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golden, 유광, 사랑이 고파서

(3) 이별이 죽도록 싫은, 사랑 없는 사랑 찬양자 유광의 과거

by 라화랑

3.


유광은 헤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이게 어떻게 해석되냐면, 사귀는 여자들에게는 얼마간 최고의 남자친구라며 추켜세워진다는 뜻이다.


그럴 법도 하지, 유광은 남자 친구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면 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굳이 필요없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가방을 들어주기는 기본이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불가피한 스케줄이 있더라도 무조건 집 앞까지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기에 옵션에 따라 심지어는 여자친구들 자취방 방청소까지 우렁각시처럼 하곤 했다.

그런 유광에게 늘 여자들은 먼저 헤어지자 고했다.



"넌 날 진짜 안 사랑하는 것 같아. 너는 네가 없어. 나를 나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는 여자라 붙잡고 있는 것 같아. 근데- 사랑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난 그렇게 너처럼 감정 없이 다정한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봐."


"오빠는 왜 오빠 생활이 없어? 오빠는 취미도, 혼자서 뭘 하는 방법도 없어? 왜 무조건 다 나한테 맞춰? 심지어 떡볶이 먹을지 라볶이 먹을지도 다 나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 내가 감동이라도 할 줄 알았어? 난 나한테 100% 맞춰주는 사람이 좋긴 하지만, 오빠처럼은 아니었어. 이건 뭔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게 내가 하고 싶은 거고, 네가 먹고 싶은 게 내가 먹고 싶은 거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그대로 다 따라갈게.]


유광이 늘 여자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 무슨 말인가- 먼저 나를 알아봐주고 다가와 준 이성에게 고마움을 담은 노력을 다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인가. 유광은 먼저 다가와놓고 늘 먼저 떠나면서 자신의 탓을 하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억울했지만 이유를 모른채 애원하곤 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사랑해서가 아닌, 혼자 남게 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싫어서. 치가 떨리게 춥고 힘들어서. 그렇게 헤어짐을 고해서 술먹고 울고 하다보면 누군가 금방 유광에게 다가오곤 했다. 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유광 곁에서 머물던 여자 17정도 될 터.


그러다, 어느 날 남자와도 사귀게 되었다.

눈 앞에 주어지는 그 진한 마음의 향에 유달리 약한 유광이 거절하지 않고 남자였던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고리타분한 부모님께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억지로 유광을 방문하게 했다. 카드 정지를 무기로 든 부모님의 말을 유광은 거역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정신건강의학과가 뭐 하는 덴지 순전히 궁금하기도 했고.






의사가 내놓은 유광의 의외의 병명은- 우울증과 불안장애였다.


외로움을 채우는 게 사랑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연애를 하면 자동으로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던 유광은 늘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그렇게 누군가를 꼭 끌어안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근데, 왜 여행은 온 거예요. 그렇게 우울하고 외로우면 오히려 한국에서 치료나 잘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게, 건제씨가 날 사랑한다고 하는 이유랑 무슨 관련인 거예요 대체?]


유광의 말을 듣던 하양이 맥을 끊으며 유광의 깊어지는 눈을 2023년 8월의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볍게 끌어온다.


"아아, 제 연애사가 너무 길었죠. 죄송해요. 이렇게 설명을 하다보면 좀 뒷 이야기와 제 이유가 더 와닿을까 했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이래서 제가 말이 부족하다고 했던 겁니다. 하양씨 죄송하지만, 5분만 제게 시간을 더 주실래요? 5분 안에 딱 이야기 마무리 할게요!"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이 마지막에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기는 유광의 얼굴을 하양은 처음으로 꽤나 호감형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할 일도 없고, 이대로 끊고 들어가기에는 대체 무슨 이유인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일 지라도 듣고나 가자는 생각을 한 하양이 마지막으로 남은 과자를 반으로 쪼개 유광에게 건넸다. 유광은


"역시, 이래서 한국인이 좋아요!"


라며 웃음과 함께 하양의 호의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4-1


"그러니까, 왜 건제님 마음을 이해했냐면- 제게 먼저 다가온 사람을 제가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느꼈거든요.


혹시 건제님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까봐. 처음에는 동경인지 사랑인지 분간을 못했습니다. 제가 인스타로 사진 관련 계정을 운영해요. 거기서 늘 댓글을 달며 칭찬해주던 어떤 사진 작가님이 계셨어요. 언젠가 만났으면 좋겠다 했는데, 글쎄 딱 1회성 소셜 살롱에서 만나버린 거예요. 서울에서 사진 찍는 사진 관련 소셜 모임에 제가 자주 나갔거든요. 그런데는 끝나고나면 다들 인스타를 공유하는데, 그 사람인 거예요!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어요. 실제의 이야기와 경험이 덧붙여진 그 사람 사진은 더욱 빛났고요.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그 친구가 제게 먼저 네 사진도 좋고, 그 사진을 찍는 순간의 네 눈빛이 참으로 아름답고 너답다며 고백을 해 왔습니다. 저는 물론 받아들였고요. 제가 그 사람에게 습관처럼 맞춰지려고 하면, 그 사람은 제가 찍는 사진들로 금방 알아챘어요.


그리고는 제게 [너는 너만의 사진일 때 가장 멋지다]며 은은하게 웃어주었고요. 저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게 진짜 연애라는 거구나,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완벽히 외로움에 깊숙히 새겨진 연애 습관이라는 건 몇 달간의 우울증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더라고요. 결국 제 사진이 점점 그 사람의 분위기와 비슷해지고, 저는 그 사람의 옷과 비슷한 옷색을 입겠다며 칭얼거리고 집 앞에 데려다주게 해달라고 허구한 날 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나를 붙잡아놓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인물사진을 잘 찍었거든요- 그 사람. 제 사진을 그렇게 한 시간인가 찍어주었어요. 수백여 장.


그러고는 저에게 그 사진들을 보정 없이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 이게 내가 좋아한 네 모습이야. 너만의 눈.

이 모습이 세상에 온전히 담기게 네 카메라에서 날 이제 빼 줄 시간이 왔음을 느꼈어. 네 사진에서.]


라고 하고는 스튜디오에 저만 남겨놓고 가방을 챙겨 떠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일랑입니다. 여기까지 단편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름 단편 소설은 다음 화인 5편이 끝입니다.

각자의 사랑, 그리고 관계 회복의 요상한 요즘 연애사.


모르는 사람이 알고 있는 친구보다 편하도록, 불편한 털어놓음.

최근 사람들은 소셜 살롱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불편함을 털어놓고는 하더라고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그리고 서로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다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미숙함.

그리고 오히려 사랑에 진심인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으면 했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세요.




가을 바람을 담은 햇빛에 놀라움과 사랑을 멀리서 담뿍 담아, 일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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