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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ul 05. 2024

누추한 이 정부 사랑 프로젝트에 이렇게 멋진 매물이?!

남아있나 했다, 잘생기고 키크고 돈많고 여유로운 남자가 왜 날?

’어우, 이런 누추한 곳에 이렇게 귀한 남자가. 앗싸 땡잡았다‘.

요새 애들이 모르는 말로 무화가 기쁜 마음을 일기장에 쓴다. 어차피 자신만 볼 테니, 내가 옛날 유행어를 쓰던, 뭘 쓰던 무슨 상관이람. 헐, 즐, 앗싸같은 말이 사실 입에 착착 붙는 서른 한 살 여자는 근 4일간 채팅과 전화, 사진 교환까지 척척 순서대로 진행했고 그 결과, 이 남자는 이게 웬 떡이냐 싶을 만큼 모난 점 없는 고스펙 예의남이었다. 얼굴도 포함해서. 서른 넷, 감정평가사, 채팅 끝마다 점을 붙이면서 한 번도 틀리지 않는 맞춤법. 게다가 한 번이지만 전화 통화에서 그의 목소리는 마치 성우같았다. 한 마디로 남자 주인공이 나타난 기분이다.



 무화가 기분 좋음을 대놓고 티내고 다녀, 병원에서는 주식이라도 올랐나 혹은 혹시 로또가 당첨된 건 아니냐는 웃긴 소문까지 나돌았다. 무화의 귀에도 당연 유라를 통해 들어왔지만, 은근히 무슨 좋은 일이 있냐며 떠보는 유라에게 섣불리 말하지는 않고 그저 웃었다. 아직 남자친구나 어떠한 관계는 아니니까. 실제로 만나본 뒤에, 그리고도 좋은 남자면 그 때에는, 정부에 절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무화였다.


 


[무화씨 병원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저녁 7시에 뵙는 건 어떨까요. 제가 퇴근하고 무화씨도 퇴근하면 그 정도 시간 괜찮을 것 같던데. 혹시 불편하시면, 다음에 뵈어도 괜찮습니다.]


 


만나지 않았는데도 현의 목소리가 무화의 귓가에 감미롭게 감기는 것만 같다. 만남 요청 버튼이 제 화면에 반짝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저도 몰래 놀라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깨물린 입술 사이로 피 맛이 난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쓸 때가 아니다.


“어우, 무슨 그런 소리를. 좋아요. 만나요! 당장! 사실 지금 빨리 보고 싶어요!”



집에서 혼잣말을 읊조리며 무화의 손가락이 yes 신호를 눌렀고, 오늘이 그 날이다. 장현. 서장현을 보기로 한 날.


이름마저 어쩜 세련됐냐, 제 이름이 특이해 늘 불만이던 무화가 퇴근 후 탈의실에서 20분간 공들여 화장을 한다. 사실 출근할 때에는 화장이 무엇이냐, 썬크림이나 바르면 다행인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의 남자친구가 될 수도 있는 멋진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오랜만에 아이라이너도 길게 뺐다. 마스카라도 촘촘히 칠하고, 귀찮은 뷰러까지 야무지게 잘 집었다. 필승옷으로 검은색 나시 원피스와 하늘거리는 리본이 달린 하얀 가디건도 무화와 함께 이 사랑 전투에 함께할 것이다.


그녀는 장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진과 똑같이 진한 눈매와 강직하게 솟은 코, 시원스러운 입과 포마드 머리가 잘 어울리는 장현은 주변 사람들에게 없는 여유로움이 보였다.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저 자세. 무화가 자리에 앉으며 장현에게 인사를 한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죄송해요. 업무 마무리를 좀 하느라고.”


“괜찮습니다. 오히려 바쁘실텐데 제가 시간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와, 플러스 20점 추가. 매너 넘치는 그와 무화는 각각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리고 와인 한 잔도 곁들였다. 병원과 가깝지만 가격이 비싸 선뜻 가지 못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수트를 입은 잘생긴 남자와 어떤 노래를 좋아하니, 혹은 어떤 영화를 최근에 봤니 묻고 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무화. 무화는 오버할 것 같은 자신을 애써 눌러가며 꽤나 많은 공통점에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중이었다. 한 개씩 공통점을 쌓아갈수록, 그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기분. 연애를 할 때 전화 통화가 좋은지, 메시지가 좋은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이성의 행동이 있는지 같은 것들.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둘은 각자 와인 세 잔씩을 마셨다. 무화가 문득 운전이 걱정되어 묻는다.


