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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북스테이, 고양이와 책방간의 쌍무계약관계서!

가족은 싫지만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어 - (3) 이천 오월의 푸른 하늘

by 라화랑
'먀아아아옹'

고양이었다.


북스테이는 고양이를 키우는 게 의무인가, 나만 모르는 그들만의 어두운 세계에서 고양이가 뜻하는 숨겨진 메세지가 있는건가.


세 번째 북스테이 서점에서 보는 세 번째 고양이다. 아니면 북스테이를 진행하는 독립 서점의 사장님들이 비슷한 성향인가- 머릿속으로 상상 소개팅을 주선해보면 그건 또 파토란 말이지.



고양이와 책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자유롭게 제 시간에 몰두하다가 곁이 필요한 순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한다. 고양이는 사람이 필요할 때 다가와 얼마간의 재롱을 떨다 제 시간이 차면 어딘가로 사라진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책에 빠져있다가 문득 외로워져서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들 때, 고양이를 눈으로 좇는다. 시선은 고양이지만 생각은 다른 세계에 오도카니 건너가 있을 때도 많다. 그 때마다 네 할 일 끝나면 돌아와서 나 물 좀 내놓아라-하고 몸을 부빗거리는 고양이가 책에 파묻힘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필요하겠거니, 짐작한다. 강아지였다면, 읽고 싶은 책을 물어뜯거나 산책을 가야 하는 시간에 방해받는 독서 집중력을 견디기 어려웠을 터이다.


이번 고양이는, 홀애비 냄새가 퐁퐁 풍기는군. 아마도 본격적으로 책방에서 기르는 아이는 아닌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꼬질꼬질한 아저씨 냄새가 날 수 없다. 장독대 뒤에서 날 얼마간 지켜보던 고양이는 내가 본관으로 들어서자 함께 들어온다. 오른쪽 다리 하나를 절뚝거리며 내가 앉는 곳 옆에 벌러덩 눕는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넌 어디서 이런 슬픔을 달고 여기까지 흘러왔니. 인간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뭐든지간에, 내가 미안하다. 망연히 트럭 하나가 생각난다. 고양이의 보은 첫 장면도 떠오른다. 휘휘 고개를 저으며 고롱고롱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만져주었다.

사람의 손길이 만족스럽던 고양이가 잠들고, 나는 제대로 본관을 구경한다.


카운터에 앉은 사장님은 내가 오던 말던 신경쓰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림책 공간이 있다. 널찍한 책상과 의자는 족히 8명은 앉을 수 있다. 아마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함께 일렬로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겠지. 색칠공부도, 독서 모임도 할 수 있는 큰 책상이다. 시선을 돌리면 무수히 많은 책들이 한옥에 가득히 담겨있다. 모든 나무 책장과 책상이 자연스럽다. 무엇 하나 억지로 만든 티가 나지 않는다. 길고 좁은 책상과 두 명분의 의자가 놓여있고, 앞에 많은 책들이 또 쌓여 있어 앞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 카운터 쪽으로는 작은 정원이 사진처럼 창문 안에 담기는, 빨간 머리 앤 책들이 예쁘게 누워있는 1인용 책상도 있다. 카운터 뒷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민음사의 세계고전시리즈가 얼마간 자리잡았다.


책 하나 하나에 사장님이 직접 그린 그림과 간단한 감상평이 적혀져있다. 귀여운 마음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따뜻하다.


같은 글을 읽고도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당연하다.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감상을 먼저 읽고 난 뒤 이야기를 접하면, 두 번 보면서 첫 번째에 놀랐던 장면을 콕 집어 찾아내고 그 때의 마음과 비교하는 n회차 관람자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사람이 어떤 지점에서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이야기의 미로에서 찾아내는 재미가 마리오 게임 물음표 박스를 찾아 보너스 코인을 받는 기분이기도 하다.

나의 일박 이일동안의 자리는, 여기다.


사장님도 안 보이고, 나도 사방으로 막혀있고, 혹시 누가 입장해도 눈이 마주치지 않을 책상! 앞과 뒤가 책으로 막힌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끝내준다. 읽지도 않은 책인데 괜히 세상사를 통달한 신선같다.

