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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콩 Dec 17. 2022

14. 우리 집 막내는 여전히


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 글도 토토와 애니멀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도 죽으면 기일마다 제사상을 차리는 것처럼 우리도 토토가 떠난 날, 그리고 설이나 추석에 작게나마 토토의 상을 차려주고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의 상을 차려주면 아이들은 차려진 음식의 에너지를 먹고 간다는 얘기가 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1년에 몇 번 토토를 위해 차리는데, 애니멀커뮤니케이션을 배워 토토와 대화한 이후로는 토토가 먹고 싶다는 것, 아파서 못 먹었던 것들 위주로 차려주고 있다.

이번 이야기의 마지막.
다른 날과 유난히 달랐던 올해 기일에 상 차려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토토, 이 망할 동생은 말 한마디 한마디로 우리 가족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울리고 웃게 했으니까.

기일이 다가올 당시 여느 때처럼 토토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었다. 웬만하면 토토가 좋아하는 거로 차려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나 뭐라나.

"토토 이제 집에 안 온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래. 엄마가 해주는 음식 아무거나 다 먹고 싶대."

슬픈 마음 반, 들뜬 마음 반. 하지만 쌍둥이가 전해준 토토의 말에 우리 가족은 전부 눈물을 흘렸다. 이제껏 토토가 집에 와주는 것, 대화가 가능한 것만 믿고 나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 온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는 토토와 대화하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기에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다.

"토토는 우리가 너무 힘들어해서 안 온대. 안 오면 우리가 더 힘들어해서 와야 한다니까, 우리는 이제 카노랑 젤리한테 집중해야 하고, 토토는 이미 갔으니까 미련 갖지 말고 토토한테 자꾸 집착하면 안 된대. 토토랑 젤리랑 카노 다 예뻐하면 안 되냐니까 그럼 젤리랑 카노가 뒷전이 돼서 안 된대."

가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개동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건지. 동생과 자식에 대한 마음이 다르건만. 그때는 토토한테 뭔 소리냐고 화냈던 것 같다. 남매간에 흔히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이미 떠나간 토토가 최우선이고 아이들이 뒷전인 것 같지만, 결단코 토토로 인해 아이들이 뒷전이었던 적은 없다. 매년 찾아오는 토토 기일에도 우리는 아이들이 같이 먹을 수 있는 간식 같은 걸 같이 준비했으니까. 토토랑 못 갔던 여행도 가고 주말이면 애견 운동장도 간다. 그렇다면 토토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걸까.

수많은 대화를 하던 큰누나, 쌍둥이의 입에서 드디어 듣고 싶던 말이 나왔다.

"그럼 앞으로도 찾아오고 누나 눈에도 보일 테니까 이번에는 엄청 크게 상 차려달래."

상을 크게 차려달라니. 지금까지 차려줬던 게 부족했나? 이런 딜을 하려고 안 보이겠다고 말했던 건가? 우린 어이가 없어서 울면서도 웃었다. 정말 무지개다리 건너에서도 가족들을 가지고 노는 토토의 실력이란. 참 대단하고 또 대단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처럼 안방에서 큰상 펴놓고 토토 액자 올려달래."

어쨌든 당장 아쉬운 건 우리였으므로 토토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따지자면, 다신 오지 않겠다는 말 없이 상을 크게 차려달라는 말만 했어도 엄마는 기꺼이 준비했을 거다. 다신 없을 하나뿐인 아들의 제사상이니까.

-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은 상 -
- 사진보다 잘생겼다는 토토 양모 액자 -


22년 8월 31일.
우린 오후부터 토토가 먹고 싶다는 것들로 가득한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참 많이 바빴다.

제일 바쁜 건 안 오겠다더니 아침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대장처럼 줄 서 있던 토토였다.

누나들 덕분에 살아있을 때 꽃을 많이 봤던 토토는 커다란 거베라를 상에 올려주길 바랐다. 안 되면 엄마가 좋아하는 안개꽃이라도, 누나들 때문에 처음 봤던 새빨간 장미라도 올려달라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가는 꽃집마다 문을 닫았고, 그나마 열린 꽃집도 우리가 찾는 꽃이 없어 결국 리시안셔스가 들어간 꽃다발을 사서 올릴 수밖에 없었다.
- 팔불출도 이런 팔불출이 없지만, 토토는 누나들이 꽃다발을 만들어주길 바란 것 같다.-

그렇게 오후가 될 때까지 엄마는 요리를 했고, 우린 차근차근 상을 차렸다. 좋아하는 과일이며 고기, 과자랑 간식까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준 우리는 토토 사진을 보며 앉아 있었다. 쌍둥이는 토토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1년에 딱 한 번뿐인 날. 아빠 없이 할 수 없었기에 아빠 퇴근 시간까지 맞춰야만 했다.

상을 다 차리고 보니 시간은 오후 6시.

쌍둥이는 눈을 감고 자신이 보고 듣는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갔다.

큰상을 펴고 가족들이 앉아있어 방이 좁게 느껴졌다. 그건 우리뿐만 아니라 토토, 그리고 토토 친구들도 느끼고 있었다.

"자리가 좁아서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먹으라니까 자기들이 작아지면 된다고 작아져서 상에 올라가서 이것저것 먹고 있대."

