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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북스테이와 우울증은 여전히 케이블카안이라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지친 우울증의 눈물 - (4) 목포

by 라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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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무라카미 하루키



비슷한 말을 9월의 화랑이가 5월의 화랑이에게 건내며 이야기를 잇는다.

나를 사랑하고 싶거든, 주변에서 사랑할 사람을 찾아 보기를.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는, 다른 이들의 얄팍한 사랑이나마 찾아 불나방처럼 달려들기를.


*여기서부터 새로이 기워지는 알록달록한 기억의 바느질에는, 9월의 화랑이가 5월의 화랑이에게 전지적 독자시점을 선물합니다.



이어폰을 끼고 황급히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화랑은 이내 입구칸에 서 있는 수많은 줄을 마주하고 아연실색한다. 이럴거면 뭣하러 순서대로 티켓을 발부했는가- 좀 더 편하게 대기장소에서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적어도 어묵이 무슨 맛인지 제대로 음미하며 바깥 창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에 괜히 삐딱하게 줄을 선다. 가만히 혼자 서 있으려니 이유 없는 답답함을 느껴 화랑은 가방 안에 있는 1Q84를 든다. 누군가 책을 보고 자신을 평가할세라 일주일 전에 구매한 가죽 책표지를 조심히 펴 들고 애써 주변의 소음을 무시한다.


"...아니 이 아가씨가…"


"아니라니까! 그러면 우리가 먼저…"


"아니 근데 이 아가씨를 앞에…"


얼마나 줄을 서 있었을까. 노이즈 캔슬링으로도 막을 수 없는 단체 손님들의 이야기 주제가 본인인 것만 같은 기시감에 책에서 눈을 뗀다.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 아줌마들이 잘됐다는 듯- 하지만 무안하다는 듯 알 수 없는 헛헛한 표정으로 화랑을 쳐다본다. 아- 안되겠다. 에어팟 빼야지. 대체 무슨 일로 가만히 서 있는 여자를 자기들끼리 입에 올리고 있는거야? 고까워진 마음에 화랑은 부러 손을 쭉 뻗어 할 수 있는 센 힘으로 에어팟 뚜껑을 소리나게 닫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아 이 사람들아- 뭐가 문제냐고.


"무슨 일 있으세요?"


결국 불편한 마음에 먼저 말을 건 것은, 화랑이다.


"아니이, 우리가 단체라서- 아가씨가 여기에 서 있으니까아 아가씨가아-"


"아니지 아니지! 아가씨를 앞으로 보내야지!"


여기저기서 처음으로 말을 건넨 아줌마의 말을 허공으로 휘날리듯, 엑스자를 크게 그리고 화랑을 향해 허허 웃는다. 그리고는 화랑에게 앞서 먼저 가시라며 두 손으로 공손히 갈 길을 안내한다. 뭐, 먼저 가라니까 나야 좋지- 고개를 까딱하여 무언의 감사 인사를 건넨 화랑이 미처 표정을 풀지 못한 채로 앞선다. 덕분에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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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빼고 다 커플이야.


화랑이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으로 맞이한 시야는, 드넓은 바다 풍경도 아니고 높은 하늘도 아닌 쌍쌍이 꼭 붙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커플의 모습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단순히 연인이 없어서 나오는 얄팍한 연애감정으로서의 한숨이 아니다.

이 좁은 세상에서까지도 나는 혼자구나- 이게 내가 겪어야 하는 현실이구나-


한 평조차 되지 않는 멀고 먼 목포 케이블카에서조차 나는 철저히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자조감이 섞인 깊은 외로움이 만들어낸 숨결이었다.

억지로 동영상을 찍는 척 하며 케이블카의 긴 시간을 견뎠다. 원체 자연환경에 아름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화랑이 유일하게 오- 했던 순간은, 유리 바닥에 비친 초록빛 바다가 끊임없이 반짝이며 일렁일 때였다. 바다가, 파란색이 아니다. 바다가, 초록색일 수가 있다. 바다가, 은색일 수도 있다. 생각하고 배웠던 머릿속의 바다에게 미안해질 지경으로 화랑 발 밑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반짝이는 눈물들이 모여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랑에게 묻는 듯 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너는, 나만큼 아름답니?" 라고.


그리고 화랑은 답한다.

"아니. 내 마음은 검은빛이야. 나는 그래서 너처럼 빛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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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임을 자랑하듯, 꽤 길었던 탑승 시간을 뒤로한 채 화랑이 드디어 내렸다. 내리자마자 맞이하는 150세 힐링건강계단에 두 눈을 꼭 감고 잠시 답답했던 숨을 몰아 쉰다.


