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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준비 운동

by 건우

9년의 교직 생활 중에서 체육 전담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학기 초에 다들 어떻게 수업하시는지 많이 알아봤다. 체육 수업 노하우를 많이 배웠는데, 공통으로 하시는 말씀이 준비 운동을 빼먹지 말라는 거였다. 괜찮다면 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라고도 하셨다. 어떤 반에는 반장처럼 체육부장 역할을 맡은 학생이 있다. 체육부장은 선생님을 도와 수업 기구를 준비하기도 하고, 학생들 앞에서 준비 운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준비 운동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생에게는 작더라도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게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상의 문제(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고려한다면 교사가 지도하길 권장하셨다. 그래서 나는 직접 준비 운동을 진행한다.


흔히 오와 열을 맞추어 4열 횡대로 서서 준비 운동을 한다. 하지만 나는 동그란 대형으로 선호한다. 친구 뒤에 숨지 못하는 동그라미 대형은 무엇보다 서로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목을 돌리고 있을 때, 아직 어깨를 돌리는 친구가 있다면 ‘쟤는 목이 3개’라며 건네는 장난을 다른 학생들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도 좋다. 그렇게 웃음을 공유한다. 물론 사담은 많아졌지만.


준비 운동의 핵심은 다치지 않는 거다. 심장에서 먼 발목에서부터 무릎, 허리, 어깨 그리고 목까지. 오늘 할 체육 활동에서 가장 많이 쓰는 부위는 한 번 더 풀어준다. 마지막에는 팔벌려 높이뛰기도 한다. 그렇게 근육의 온도를 높인다. 준비 운동은 다치지 않는 몸으로 세팅하는 시간이다. 승패가 나뉘는 활동을 해야 할 때면 마음의 준비 운동도 시킨다. 경기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고. 달리기가 빠른 친구도 있고, 느린 친구도 있다고. 하도 많이 들었던 말인지 아이들은 고개만 끄덕인다. 하지만 정작 결과가 나오면 수긍하지 못할 때도 많다. 인정 못 하는 자신과 그 상황을 지켜보는 상대편 모두 기분이 상하는 때가 있다. 핵심을 놓치고 마는 때.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X발”이라며 체육관에 욕을 뿌린다. 차고 있던 팔찌(체육용품)를 바닥에 있는 힘껏 던진다. 경기에 지고 나서 “재미없다”며 다소 치사한 후기를 남긴다. 그럴 때면 학생을 불러 혼을 낸다. ‘욕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친구들이 욕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네 모습은 네가 만드는 거야.’, ‘물건을 던지는 건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더군다나 너의 물건도 아니지 않냐.’, ‘경기에서는 심판의 판정을 인정해야 한다. 너는 원래 잘하지 않냐. 너보다 잘하지 못한 친구가 이겼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삶을 위한 준비 운동. 내가 먼저 경험한 사회는 체육관보다 컸고 체육관보다 추웠다. 너희가 살아갈 사회는 더 커지겠지.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 다 하고 싶어도 어느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만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걸 혼내서 알려 준다. 그래야 중요할 때 다치지 않으니까.


작년까지 투룸에 살면서 이것만은 제대로 알았다. 집과 집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있어야 햇빛을 누릴 수 있고, 창문이 앞뒤로 달려있어야 삼겹살 냄새를 뺄 수 있다는 것. 올해 이사를 위한 준비 운동이었다. 어쩌면 지금 나의 교사라는 직업도 준비 운동의 일환일지 모르겠다. 수업에서는 보통 40분 중 5분 정도 준비 운동을 한다. 내 기대 수명을 80년이라 치고 10년이라면 비율이 꽤 적당하다. 언제인지 모를 하지만 분명히 맞닥뜨릴 교사로서의 역경이 준비 운동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시작에도 다치지 않을 테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그만둘 교사이지만 그 기간 진정성을 빼먹지 않기로 다짐한다. 겉만 멀쩡한 건 어떻게든 나를 다치게 할 테니까.


그러니 너희들도 제대로 해라.

“둘둘셋넷- 목소리만 크노! 목 말고 몸을 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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