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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May 15. 2022

나만 뒤쳐질 수 있다는 두려움

Fear of Missing Out

1.  

6년 전, 회사에 닳아 헤진 몸과 마음에 안식이 필요했던 그 해, 나는 엉뚱하게도 아파트를 샀다.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등지는 것도 부족해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결정이었다. 그런 무모한 결정은 절망 속에도 희망을 찾으려는 절박함과 남들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세) 집주인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있었다.

격년마다 무섭게 오르는 전셋값을 충당하기도 버거웠던 나와 달리, 두세 살 많은 그는 자산 가격의 상승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었다. 겉보기에 전혀 다를 것 없어 보였던 우리에게 결정적인 차이는 ‘부모’였다. 그의 부모는 아파트를 증여해 줄 재력이 있었고, 나의 부모는 그렇지 못했다. 끓어질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연은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운’에 가깝다. 그래서 아파트를 사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나의 부모도 한때 자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전세금을 척척 올려줄 때마다 ‘언젠가 나도 아파트를 사서 전세금을 받을 테다’라는 희망과 질투가 있었다.



2.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투자자들이 시장에 밀려 들어와 부동산, 주식 그리고 암호화폐 등에 투자했다. 그들이 투자와 투기의 종이 한 장 차이를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높은 기대수익을 꿈꾸며 신용부채를 일으켜 자산을 사들였다. 특히나 그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던 형제, 친척, 친구, 동료 등이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을 직접 목도하면 지체 없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들 중에는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그리고 주부들이 있었다. 그리고 담대하면서 무모한 투자를 하도록 부추긴 것은 ‘남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이었다.

한국부동산원 - 통계정보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지수’와 ‘실거래가 매매지수’ 기울기는 2020년 1월부터 가팔라졌다. 그리고 작년, 어느 국회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자료를 받아 정리한 LTI (Loan to Income /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과 DSR(Debt Service Ratio /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에 따르면 2021년 전체 LTI와 DSR은 각각 238.4%와 37.1% 였다.

즉, 갚아야 하는 부채(빚)가 한 해 소득(세전소득)보다 2.4배 많고, 매달 갚아야 하는 부채(빚)의 원금과 이자는 한 달 소득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이야기이었다. 그리고 이 부채의 높은 비중은 ‘주택자금 대출’이었다. 통계청에서 최근 내놓은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공공데이터’의 ‘연령별 평균소득’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평균소득은 320만 원이다. 즉, 한 달 320만 원(세전소득)을 벌고 약 120만 원의 돈을 빚을 갚는데 쓰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금융소득 및 기타 소득과 전세대출은 미반영되었으며, 자료의 시차는 1년 정도)

출처: 통계청

결과적으로 보면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담보와 신용을 일으켜서 아파트 매수에 나섰던 것이다. ‘아파트 영끌’이라는 신종어가 이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시기에 아파트를 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기대 수익을 얻으려는 다주택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남만큼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남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 그래서 한번 미끄러지면 다시 따라잡을 수 없다는 공포가 '불안'과 '결핍'을 부추겼을 것이다.



3.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면서도 좀먹는 것은 ‘불안’과 ‘결핍’이다. 우리가 이 두 불온한 감정을 대하는 심리적 태도와 행동 방식에 따라 ‘불안’과 ‘결핍’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땔감이 되거나, 컴컴한 심연에 우리를 가두는 자물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이 감정이 극대화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장대한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최근의 일이다.

출처: KBS

동서양 역사에서 출생과 함께 정해진 신분제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신분제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나 세상의 이치와도 같았기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수 차례의 정치 혁명과 경제 혁명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인간의 인식은 점차 바뀌었다. 인간은 보편성 속에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서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출처: 방통대

풍요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없다는 진실이 인간의 역사에서 수 없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평등, 자유, 공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믿음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근현대 이전 시대에 계급은 신이 정해준 왕에 의해 부여되었다면 현대는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민주주의)와 물질(돈)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비교의 준거집단은 다름 아닌 우리와 가까운 형제, 친구, 동료가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따르면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 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4.

가끔 가계 부채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보면 아파트 영끌 매수를 비난하는 댓글이 있다. 개인의 정의가 사람 수만큼 다르다지만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선택이 아니라 강요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홀로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아파트를 산다고 했을 때 멀쩡하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그저 사람들은 남들만큼 살려고 샀을 뿐이다.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애썼을 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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