드디어, 나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넓은 공간에 왔다.
그러니 이제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자유를 느끼는 화랑은 단숨에 계단들을 폴짝 뛰어 자신의 나이 계단까지 질주했다. 그리고는 가만히 운동화 옆에 놓여진 자신의 나이를 보았다.


스물 여덟. 나는 이만큼까지 달려왔구나.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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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놓여진 계단을 올려다본다. 뒤돌아본 계단의 몇 배는 많다. 신나는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재생시킨다.


자, 이제 여기서부터 새로 걷는다고 생각해 보자. 화랑이 한 계단, 한 계단 힘주어 걷는다. 올라갈수록 숨이 가빠온다. 벅차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주변 사람들은 동행인을 걱정하느라- 혹은 잔소리하느라 잠시 멈추거나 아예 옆으로 빠져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화랑은 쉬지 않고 계속 꾹꾹 계단을 누르며 걷는다. 힘들어도 상관없어, 이 계단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화랑의 바람은 딱 한 가지였다.


150, 성공!


화랑이 150번째 계단에 서서 허리를 굽힌다. 다리를 두 손으로 짚으니 지금까지 올라왔던 계단이 거꾸로 보인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이렇게 거꾸로 삶을 되돌아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같이 다 부질없다- 여기나 집 앞 산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할까, 아니면


혹시, 150세까지 내가 스스로를 견딜 수나 있을까.


힐링건강계단의 다른 이름은, 힐링자격고사임을 화랑이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기까지 계단을 완주한 당신,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군요? 힐링이건 나발이건 스물 여덟에 계단 오르기를 멈춘 당신, 더 이상 앞으로 올라갈 힘을 잃었으므로 힐링 자격을 박탈합니다. 땡!


아무도 없으니 고개를 살살 내젓는다. 뭉게뭉게 이상한 상상력이 더해질 때 애니메이션에서 배운 버릇이다. 부정적인 생각아, 흩어져라- 사라져라- 내게서 없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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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방의 사진을 팡팡 찍고 주변을 둘러본 뒤 미련 없이 금방 되돌아오는 케이블카 줄에 섰다.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화랑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주말이 끝나고 회사 사람들이 여수에 가서 뭐 했냐고 물어봤을 때

"죽을 생각 했어요."

라고 답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연막술.


그러니, 좋은 포장지는 이미 구매 완료다. 이번 화랑의 케이블카 동지는 유치원생 두 딸이 있는 가족과 한 커플이다. 큰 돌산을 보고


"우와, 엄마 저것 봐! 아빠 닮았어!"


하며 농담을 하는 두 딸을 아빠가 웃으며


"이 녀석, 아빠는 잘생겼지-"


하며 너스레를 떨고 그런 두 딸과 아빠를 엄마가 웃으며 바라본다. 커플은 빙그레 웃으며


"아이가 참 귀여워요. 몇 살인가요?"


하고 먼저 말을 붙인다. 사랑스러워- 괜스레 마음이 채워진다. 그 때였다. 아이가 몇 살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대답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아저씨가 화랑에게도 질문을 건넨다.


"저기 혼자 오셨나 봐요? 와 정말 부러워요. 저도 어렸을 때에는 혼자 여행 많이 다녔는데! 혼자 여행을 여기까지 다니시다니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여수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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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얼버무리면서 필요한 말만 한다. 그리고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화랑의 소심한 태도와 떨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원체 조용한 성격이거니- 생각하여 곧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런 화랑은 그들을 외면하고 케이블 카 창 밖을 멀거니 쳐다본다. 아이는 또다시 아빠와 엄마에게 이것 저것 보라며 손을 끌고, 커플은 자기들끼리 미래에 집을 지으면 저 밑처럼 단독주택이 좋을지- 저 멀리서 보이는 아파트가 좋을지 손을 꼭 잡으며 서로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화랑은 입술을 꾹 깨물고

울렁울렁 차오르는 눈물을 소리 없이 삼킨다.


왜 우는거야, 대체 왜.
네게 준 다정한 한 마디가 그렇게도 네가 바라던 마음이었니.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의 스몰 토크에 무너져내린거니.



스스로를 책망하며 여기까지 와서 외로움에 상처입은 모습을 보기가 싫은 듯 가슴을 통통 친다.


제발, 소화돼라. 이 이유없이 자꾸만 떨어지는 눈물의 감정이 뭐건 간에 빨리.

저들이 알아채기 전에 빨리 소화돼서 사라져버려.


촉촉해진 두 눈을 숨긴 채 누구보다 빠르게 화랑이 케이블카 출구를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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