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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an 10. 2018

트레바리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고

우연한 기회로 대학생 때부터 독서모임을 해왔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다. 독서모임 덕분에 (의지가 부족하거나 식견이 편협한 탓에)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책을 읽게 됐다. 독서모임 덕분에 억지로 독후감을 썼고, 쓰다 보니 어설프지만 나만의 주관이라는 게 생겼다. 독서모임 덕분에 책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접할 수 있었다. 독서모임 덕분에 ‘지금의 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독서모임이 현대인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활동 중 하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독서모임 운영은 힘들었다. 재밌는 건 독서모임이지 독서모임 운영이 아니었다. 괜히 많은 독서모임들이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을 모은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요구했다. 한번 모으는 것도 힘든데, 계속 모으는 건 더 힘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규칙을 정하다 보면 누군가는 불만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보다 모임에 조금 더 애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고생을 하기엔, 지치는 요인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하면 독서모임 운영을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못 찾았다. 독서모임 운영은 기본적으로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재미없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랬더니 방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돈을 받으면 될 것 같았다. 주변에서 재미없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돈을 받고 있었다.


돈의 힘


돈을 받아 봤다. 한 번에 3만원씩 받았다.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독서모임 개수가 한 개, 두 개, 세 개로 늘어날 때쯤 창업을 결심했고 사업자등록을 했다. 이번에는 한 시즌 단위로 묶어서 돈을 받아 봤다. 이번에도 계속해서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 시즌 12만원이라는 회비로는 자영업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경험이 없다 보니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했다. 그래도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어찌저찌 나 혼자 한 개의 아지트를 운영하면서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체력 좋고 챙길 식솔 없는 젊은 날에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저축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아프면 큰일이 날 것이었다. 하물며 누군가를 고용하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하도록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가격을 19만원으로 올렸다. 다행히 그래도 계속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제적인 상황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 채용을 했다. 높은 연봉은 아니었다. 회사가 아직 작고, 우리가 아직 젊다는 게 근거였다. 담보는 장밋빛 미래였다. 아무리 돈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입사했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위험을 감수한 만큼의 경제적인 리턴 또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터였다.


감사하게도 회사는 계속 성장했다. 그렇지만 회사가 크는 만큼 사람도 계속 뽑아야 했다. 커지는 건 규모였지 생산성이 아니었다. 아직 트레바리는 돈을 충분히 많이 주는 회사가 아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사람은 늘릴 수 있겠지만 돈을 더 많이 주기는 어렵다. 직원이 가난해야지만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회사는 절대 좋은 회사가 될 수 없다. 트레바리가 좋은 회사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든 생산성을 개선해 내야만 한다.


트레바리가 생산성을 개선할 수 없다면, 트레바리는 망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서울은 수백 개의 독서모임을 잃어버릴 것이다. 현재 트레바리는 국내에서(어쩌면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대규모로 우수한 품질의 독서모임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회사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축에 속하는 인재들이 불철주야 열정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레바리가 생산성 개선에 실패한다면, 이들 중 다수는 지쳐서 트레바리를 떠날 것이다.


우리의 실패는 우리의 실패만으로 끝나는 게 아닐 것이다. 우리 말고 다른 회사가 대신 성공시켜주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 말고는 딱히 비슷한 도전을 하는 회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실패는 ‘독서모임으로는 돈을 못 번다’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나아가 ‘역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는 돈 벌기 힘들어’라는 누군가의 냉소에도 더 힘이 실릴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꼭 성공해야만 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물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술을 마시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맞춤 정장도 입어보고 싶고, 가격 대신 메뉴만 보고 식당에 가보고 싶고, 택시 타고 다니고 싶고, 엄청 큰 침대에서 뒹굴면서 자보고도 싶다. 만약 내가 맞춤 정장을 입고 택시에 탄 다음 비프웰링턴(아직 못 먹어봄)을 파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더블 킹 사이즈 침대에서 잠이 드는 날이 온다면, 나도 행복하겠지만 우리가 가꾸는 트레바리라는 커뮤니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 우리의 진정성에 그 정도 자신감은 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래야지만 더 우수한 사람들이 더 쉽게 좋은 뜻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선의를 증명하는 방법이 가난인 사회보다는 선의를 가지고 만들어낸 선한 결과, 그리고 그로 인한 부와 명예인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에 트레바리가 좋은 사례로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독하게 현실주의적인 회사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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