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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Jun 07. 2017

정말 미안했어요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수 삼 개월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않던 여대리가 나타났다. 그녀가 한동안 보이지 않자 그녀의 부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병가 중이라고만 대답해서 그간 그녀가 잘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동안 어찌 지냈냐며 몸은 좀 괜찮냐며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내가 평소에 알던 눈빛이 아니었다. 걱정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응축된 감정을 감출 수 없는 눈빛이었다. 나는 뭔가 심히 좋지 않은 일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대리와 나는 회사에서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리를 두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녀와 식사나 차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우리는 질 나쁜 팀장을 모시고 있다는 동병상련으로 일종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꽤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약간의 비음이 담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수다와 푼수기가 있었다. 간혹 나와 협업을 하면서 인간적인 업무 실수를 해서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그녀는 가끔 눈치 없이 자신의 단점마저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었다. 그만큼 여대리는 자기 인생에 당당하고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그런 면면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관적으로 정해 놓은 범주 바깥의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범주에 비켜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그녀의 면면이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저급하게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고유한 개성의 차이를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의 획일화된 이분법적 기준으로 갈랐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인간 본성에 있어 처음 맞닥뜨린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공포라면 피아식별이라는 행태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다양성을 인정하기 싫은 관습에서 오는 거라면 참으로 화나고 슬픈 일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 정말 몰랐다거나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에 벌어진 생채기가 쉽게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물어도 흉터는 그대로 남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 뇌에서 어느 부위가 활성화가 되냐면 신체적으로 우리가 아픔을 당할 때 활성화되는 그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똑같은 부분이 그게 뭘 보여주느냐 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들 속에 포함되려는 아주 강력한 동기가 있다는 거죠."
- 서울대 심리학교 최인철 교수 /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 중에서 -



 내가 미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보니 여대리는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거리가 가까운 부서의 사람들이 화장실로 달려갔고 누군가는 앰뷸런스를 불렀다. 사람들은 누가 쓰러졌는지 궁금해 하면서 화장실 입구 주변에서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누군가 쓰러진 사람의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구급대원은 환자를 스트레치카(이동식 침대)에 눕혀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놀랐다. 그 환자는 여대리였다. 구급대원이 그녀를 데리고 신속하게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연기를 했다는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그 소문과 함께 그녀가 회사에 다니면서 보였던 행실과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녀가 정말 연기를 한 것인지 아닌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했다. 내가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무서울 만치 타인의 불행을 어떠한 확인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입안의 가시처럼 불편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연기설을 사실처럼 여기고 받아드리는 듯 했다. 그러나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 너머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생각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영화 드레스메이커 - 홍보용 포스터

"집단의 폐쇄성과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병이 되었다. 은퇴한 노부부가 시골로 귀농했을 때, 새로운 이웃이 이사 왔을 때, 전학생이 처음 등교한 날, 경력직이 새로 이직했을 때, 모두들 겪게 되는 집단 히스테리이다. 모두가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기 싫어하고, 동조하지 않으면 본인이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작전상 "협조"라는 불의에 동참하고 만다. 개인의 도덕과 양심은 기득권의 권력에 무너지고 결국 "안전한" 가해자의 범주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마는 것이다."
 - 브런치 심리학으로 영화 읽는 이야기 #13 - 드레스 메이커 / 고요 著-


 

언젠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갈증을 느껴 차 준비실에 갔었다. 그곳에는 여대리가 있었고, 그녀의 팀장이 있었다. 나는 그녀와 간단한 대화를 하려는 때에 그녀의 팀장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여대리. 오늘 어디 나가요? 그렇게 쩍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었어요?"

그녀의 팀장은 킥킥거리며 준비실을 빠져나갔다. 여대리는 빨간 오피스룩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새빨간 원색의 옷이 아니었고, 체형이 도드라지는 옷도 아니었다. 그는 무릎 위에 가지런히 정렬된 그녀의 치마 선을 보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딸을 키우는 그는 자신의 딸만큼이나 남의 딸도 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녀의 딸이 여대리만큼 성장해서 그가 내뱉은 말을 고스란히 듣게 된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그런 상상만 할 뿐이지 그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팀장의 괴롭힘과 부서 사람들의 무시와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팀장은 그녀한테는 가장 악마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참고 또 참는 것이었다. 이런 병적인 상황이 언젠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EBS 다큐멘터리 - 인간의 두 얼굴 (사진 출처-EBS 홈페이지)


 여대리가 화장실에서 쓰러지기 전에 그녀는 내게 온라인 메신저로 자신이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임원과 팀장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팀장은 업무를 지시만 하고 감독을 해주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렸다고 했다. 그로 인해 경위서를 썼으며 감봉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정기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갑상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그녀는 즉시 수술 날짜를 잡고 장기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회사와 팀장에게 장기 질병 휴가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그 요청이 받아들여졌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치료 도중에 사정이 많이 바뀐 듯했다. 그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날 인사팀과 면담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면담하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거였다. 결국, 그녀는 몇 개월 후 퇴사처리가 되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지 1년이 안 되어서 다시 회사에 그녀의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회사를 상대로 하여 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내었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본인은 원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손에 방망이를 쥐어주고 친구 둘이 누군가를 구타하며 자기에게도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같이 하자라고 하면 집단 압력으로 인해 하게 되는 것입니다. 3명이 모이면 그때부터 집단이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그것이 이제 사회적 규범 또는 법칙이 되고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스탠퍼드 심리학과 짐바르도 교수/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 중에서 -


"결코 밖에서 봤을 때는 '나라면 안 그럴 텐데'라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게 제일 위험한 거죠. 그 상황의 힘이 가장 무서움이거든요."
-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 중에서 -



 3월의 그날 여대리는 내게 어떠한 해결책이나 직접적인 조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부당함을 들어줄 사람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에 건성으로 들었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녀의 불행이 나에게 불똥을 튀는 것을 염려하여 나는 뒷걸음을 쳤다. 그녀가 회사를 떠난 지 2년이 못되어서 나도 퇴사를 했다. 퇴사하면서 그녀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연락처를 수소문했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연락처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알 듯한 사람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하며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거절할 수 없는 무리한 부탁을 할까봐 마음을 졸이며 당신의 목소리를 흘려버렸다고. 나도 조직에서 개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상황이라는 힘에 굴복당하고 마는 그저 그런 사람들 중이 한명이었다고. 적어도 당신에게 솔직하게 도울 수 없음을 인정했어야 했다고. 당신의 처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정말 미안했어요.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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