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교육과를 나왔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그럼 너는 음악만 가르치는 거냐고. ‘그런 건 아니고 다 가르친다. 초등교사는 보통 교대를 다니는데 교대 안에는 여러 과가 있다. 국어교육과, 수학교육과, 체육교육과, 도덕교육과 등 초등 교과만큼 있다. 컴퓨터교육과도 있다. 거의 공통된 걸 배우지만 과마다 해당 과목만 심화해서 배우는 정도다.’라며 항상 해왔던 답변을 능숙하게 해낸다. 대부분 끄덕이긴 하는데 진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교대에 입학하면 심화 전공을 선택한다. 원서를 쓸 때는 00교대 초등교육과지만 그 안에는 12개의 학과가 있다.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모든 신입생은 강당에 모여 12개 과에서 준비한 홍보 영상을 시청한다. 그리고 한 학과의 홍보 영상이 끝나면 해당 과대가 나와 학과를 소개한다. 홍보 멘트와 영상 퀄리티는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보인다(내가 음악교육과 집행부였을 때는 ‘우결’이 유행이라 우결 컨셉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신입생 때는 그랬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홍보 영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음악교육과에 들어갔다.
음악교육과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우리는 졸업 논문을 쓰지 않는다. 대신 졸업 연주회를 한다. 그래서 악기를 정하는 게 중요하고, 음악교육과에 속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바로 악기 정하기였다. 우리는 분과라고 표현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처럼 유명한 악기도 있고, 콘트라베이스, 오보에, 호른 등 쉽게 접하지 못하는 악기도 있다. 국악기도 있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그리고 피리까지. 4년 동안 함께 할 악기를 정하는 건 그야말로 큰 행사다. 그래서 선배들은 악기 소개에도 진심이다. 학과를 소개하는 것처럼 악기를 소개하는 시간 또한 있다. 선배들은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기네 악기를 선택하도록 유혹한다. 첼로 분과 선배의 멘트가 아직 기억에 남는다. 첼로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그래서 마음을 울린다고. 이때도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첼로 분과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주한 것도 포함한다면 첼로와 친한 지는 9년이 넘었다. 악보를 보면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정도니 분과 안에서는 나름대로 실력 있는 학생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며 첼로를 다시 연주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의 공간에서 첼로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내가 배웠던 첼로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정말 기뻤다. 그렇게 4년간 첼로 레슨도 받았고, 관현악단 단장을 하며 협연도 해보고, 청심환 없이 졸업 연주회도 해냈다.
난 음악이 좋다. 그래서 교사가 된 후에는 음악 수업에 관심이 생겼다. 음악으로 재밌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작은 학교에 근무할 때는 아이들이 쓴 시로 노래를 만들곤 했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면에 있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내가 맡은 2학년 1반은 5번까지만 있었다. 물론 2반은 없다. 아직 교육과정도 어색한 신규 선생님이 열정만 가득 담아 아이들과 노래를 만들었다. 수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시를 쓴다. 시는 길어도 좋고 운율 그런 건 뭐 없어도 좋다. 시를 다 쓰고 나면 꼬마 작가님에게 이 시를 노래처럼 불러보라고 한다. 기존에 있는 동요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아이의 흥얼거림을 녹음한다. 흥얼거림에서 미세한 멜로디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멜로디를 확정한다. 흥얼거리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는 피아노로 간단한 코드 반주를 해준다. 그러면 곧잘 노래로 부른다. 노래 만들기는 아홉 살이 가지고 있는 흔한 능력이지 않는가. 멜로디에 맞게 피아노를 연주하면 하나의 노래가 완성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하기 힘든, 주변에 보급할 수 없는 철저히 능력으로 이루어진 수업이었다.
규모가 큰 학교로 오고 나니 23명 대상으로 노래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몇 명만 뽑아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시로 노래를 만드는 동아리를 운영했다. 딱 5명이 들어와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고학년은 노래 만드는 과정을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기존에 듣는 노래가 동요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부끄러운 게 컸다. 4명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를 엄청나게 주저했다. 그렇게 동아리는 밋밋하게 흘러갔다.
