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조지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리 매일매일이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해도, 조지아에서 살기 위해서는 뭐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넓은 이해심을 갖춰야 했다. 무엇보다 조지아인의 도움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열쇠를 복사하러 가는 것도 큰일이고, 아파트 관리비를 내는 것도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전기세를 제때 안 내서 전기가 갑자기 끊겨버리거나, 수도세를 잘 냈는데도 갑자기 물이 안 나올 때가 있었다. 동네 직원에게 전화를 걸면 물이 언제쯤 나올 거니까 그저 차분히 기다리라고 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미리 대처하는 요령이 생겼다. 전기가 끊기면 노트북에 미리 담아놓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제대로 불빛이 차단되어서 영화관도 부럽지 않았다. 물은 항상 미리 페트병에 담아놔서 수도가 끊긴 날에도 간단하게 씻을 수 있게 준비했다. 전기와 수도가 동시에 끊기면 정말 당황스럽지만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하게 된다. 추운 겨울날, 동료 Y와 깜깜한 화장실에서 서로 페트병에 담긴 물을 따라주며 짜릿한 차가운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한 것도 잊지 못할 해프닝이 되었다.
세상이 많이 좋아지긴 했다. 길을 찾을 때는 구글맵으로 찾으면 되고, 집 앞에 24시간 마트가 있으니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은행 계좌 개설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한 번은 치과에 갈 일이 있었는데, 젊은 치과 의사 선생님께서 온갖 지극정성으로 치료를 해주셨다.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 앞에 바로 치료를 받는 의자 두 대가 놓여있었다. 접수처도 따로 없고 손님도 없고 치과의사 한 분과 간호사 한 분만 그곳에 계셨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동안 꼼꼼히 치료해주셨다.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는 상냥한 친절은 받지 못했지만, 무심하게 툭툭 잘라준 머리 스타일은 마음에 들었다. 조지아에 살면서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바로 ‘네일아트 해보기’였다. 그냥 궁금했다. 몇 개월을 미루다가 큰맘 먹고 네일샵에 찾아갔다. 사진을 보여드리며 똑같이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역시 오랜 시간 공들여서 정성스럽게 네일아트를 해주셨다. 스타일은 사진과 똑같이 해주셨는데 아쉽게도 열심히 박은 큐빅이 금방 떨어져 버렸다. 그날 잠들기 전에 조지아에서 네일샵을 차리는 상상을 해보았다.
자유광장 역 근처 대형 쇼핑몰인 갤러리아 몰(Galleria Mall) 5층에 있는 영화관에서는 영어로 상영하는 영화도 볼 수 있다. 신기한 점은 영화를 영어, 러시아어, 그리고 조지아어 버전 중에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영화 상영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 리카와 Y랑 영어로 상영하는 영화를 봤다. 잘 못알아 들었지만 액션이 많으니까 어찌어찌 재밌게 보았다. 또한 이 쇼핑몰에서는 가전, 가구, 생필품 등 온갖 쇼핑을 다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사는 것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조지아의 모든 것이 좋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살다 보니 분명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고, 실망할 때도 많았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갔는데 슬로우푸드만큼 기다릴 때도 있었고, 마트에서 계산할 때 이 물건은 제외해달라고 했는데, 그 일이 엄청 큰일인지 온 직원이 달라붙어서 해결하느라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조급한데 사람들은 여유로울 때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지만 이렇게 조지아와 인연이 된 이상 내가 조지아를 더 많이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을지 정보를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트빌리시 므타쯔민다(Mtatsminda) 공원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고 리카를 데리고(?) 가서 온갖 신기한 와인을 맛보았다. 조지아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여보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각자의 사연과 삶이 있었다. 조지아 기념품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니꼬피로스마니 작품이 그려진 컵 받침, 힌깔리 캐릭터가 그려진 에코백, 조지아 동료가 만들어 준 양초, 빽빽한 조지아어로 가득한 아파트 관리비 납부 통지서도 특별한 기념품이 됐다.
내 주변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한국어가 수준급이어서 나와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의 열정과 재능에 감탄했다. 조지아 친구들끼리는 서로 조지아어로 말하다가 러시아어로도 말하다가 갑자기 나한테는 한국말을 한다. 영어도 잘한다. 조지아어 알파벳을 더듬더듬 읽는 수준인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친구들과는 여느 20대처럼 같이 커피 마시고 와인 마시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가끔 공부도 하고 가끔 여행도 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주 가는 곳은 올드 트빌리시. 2주에 한 번은 케이블카를 탔다. 그리고 나서는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끼리 이렇게 서로 공감하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나는 조지아 노래가 구수하고 좋던데, 친구들은 한국 노래만큼 좋은 노래가 어딨냐며 나도 모르는 옛날 한국 노래를 추천해준다. 친구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노래방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조지아에 코인 노래방이 생기면 어떨까? 대박 날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아이돌에 관심 없던 내가 조지아 친구들 덕분에 유명 멤버들 이름을 다 외웠다. 누구보다 한식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밥을 해 먹으면서 요리 실력을 키웠다. 쇼티스 뿌리와 된장찌개를, 라면과 크베브리 와인을 같이 먹었다.
한국 메이크업이 무척 예뻐 보이나 보다. 한국 메이크업을 해달라고 친구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조지아에서 갑자기 금손(?)으로 인정받았다. 직접 메이크업을 해주니 뛸 듯이 기뻐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대체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내 눈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조지아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이는데 이렇게 서로의 취향이 달라도 되는 거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해가 바뀌는 1월 1일 새해 트빌리시 풍경은 정말 신기하다. 한국에서는 TV 속 연말 시상식을 켜놓고 MC가 카운트다운을 세는 장면을 보며 새해를 맞이했는데, 이곳에서는 일단 어디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터지는 트빌리시의 폭죽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리바리한 얼굴로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12시가 되자마자 파바바박 소리가 들리며 엄청난 폭죽이 터졌다. 장관이 따로 없었다. 계속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폭죽이 터지고 눈앞으로 불똥이 휙휙 지나갔다. 온몸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것이다. YouTube에 ‘Tbilisi New Year’라고 검색해보면 많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새해가 되는 날 트빌리시에 온다면 더없는 행운을 맞이하는 것이다.
참 신기한 조지아 생활. 조지아에 살고 있었음에도 내가 조지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조지아를 마음깊이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