도대체 친구들을 얼마나 데리고 온 건지. 볼 수만 있다면 작아진 동물들이 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걸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토토 어깨가 올라간대. 맛있는 거 많이 차려줘서."

그 말에 엄마는 웃었다. 잡채며 고기까지. 장을 보고 요리하면서 고생한 보람이 있던 거다. 상이 아주 꽉 찼으니 토토가 좋아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무척 실망했을 거다.

"엄마가 해 준 고기가 제일 맛있는데, 시선은 칠면조 다리에 있어."

그 말에 우리는 전부 웃었다. 토토는 살아있을 때 칠면조 다리처럼 큰 고기를 본 적이 없었다. 저번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먹는 걸 본 건지 이번 기회에 먹고 싶다길래 올려줬더니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기껏 요리해 준 엄마 서운하게 칠면조 다리만 볼 만큼.

우리가 웃을 동안 쌍둥이는 대화를 이어갔고. 그 대화는 토토뿐만 아니라 같이 온 친구들과도 통했다.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이 크게 들어오면 한입거리도 안 되는데 작게 들어오면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대."

괜히 마음이 포근해졌다. 작아지면 많이 먹을 수 있다니. 어린 아이랑 비슷한 동물들이 할법한 생각이란 사실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얼마나 작아졌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쌍둥이는 우리가 힘들게 사 온 꽃에 대해 말했다. 토토는 토토였다.

"거기에는 널린 게 꽃이라서 꽃은 그다지 필요 없었다는 것 같아. 예쁜 꽃 많으니까 나중에 우릴 거기 데리고 가고 싶대."

사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젠 필요 없다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예쁜 꽃을 볼 때마다 우릴 생각하고 떠올릴 토토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팠다. 우리 가족은 전부 여기 있는데 토토 혼자 멀리 있는 게 마음 한구석에 계속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만나러 갈 수도 없으니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원하는 대로 상이 알록달록해서 좋대."

"다람쥐랑 새도 있는데 걔들이 다른 견과류도 많은데 땅콩이 커피땅콩이라 아쉽대."

"토토가 떡국도 알록달록해서 예쁘대. 자꾸 다른 친구들만 먹는 모습 보여주고 토토 먹는 모습은 왜 안 보여주냐니까 다른 친구들은 돌아다니면서 먹을 데가 없고 토토는 매년 챙겨줘서래."

"토토는 누나들이 엄마랑 이모라는 게 웃기대."

쌍둥이는 토토의 말을 쉴 새 없이 전했다. 오랜만에 거하게 상을 차려줘서 그런지 토토도 말이 많았다.

말이 많은 건 토토 혼자만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신기하지만, 토토를 따라온 친구들까지도 쌍둥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집이 없어서 궁금하다는 듯이 우리 집을 구경하는데, 이런 음식 처음 먹어본대. 토토 자리 만들어놔 준 것도 신기하고, 솜사탕을 맨날 보기만 했지 저런 건지 처음 알았대."

"토토는 뿌듯한가 봐. 다른 애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먹여줄 수 있어서."

문득 드는 의문 한 가지.

"내가 너랑 얘기하고 있는 게 맞아?"
- 누나가 나랑 얘기하는 게 아니면 내가 가족들이랑 어떻게 소통할 건데?! 다 맞아!

토토는 참 변함이 없다.

"소세지 반씩 잘라서 애들 주래. 토토가 집 나가면 항상 유혹하려고 사던 소세지라서, 누나들이랑 추억이 많은 음식이라서 그렇기는 한데, 자기는 삼촌이라서 괜찮대."

삼촌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조금 의젓해진 것 같기도 하고?

"토토는 시큰둥한데, 다른 애들은 저 양모 액자랑 꽃 냄새 맡고 신기하대. 다른 애들이 토토 사진보다 양모 액자가 더 잘생겼대."

"토토 따라온 애들은 자기들은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매년 챙겨주면 올 거래. 토토는 '안 돼~ 우리 가족 힘들어!' 하는 느낌?"

"토토는 애들 데리고 간다는데, 다른 애들이 우리 집에 계속 있고 싶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어. 내가 출근하면서 매일 봤던 새가 자기가 마지막으로 가겠대."

"죽은 그 새 볼 때마다 매번 다시 환생하지 말고 좋은 곳에서 지내라고 기도해주고 그랬더니 너무 고맙다고. 토토가 앞장서면 그 새가 마지막으로 날아갔어."

올해 토토 기일은 그렇게 끝이 났다. 큰누나의 이야기 전달 시간도 끝이었다.

정말 길고 길었던 대화 같지만 따지고 보면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대화였다. 누군가는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믿지 못할 수 있다. 허무맹랑한 얘기를 글로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펫로스를 통해 경험한 많은 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애니멀커뮤니케이션을 믿고 있다. 지독한 펫로스를 겪는 와중에도 잠시나마 숨통을 트여주는 계기가 됐고, 살아있을 때는 나누지 못한 말들을 나눌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덕분에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토토가 오가면서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17년을 함께한 개동생 토토를 떠나보내고, 토토로 인해 새롭게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던 일은 여기서 끝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우린 여전히 토토와 소통하고 깨발랄한 세 남매와 함께 살아갈 거다. 아이들과 즐겁게 살다가 이별할 날이 오게 된다면 토토가 조카들을 마중 나와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고 곁에서 지켜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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