역시 독서는 자리빨, 인생은 장비빨! 도서관에 없을 새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 9시가 되었으니 마피아는 고개를 드세요.


또잉, 진짜 밤 9시다. 언제부터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만 마피아가 일어나서 책방 문을 닫을 시간이다. 부리나케 일어나 오늘 자야 할 곳으로 향했다. 밤에 읽을 소설책 몇 권을 욕심내서 더 집었다. 사장님은 내가 일어나자마자 문단속을 시작하였다.


"이제 들어가시게요? 좋은 밤 되세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친절한 밤이다.


들어가서 핸드폰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가까운 편의점에서 소세지와 하이볼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홀짝거리며 밤길을 혼자 걸었다. 상쾌하다. 밤과 독서와 음주와, 이제 더욱이 혼자일 시간을 위해 나는 저 멀리서 왔다.


어디서 왔냐고? 10년 후 미래에서.
이 세계에 미련 없는 척 하고 떠날 궁리 하지 말고
‘STAY’ 하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40살의 나에게서 온 거야.


상상만 해도 아득한 더 늙고 아무것도 아닐 내가 'STAY’,그래도 이 세상에 'BOOK’이라도 부여잡고 살아남아 달라고 'BOOKSTAY’라는 계시를 보낸 건 아닐까. 들이켠 하이볼이 눈물 짓게 한다.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날 정도가 아니다. 나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흥미로워 보이는 3권의 책이 더 있다.


이걸 다 읽기 전에는 살아야지.

그만 둬선 안 돼, 억울할거야.


그날 밤, 꽤 늦게 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세 권 중 한 권은 다 읽었지만 나머지 두 권은 읽지 못했다. 지금 내 옆에 얌전히 누워있기도 하다. 돌아오자마자 도서관에서 상호 대차를 신청해 빌려놓았다. 아이 뿌듯하고 부지런하기도 하지.



쟨 날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꼭 저기 있어야겠냐고.


[먀아아아아아옹]


일어나서 씻고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 왔더니 어느새 고양이가 내 한옥 앞마당에 드러누워 있다. 다른 손님들 한옥도 많은데, 굳이 나랑 눈 마주치고 밥 달라고 울 일이야? 참 내, 귀여워 죽겠네. 어린 아이들이나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비상 알람벨 생체리듬 시스템이다. 어른이 되면서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며 다들 자신의 구린내를 석석 숨겨대지만, 애정은 어디서든 숨길 수가 없나 보다.


-미안하지만 내가 너한테 밥을 못 줘, 근데도 여기 있을거야?


[먀아아아]


아이 정말 안 된다니까. 나 사장님한테 혼나.

나 너가 봐서 안되겠어. 춥기도 하니 나 들어갈래. 그래도 거기 계속 있을거야?


책방 고양이는 책을 많이 즈려밟고 다녔을테니까 글자 따위 우습게 떼지 않았을까. 대화를 시도하는 내 입도 어이가 없다. 하긴, 무슨 뜻인지 대충은 알 것이다. 나도 쟤가 하는 말이라고는 먀아아옹이라고 쓸 수밖에 없지만 속 이야기는 들린다. '밥 내놔, 인간!' 이 틀림없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다른 손님들이 사라졌다. 이대로 떠나기에 아쉽다. 나는 고작 스물 네 시간도 채우지 못했는데 미련 없이 떠나는 다른 손님들이 오히려 신기하다. 나보다 더 늦게 오셨던데 말이지. 이 책방에서 다른 손님들은 어떤 기대를 안고 왔을까. 어떤 결과를 안고 떠나는 걸까. 내 기대는 주말동안 완벽한 도시 탈출과 다음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었다. 잠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밀린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도 미리 할 수 있을 테고, 그래도 시간이 오후라면 아울렛에 들러 망가진 가방 수선을 맡길 수도 있을 테지….


가기 싫다. 난 아직이다. 멀었다고!



저어기, 사장님. 저 괜찮으시다면 일단 체크아웃은 할 건데요.
안된다면 안된다고 제발 편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괜찮다면 하루 이용료를 더 내고 이 공간에 더 있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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