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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y 31. 2024

적극적인 첫 매칭남, 결혼까지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워

(3) 짝사랑 프로젝트, 뭘 그렇게 진심일 필요 있냐고!

첫 매칭. 


“안녕하세요. 화님. 저는 섭입니다. ”


링크를 타고 들어가 설치한 어플. 그 어플 속 채팅창에 뜬 사람 목록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무화가 사랑해줘야 할 남자, 다른 한 명은 무화를 사랑해야 할 남자. 정확히 진짜 사랑하라는 건 아니고, 연습. 드라마 속에 들어온 주연 배우 같네- 갑자기 시작된 신기한 인연에 놀라기도 잠시, 무화는 그 중 제게 먼저 연락이 온 사람에게 답장을 보냈다. 


[네, 안녕하세요. 좀 처음이라 낯설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소개팅이랑 다른 점이 뭘까. 무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곧 금방 알게 됐다. 만날 걱정이 없다는 것, 그래서 공기처럼 가벼운 책임감. 상대방 얼굴을 전혀 모른다는 것은 신선했다. 덕분에 사람에게 편견이 없어졌으니까. 하지만 대신 기대도 없다. 무화는 제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생김새와 그에 풍겨나오는 분위기 따위에 크게 휘둘린다는 걸 알게 됐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대? 귀찮다. 진짜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열렬한 놈일세.’


무화가 병원에 출근하여 정신 없이 차팅을 보는 동안, 섭이라는 이 남자는 무려 8개의 연락을 해왔다. 제가 알기로 하루에 연락은 4번이면 충분하다 했는데- 이 사람은 최소 연락만 채우고 마는 부류는 아닌가보다. 연락은 참으로 단순했다. 자기는 출근하는데 여기 풍경이 어떻다, 아침은 먹었냐, 자기 아침은 이렇다, 자기는 짝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연락이 안 와도 괜찮다는 너스레까지 중간에 끼어있었고 마지막으로는 바쁘신가 보다며 자신도 점심 시간 이후부터는 열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남겨놓았다. 다만, 귀찮긴 하면서도 편했다. 자신은 최소 하루 연락인 4번만 채울 요량이었다. 그리고 짝사랑당하는 입장이니 좀 연락같은 것 대답 않아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핸드폰을 쥐고 ‘일을 하느라 이제 봤네요. 일 화이팅하세요!’하고 간단히 답장을 보낸다. 그런 무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가 있었으니,


[쌤. 남자친구 생겼어요? 원래 일할 때 핸드폰 잘 안 보잖아요. 자꾸 핸드폰 화면도 깜빡거리고, 수상해.]

무화와 두 살 차이나는 같은 실 간호사, 유라 되시겠다.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부끄럽지만 화면을 내밀었다. 나 요새 이런 것을 신청했다며. 이게 뭐냐고 무화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는 묻는다.


[아, 이거! 그거 맞죠? 요새 엄청 광고 뜨는거! 선생님, 재테크에 관심있구나?]


-뭐라고 하셨어요?


[이거 그거잖아요, 여기서 만난거 인증 몇 번 하면 연말정산 할 때 1프로 감면혜택 주는 거. 지속적으로 인증하면 5프로까지 뛰던데요? 그래서 요새 사람들 일부러 적당히 속이잖아요. 감면혜택 받으려고. 선생님도 그런 거 아니에요?]


아. 무화의 뒷통수에 띵하니 내리쳤다 사라진 것은 ‘수치심’이었다. 자신처럼 순수하고 해맑게 이 사업을 참여하고 있는 줄 알았다. 짝사랑이라는 멜랑꼴리한 단어에 꽂혀 제 진짜 짝사랑을 잊고자했던 그녀의 마음은, 정부의 참여 유도 홍보 전략에 매도당했다. 아, 예, 맞아요, 쌤도 하세요 꽤 괜찮아요- 라는 말을 겉으로나마 티 안나게 던질 수 있는 무화는 올해로 7년째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혈관조형실이라는 꽤 특이한 부서의 일원이기도 하다. 왠지모르게 텁텁해지는 입 안을 헹구러 잠시 정수기에 물을 뜨겠다고 그녀가 텀블러를 들고 방을 나선다. 자신이 짝사랑해야하는 남자에게 어떻게 다정하지만- 산뜻하게 인사를 건넬까 하고 고민하던 제가 부끄러워졌다. 그리하여 무화는 텀블러에 담겨지는 냉수마냥, 빠르게 목적량을 채우겠다는 심산으로 드디어 연락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섭이라는 남자의 연락에 가벼이 답장을 한다. 바빠서 죄송하다며, 이제 연락할 수 있다고. 저는 지금 잠시 쉬고 있는데, 섭님은 어떻냐고. 그랬더니 1분 만에 사라지는 읽음 표시, 그리고 다음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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