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게 어려운 우울증의 외로움 - (5) 목포
당신은 죽는 것이 두려운가요?
딱히 두렵지는 않아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케이블카에서 나오고 뒤숭숭한 마음 달랠 길이 없어 다음 목적지까지 하릴없이 걸었다. 북스테이를 함께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다. 여기도 예약할까 하다가, 혼자서 묵을 경우 독채를 빌려야 해 가격부담이 되어 패스했던 곳이다. 몰랐는데, 네이버 지도를 켜보니 이 주변이 거기더라. 죽자고 북스테이만 좇느라, 그 집이 어디께인지도 모르는 나를 어쩌면 좋아- 화랑이 자신의 머리를 콩 찧으며 요리조리 핸드폰을 돌려 서점을 찾는다.
여전히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차조차 없다. 30분 정도를 걸었으려나, 골목길에 들어서자 드디어 웬 할머니 한 분이 자신의 집 안으로 휭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목포 시민들은, 오늘 다들 집에 있기로 결심한건가, 이상하다. 특히 화랑 나이대의 젊은 또래가 없는 것에 '이 말로만 듣던 상경 현상인가-' 넘기고 말았다.
독립서점 안은 깔끔했고, 서울에서 보던 다양한 책방과 다르지 않았다. 잘 정돈된 정원이 카페와 겸하는 서점의 성격을 명확히했다. 독자와 손님을 고려한 책방. 그리고 여기도 역시, 고양이가 있다. 이만하면 고양이와 독립책방간의 미스터리 소설 하나 쯤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화랑이 음료를 시킨다. 목포 시내가 보이는 큰 창 가까이의 책상에 조심스레 앉았다. 여기는 왠지, 조용히 해야 할 것만 같아. 이 책방 분위기는 단정이다. 나도 같이 정자세로 앉아 책을 곱씹어 보아야만 할 것 같은- 목요일 오후의 정갈함. 주제별로 촘촘히 정리된 큰 책장과 들어오는 햇살이 바른 마음을 불러일으켰으리라, 화랑은 생각한다.
1Q84를 얼마간 읽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이내 나왔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저마다의 우울함을 품고 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꼭 껴안고 우리 잘 살아내요.
책 급류 한 구절 놓고 갑니다. 추천해요!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는 말이자, 화랑이 스스로에게 가장 간절히 와닿았으면 하는 말.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기를.
슬픔에 중독되어 행복이 낯설다고 내쫓지 않기를.
방명록에 놓고 간 것은, 화랑을 챙기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였을까.
네이버 지도를 다시금 켰다. 주변과는 멀지만 인터넷에서 강력 추천하는 혼술 가능한 이자카야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30분쯤 타고 내렸을까- 화랑의 눈 앞에 어마어마한 또래의 남녀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정확히는 그저 가는 길을 가던 중이거나, 친구를 만나는 중이었겠지만 화랑의 눈에는 화랑을 위한 서프라이즈마냥 갑자기 사람들이 왈칵 눈 앞에 들이닥친 듯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가 있었던거지, 나는 그럼 대체 목포의 어디에 가 있던 걸까. 내가 알던 목포는 길거리에도 사람이 없어 죽은 도시인가 갸웃거리던 동네였는데 말이지. 화랑은 서울 어드메만큼 화려한 밤거리를 걸어 얼떨떨한 마음으로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자리는 곧 꽉 채워졌다. 오뎅탕은 서울보다 맛있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친 소음으로 마음이 불편해진 화랑은 금방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
사람들이 한 곳으로 걷는다. 무언가 시끄러운 노래 소리도 여러 개 겹쳐 들린다. 화랑은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뭔지 알고나 가자는 호기심에 발걸음을 고쳐 걷는다.
그리고 맞이한 새로운 광경-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인산인해의 바닷가. 밤바다를 배경삼아 버스킹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 가수들을 뒤로한 채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가족, 폭죽을 들고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주차된 트럭 문을 활짝 열고 사주나 타로를 보라며 손짓하는 상인들까지. 화랑은 지방에서 처음 상경한 스무살마냥 온 사방에 기운을 뺏기고 말았다. 잔잔한 발라드와 인디 밴드 노래를 주로 부르는 가수 주변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멀찍이 앉았다.
황망해.
황당을 넘어선, 충격은 결국 스스로를 향해 상처를 입혔다.
화랑의 노트에는 그렇게 또 하나의 생채기가 그어졌다.
자신을 책망하는 글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꼴에 여행이라고 즐거울 뻔 했던 모든 여정들.
그런 여정들에서 느낀 외로움.
그런 외로움을 자초한 것은 결국 자신의 취향 때문이었다는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까지.
하지만 그런 독특한 취향을 즐기지도 못하는 외로움에 쌓인 인간. 화랑은 이 모든 문제의 답을 '사랑'이라고 결말짓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로맨틱하게 끝을 내지 않으면- 내가 너무 가엽고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사랑과 연애가 고픈 영혼인 걸로,
깔끔하고 한껏 가볍게 마무리하자.
볼펜을 딸깍 소리나게 정리하며 화랑은 '사랑할 준비가 됐다.'는 문장을 쓰다듬었다.
맞아, 이거야. 딱 이 말이야.
넌 그냥 연애를 오래 안 해서 평범하게 외로운 이십 대 후반인 거야.
더 깊은 감정 같은 건 없는 거야.
[목포여행 이틀차.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어디 있었지, 다들?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피해다녔던 걸까,
아니면 하루키처럼 세상이 나에게서 달아났던 걸까.
남들과 다른가 내가.
그렇게 많이 달랐나.
겹치지 않는 길만큼 그렇게.
만나서 반가운가.
웅성거리는 이 소음이
내가 싫어하던 것 아니었던가.
내가 바랐던 외로움의 거리는
딱 이만큼이었던가.
오늘 이만치 슬프고
사람이 그리워 글썽였던
케이블카 안의 온기만큼만
알았다.
나는 이제 조금이나마
사랑할 준비가 됐다.]
그리고 그런 알량한 속임수를 위안 삼아 스스로 넘어갈 수 없는 사람임을, 화랑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다음 날이 되어 KTX를 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다이어리에는 사랑할 준비가 된 스스로를 위해 '사랑'과 관련된 책 독후감이 적히고 있었다. 주로 알랭 드 보통의 책들, 그리고 몇몇 국내의 급류와 비슷한 사랑 이야기들.
그러다가, 세탁기를 부여 잡고 울었다.
그리고는, 회사에 무단 결근 통보를 했다.
그런채로, 서울 호모북커스로 도피했다. 3일동안.
안녕하세요, 일랑이자 라화랑입니다.
목포 편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편은, 서울에 있는 작은 공유서재 겸 북스테이 장소이자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제가 최소한의 힘으로 갈 수 있었던 도피처인 - 서울의 호모북커스라는 장소입니다.
호모북커스에서는 망가지고 부서진 인간의 정신이
어떤 연유로 회복되기 시작하는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어둡고 긴 터널을 함께 지나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괜찮으시다면, 다음 서울 호모북커스 편에서 뵙기를 희망하겠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