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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기만 하면 지진 않겠지만

by 건우

“오늘 피구해요?”

“피구 안 한다니까- 6학년 교육과정에는 피구가 없어요,,!”

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아주 잘 알겠다. 하지만 나는 피구 수업을 할 계획이 없다. 아직까지는-


지금까지 6학년 아이들과 딱 1번 피구를 했다. 3월 초, 아이들의 종합적인 운동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피구는 교육과정에 나오는 운동 체력의 4가지 요소(순발력, 민첩성, 평형성, 협응성)를 두루 사용하도록 한다. 그래서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구분하기가 쉽다. 사실, 구분이 되는 셈이다. 나도 살기 위해선 무조건 피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공을 세게 던지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분명 상대방을 향해 던졌지만 닿지 못해 바닥에 먼저 뒹굴게 던지는 아이도 있다. 날아오는 공에 순간적으로 상체를 바닥에 붙여 피하는 아이도 있고, 고개만 돌리며 공에 맞는 걸 재빨리 수긍하는 아이도 있다.


피구 스포츠클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클럽에는 피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들이 모였다. ‘양각(양쪽에서 마주 서서 공을 던지는 전술)’, ‘삼각(3면에서 공을 던지는 전술)’과 같은 전문 용어도 들린다. 여기서도 잘하는 아이는 눈에 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오!’ 하며 감탄이 나오는 아이가 있다. 공을 잡는 아이. 여러 전술이 있다고 해도 결국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날아오는 공을 잡아야 한다. 공격권을 뺏어 상대를 아웃시켜야 한다. 명색이 피구이지만 피하기만 하면 안 된다. 지진 않겠지만 결코 이길 수 없다.


해야 할 일 미루기.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을 일이거나 평소보다 처리 과정이 조금 더 귀찮을 때 나는 일을 미루곤 한다. 별표 개수에는 잠깐 눈을 가리면서 말이다. 최근에 다른 학교 스포츠 캠프에 참여하라는 안내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교무행정원님에게 학교 홈페이지의 가정통신문으로 올려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2개이기도 하고 공문 내용을 요약해서 첨부파일과 함께 보내는 메시지가 어찌나 귀찮던지. 15분도 안 걸릴 일을 하루 미뤄서 24시간 15분 만에 처리했다. 처리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데에 24시간이 걸린 셈이다.


나에게 벅차 보이는 일을 마주하면 여지없이 카카오톡에 커서가 간다. 업무 관련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일진 인스타그램에게 딱 걸려서 가지고 있던 10분을 뺏긴다. 솔직 고백을 하자면 글을 쓰는 지금도 카카오톡을 열었다가 닫았다. 물론 톡이 온 건 아니다. 사안이 급박해져야 일할 마음이 생긴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데 나에게 회피하는 습관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있는 연구실 맞은편에는 체육교육부 계원인 3년 차 선생님이 계신다. 같은 부서에 있다 보니 일과 관련해서 많이 마주치는데, 그 선생님은 정말 일을 잘하신다. 만날 때마다 느낀다. 일 처리가 진짜 빠르다. 어제 상의한 내용은 오늘 해결이 되어 있다. 요청한 업무도 미뤄지는 법이 없다. 교실도 깨끗하다. 아마 이야기를 나눈 당일 바로 처리하시는 게 아닐까. 물론 처리한 일에 작은 구멍이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구멍이 있더라도 결과를 가져오지 않나. 나처럼 빈손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하는,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만 하는 삶의 태도를 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신가 보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은 두렵다. 하지만 나를 향하고 있기에 잡을 수가 있다. 분명 어떤 날에는 공을 받으려다 놓칠 거다. 옆 사람이 놓친 공에 내가 맞아 아웃당하기도 할 거다. 어쩔 수 없는 건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다. 어떤 날은 내가 놓친 공을 동료가 받아주기도 하니 그리 억울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공을 마주하고 서서 온몸으로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번 두번 쌓인 경험은 어느새 실력이 되어 내가 어떤 공도 피하지 않고 거뜬히 대처하게 한다. 해야 할 일을 마주하게 한다.


하도 많이 이야기하니까 피구를 안 하는 내가 나쁜 선생님처럼 보인다. 교과서에 없어서 그런 건데. 근데 오늘은 피구를 했다. 셔틀런(왕복달리기 체력 검사)을 끝낸 후, 아이들이 피구 해도 되냐고 묻는 말에 얼떨결에 하라고 해버렸다. 포기하지 않고 피구 문제를 마주하더니 아이들은 결국 해냈다. 비록 5분이었지만. 열 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의 심정이 이랬으려나. ‘그래~ 피구 해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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