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어려지는 15분
프리랜서 아빠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이른 시간 출근을 해야 해서 아이를 등원하는 일은 내가 담당하고 있다. 매일 하는 등원이지만,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느낀다. 그중 백미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15분 남짓한 시간이다. 사실 이 길은 어른 걸음으로는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면 아이의 걸음이 향하는 대로 한없이 길어질 수 있다. 아이는 절대로 목적지를 향해 그냥 걷는 법이 없다. 떨어진 낙엽도 한 번 봐야 하고, 길에 떨어진 돌멩이도 주워야 한다. 습한 날 길에 나와 있는 지렁이는 이준이의 최고 구경거리다. 기다란 나뭇가지가 있으면 주워서 땅에 그림도 한 번 그려주고, 개미는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비라도 내리면 웅덩이에 발을 첨벙하며 아빠를 한숨 쉬게 한다. “그 바지 새로 산 건데…” 길가에 칠해진 페인트를 따라 걷기도 하며,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는 “아빠, 그네 한 번 타자!”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이렇게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조차도 즐거운데, “와! 이 짧은 길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이 행복한, 정신없는 15분은 아내도 모르는 나와 이준이만의 15분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눈길을 두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목적지를 찍고 나면 그 외 필요하지 않다 생각되는 것들에는 좀처럼 시선을 두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번거로워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가 든다. 세상 많은 것에 무관심해지면서. 그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나쳐 왔을까? 반면, 어린아이의 시선은 종잡을 수가 없다. 마치 지금 어디를 향하는 건 중요치 않다는 것처럼 스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둔다. 길게 행렬을 이룬 개미를 만나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재밌다는 눈빛으로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낸다. 아직도 아들의 그런 행동에 나는 이유를 찾지 못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어른인 내 입장에서도 재밌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하는 등원길, 나는 불필요해 보였던 것들을 보며 시간을 쓰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때로는 바쁜 아침에는 아이를 들쳐 업고 그런 것들을 무시한 채 길을 걷는다. 멈추고 싶은 아이는 울거나 보채고, 아빠를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째려보기도 한다. 나는 되도록 오랜 시간 아들이 천천히, 오래 등원했으면 좋겠다. 목적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지금 흥미로운 것들을 눈에 담기를 바란다. 아이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잘 어울리니까 말이다. 한가한 아빠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런 순간들이 있어 내가 한가한 아빠임에 감사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동안은 나는 아이의 제멋대로인 걸음을 막지 않으려 한다. 사랑하는 아들의 눈에는 개미떼와 지렁이가 참으로 잘 어울리니까. 그 눈에 담긴 세상을 오래도록 보고 싶으니까. 너는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지만, 아빠는 너와 함께 어려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