23명인 우리 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노래 부르기 정도였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는 무엇보다 곡 선정이 중요하다. 점심시간에 라디오처럼 노래를 틀어줄 때가 있었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건 가사였다. 선정적인지는 않은지, 욕이 나오지는 않는지 꼭 확인했다. 5학년 아이들은 가요를 좋아했는데(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사랑에 대해 모르면서 쉬운 멜로디를 따라 사랑을 흥얼거리곤 한다. 최근에는 사랑했다고 잊을 수 없다고 자꾸 생각난다며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걸 들었다. 가요에는 사랑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동요처럼 아니면 동요만큼 가사가 좋은 곡을 선정해서 아이들과 불렀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라며 언제나 네 곁에 서 있다고 응원해 주는 지오디의 촛불 하나.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예쁜 꽃을 갖고 싶다 꺾지 말고 멀리서 바라보면 더 예쁘다고 말하는 김진영 작곡가의 꽃을 꺾지 마세요. 노래에는 내뱉기에 부끄럽지만, 막상 들으면 좋은 말을 주고받게 하는 힘이 있다.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아이들의 합창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꾀꼬리 같은 저학년이 불러도 변성기가 온 고학년이 불러도 함께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 근사했다. 사실 내가 수혜자였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잘 모른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 지휘자가 가장 먼저 황홀함을 듣는 것처럼 합창 수업을 하면 교사가 가장 먼저 들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마음에는 음악 전담이 있다. 음악만 가르치면 더 재밌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움도 깊고 즐거움도 가득한 음악 수업 말이다. 나도 음악 교과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으니 상부상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금 내가 속한 학교는 이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지만, 음악 교과 전담 교사 자리는 없다. 현재 있는 체육, 과학, 영어를 빼고 음악 교과를 전담 교과로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아무래도 음악 교사보다는 과학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듣기로는 작은 학교에 음악 전담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신 그 선생님은 연구부장*도 맡고 계신다고 했다.
열망과 달리 지금은 체육만 가르친다. 작년에는 지망에 적지도 않은 생존수영과 직원체육 업무를 맡았는데, 올해는 체육부장이다. 다른 분들이 꺼리는 6학년을 1지망에 적었건만 결국 체육 전담 교사다. 두어번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고민해 보라며 나중에 전화를 주신다고 했다. 고민 끝에 4년 동안 여러 부장님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1년은 고생하며 은혜를 갚아야겠다며 부장을 맡기로 했다. 모두가 꺼려서 돌고 돌았을 전화는 나에게서 멈췄겠다. 체육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2학년과 배경 음악 틀기 정도. 경찰과 도둑을 할 때 미션임파서블 노래가 흘러나오면 3배는 더 박진감이 넘친다. 체육 시간에 얻은 음악에 대한 깨달음이지만 마음 한쪽이 쓰린 건 기분 탓일까. 생각해 보니 음악 전담은 일종의 미루기였다. ‘음악만 가르치면 더 잘할 텐데’ 하며 매주 찾아오는 음악 수업을 등한시했다. 계속 아쉽다고만 하며 애꿎은 제도 탓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음악을 가르칠 기회도 없을 줄은 몰랐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도 실력이라면 내 실력은 꽝이겠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리코더 교실을 운영한다. 리코더 연주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음악 수업을 한다. 딱 3명이다. 오늘은 솔, 라, 시를 배웠다. 떴다 떴다 비행기를 연주하기 위해선 솔, 라, 시가 필수다. 내 손뼉에 맞추어 아이들이 삑삑 소리를 낸다. 리코더가 뭐 어렵겠나 싶었는데 가르쳐보니 얘들은 진짜 어렵나 보다. 다행히 인원이 적어 한 명씩 손가락을 짚어줄 여유가 있다. 피아노만 있으면 딱인데. 사실 지금은 아주 조금 지루하다. 이렇게라도 음악을 놓지 않고 있으니 감사해야지. 피아노가 있는 교실로 가든지 피아노를 구해오든지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겠다.
음악과의 관계도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겠다.
*연구부장: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부장.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연구부장은 각 학교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