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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량 Apr 10. 2021

직장을 떠난,
대낮의 자유가 어색하다

평일, 대낮의 자유를 

불안해하는 직장인과

열린 새장 문을 나온 새는,

익숙한 그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새장 안에, 저 새와 같이

야생성을 잃은 탓이다.


<평일 대낮> 한동안 거리를 활보합니다. 모두들 사무실에 있는 시간 자신은 그곳이 아닌, 평일 대낮 한동안 거리를 거닐며, <정당하게 주어진 시간>이 왠지 어색한 느낌이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늘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신호를 줍니다.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 그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열린 새장 문으로 다시 들어가는 저 새와 같이네모난 콘크리트 안으로 들어가 남들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야>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안이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열망하며, 견고한 새장 문이 굳게 닫혀 있어야 안도합니다.


그것이 안정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안정되면 될수록, 

안도하면 안도할수록, 

남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출수록, 

그리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외면할수록,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거기서 <오르면 오를수록> 느낍니다. "외줄로 된 밧줄에, 자신은 매달려 있었구나" 그리고 그곳이 전부이기에 모든 감정과 촉수는 그곳에 매몰됩니다. 남들의 인정과 승진이 자기의 모든 것입니다. 직장의 놓인 사다리를 올라타야 합니다.


그리고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권한 있는 자의 눈빛과 어투와 평가에 매일 반응하며 그렇게, <타율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적성에 맞고, 그런 속성에 같다면, 옳은 결정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장 안에 새도 본래 가진 야생성이 억누르고 있듯, 우리에게도 그런 것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사라는 발명품은 수익성이 특화된 상품입니다. 아직 인류는 이만큼 수익성이 높은 시스템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고안된 상품이 <아니기>에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척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떠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도 잘 모릅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반복되며 야생성은 더욱 퇴화되며 이제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걸음으로 사다리에 오릅니다불안한 감정은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 감정을 넣어두고 최선을 다해 오릅니다.


그렇게 반복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답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용기와 잠재된 에너지를 표출시키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글에서 짙게 베어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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