 


“장현님. 차 가지고 오신 것 아니에요? 대리 부르시게요?”


 


그랬더니 장현이 아, 깜빡한 물건이 있다는 듯 평안히 하는 말. 무화는 경악했다.


“아니요. 자고 가려고요. 무화씨, 한 잔 더 하시죠.”


“,,,예? 한 잔 더 하자고요? 어디서 주무시게요? 아니에요, 저 때문에 괜히...”


“아, 저희 다른 것도 맞춰봐야죠. 그게 다음 아닌가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무화가 다시 한 번 무슨 뜻이냐 되묻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연애 하려면 속궁합 중요하잖아요. 저희 지금까지 연애할 수 있는지 서로 맞춰본 것 아니었나요? 여기까지 잘 맞았으면 속궁합도 잘 맞는지, 한 번 같이 자볼 시간이지 않나요?”


 


오히려 네가 이상한 것 아니냐며 자연스럽게 말해서 무화는 대한민국 연애 상식이 자신 몰래 바뀐 건가 헷갈릴 뻔 했다. 무화는 어이가 없었다. 좋은 매물이라고 부동산에서 광고를 때려놓고, 사실은 철근이 누락된 신축 아파트를 소개시켜 준 기분이랄까. 겉만 번지르르한.


 


“지무화, 니가 그럼 그렇지.” 그녀가 속마음을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장현이 달래듯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화에게 다가온다.


“네? 무화씨, 요새 사람 아닌가? 외국에서는 다 그렇게 하거든요. 글로벌한 시대에 우리, 글로벌 스탠다드로 사는 건 어때요?”


 


글로벌 스탠다드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아니, 서있네. 자연스럽게 무화의 어깨를 감싸려는 남자의 팔이 스르륵 떨어진다. 오른손으로 그녀가 쳐냈기 때문이다. 눈썹을 찡긋-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장현을 두고 무화가 이번에는 애꿎은 제 가방 지퍼에 신경질을 부린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안 열려. 짜증나게스리.


 


장현이 잘 생각해보라며 화장실에 간 사이 그녀는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상대 교환 요청‘을 누른다. 교환 사유의 기타란에 ’속궁합 중요하다고 자보자는데, 성희롱 아닙니까? 정부는 무슨 관리를 이렇게 대충 한답니까?‘라고 써서 제출했다. 곧이어 장현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리고, 무화가 자신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그녀는 떠난 후다. 그리고 곧이어 울리는 두 알람.


 


[건의 사항이 접수되었습니다. 건의 사항은 3-5일 이내에 답변 될 수 있으며, 필요하신 경우 해당 부서로 연락 주시면 친절하게 응대하겠습니다. 000-0000-0000]


접수 알람. 그리고 또 하나는 건의 사항 접수 진동보다 더 기다렸던 알람.


[ 드디어 내일이네요. 사실 어제부터 잠을 설쳤습니다. 반짝이는 우리의 대화들이 퇴색되진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용기를 내게 해 준 여자가 처음이니까. 그러니 오늘의 마음에 흘러가는 물이 되보렵니다.]


말도 어쩜 시인처럼 청산유수다. 제 연약함을 있는대로 드러내는 하일의 메시지에 무화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답장한다.


 


[저는 푹 잘 거예요. 피부 좋아보이게. 하일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요. 내일 카페에서 꼭 뵙는 거예요? 도망치면 안 돼요!]


귀여운 잔소리로 보이려나, 무화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하일이 알겠다고 답장을 곧바로 해온다. 아, 역시 이 사람이 내 사람이려나. 나를 필요로 하는 남자 곁이라면, 나는 가치있는 좋은 여자로 살 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채워주는 연애가 자신에게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차 드는 무화였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무화의 이번 짜증 상대는,




“아, 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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