야 할 필요 없다. 어차피 그 길이라고 해서 쉬운 길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 더 쉬운 길이라는 장담 역시 없다. 그러나 기왕이면 내가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걷는 길이 더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는가.


이 여정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다음 여정에서는 더 발전된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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