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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n 14. 2024

남자 만나기로 해놓고 다른 남자 생각에 빠져도, 돼!

(4) 뭐, 어차피 그렇게 여러 명과 사랑 연습하라고 만들어진 프로젝트니

[그러실 것 같더라고요! 화님, 말투 뭔가 엄청 우아하신 듯. 빨리 사진도 보고 싶어요.]
[통화도요! 잠깐 시간 되세요? 지금 통화해도 돼요?]

…이렇게 빨리? 갑자기? 물음표가 난무한 무화였지만, 어쨌거나 저도 궁금하긴 했으니 지금 말고 퇴근 후에 전화는 괜찮다는 답장을 건넸다. 그리고 금방 다가온 통화 시간. 목소리를 가다듬고 섭이라는 남자가 어플을 통해 걸려온 목소리를 듣는다. 섭의 연락은 여전히 꾸준했고, 그런 섭을 무화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될 무렵, 서로의 사진 공개 요청을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꽤 준수하고 멀쩡한 놈이었잖아? 이런 애가 왜 나한테 좋다고 한담? 아, 얘 내 얼굴 이제 알았지. 그럼 이제 연락 내용도 달라지려나. 무화의 머릿속은 빠른 얼굴 평가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섭은 어떤 결정을 했냐면,


[화님, 진짜 예쁘세요. 목소리도 완전 예쁘시다. 완전 제 이상형이세요. 목소리 예쁜 여자.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 다른 사진도 보고 싶다. 화님 실제로 빨리 보고 싶어요.]


현실감 없이 다가온 급작스러운 플러팅은 연애를 꽤 오래 쉰 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무화의 몸이 뚝딱이며 고장날까. 부담스러워할까. 그저 좋아할까. 불쾌해할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자신이 참으로, 참으로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이렇지. 나 뭐 문제 생겼나보다.

꽤나 잘생기고 멀쩡한 놈이 내가 좋다는데 뭐가 문제야 지무화.


초심자의 행운 아닐까. 동료 말대로 어플을 불순한 의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자신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오면서 심지어 저를 좋게 보는 남자를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걱정과는 별개로 무화의 심장은, 짝사랑을 당하는 그녀는 무덤덤. 그저 무덤덤의 극치였다. 


아, 섭 말고 그 사람은 좀 다른 감상인데. 

그로부터 4일 뒤, 그녀는 여전히 섭에게'는’ 감흥이 없다. 퇴근 후 다다른 곳은 서울 한 대학교 앞의 큰 카페. 무화가 섭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약속 시간이 뜨길래, 조금 일찍 도착해 있습니다. 오시면 연락 주세요.]



섭이 당연히 만남 요청을 보내왔다. 무화의 화면에 뜬 네 글자는 그녀를 몇 분간 멍하게 했지만, ‘하라 마라 고민할 땐 하라'라는 말이 전해지기까지 많은 인류의 개박살 경험담이 있었겠지- 라는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결과는 수락. 평소 출퇴근 복장인 후드티와 헐렁거리는 바지 대신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보트넥 니트를 입은 무화가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어려운 흑임자 라떼를 시키지 않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아르바이트생이 커피 머신을 매만지고, 커피 대신 먼저 추출된 것은 그와의 대화. 하일. 그녀가 짝사랑해야 할 남자의 목소리.

[앗, 뜨거워.]

머그잔을 쉽사리 덥썩 잡아버린 게 잘못인가보다. 저도 모르게 입술에 왼 손을 가져다 대고 후- 불어본다. 누군가와 연을 맺는 것도 그렇다.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가, 생각보다 아찔한 온도에 뒷걸음질치고서 후회하지. 지금의 무화처럼.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4시간 전. 어제.


[옛날 팝송, 좋아합니까?]


안녕하세요를 보냈는데, 이게 웬 대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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