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golden in korea, too? yes

(4,5) 다시 한 번의 이별, 하양과 유광이 빛나는 순간은 지금

by 라화랑

4-2.


물론 엄청 충격적이었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계속해서 붙잡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홀연히 해외로 떠나버렸습니다. 뉴욕에서 새로 시작하겠다며, 지금까지 사랑해주심에 감사하다는 인스타 공지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모든 사진도 계정에서 지운 채로요.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이 찍은 제 얼굴을 다시 봤습니다. 저는 저를- 그렇게 오래 본 적이 없었어요.


울었습니다.

정말 많이- 제 인생에서 기억나는 가장 길고 큰 울음이었을 겁니다.


나를 한 번도 제대로 뜯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서 미칠 것만 같더라고요. 나를 모르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한동안 사진도 찍지 못하고 거울 앞에 강박적으로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나를 똑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드디어 부모님이 권한 상담 센터 치료도 받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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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점점 건강한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랑이라는 걸 딱 한 번 해봤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별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 대신 스스로를 붙잡고 견디게 되었어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그 단순한 말을 저는 처음으로 똑바로 받아들여 보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하는 사랑이라는 건, 계속 이유도 없이 부끄럽기만 해요.


저는 건제님이라는 그 분에게서 줏대 없는 사람이랄까, 그런 사람의 깊숙한 고통과 외로움이 느껴져요. 어른들이 말하는, 강렬하게 끌리는 여자에게 약간의 질투심, 부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아마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남에게 늘 기대는 저는, 삶을 당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부럽더라고요.


하양씨, 건제씨한테 먼저 좋아한다고 티도 내고 사귀자고 했죠? 건제씨는 그런 하양씨가 멋져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러웠을 겁니다. 사랑을 당연한 듯이 주고 받을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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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큰 건, 스스로를 제대로 세울 수 없는 자존감 없는 사람의 미칠 듯한 부끄러움일 거예요. 저도 제 사진이 멋지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혼자의 사랑으로 서기 전까지는요. 건제님은 시인이라고 하셨죠? 하양님이 보기에 굉장히 멋지고 완벽한 시도 건제님이 세상 밖으로 던지지 못하고 자신의 핸드폰만 계속 던져버리는 이유는 그 분도 저와 같이 스스로를 외롭게 했던 건 아닐까 싶네요.


다른 사람보다 마음으로 끌리는 여자가 바라볼 스스로가 두려워 밖에 못 나가겠던 순간을 저는 이해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훨씬 편하고 안락할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저는 제 앞에 눈물이 날 지언정 당당한 척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니까.


그 사람이 자취방에서 갑자기 당신이 찾아왔을 때, 안경을 벗고 있었다고 했죠? 그리고 왜 안경에 도수가 없는지도 그 날 고백했다고 했잖아요. 그건, 안경을 벗는 연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막연히 짐작해 봅니다. 남자 대 남자로써, 그냥 이상하게 느껴진다니까요. 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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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이 머리가 복잡한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유광을 흘겨본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말한다.


[그러니까, 정리를 좀 해 볼게요. 유광씨 말은 건제씨가 날 정말 사랑했고- 그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이라고요?]


"어, 아뇨. 맞긴 한데- 좀 어감이 달라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라는 표현 정말 좋네요. 그 외로운 영혼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지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던 겁니다. 세상보다 당신 앞에 서는 게 훨씬 두려우면서 짜릿한 일이라는 걸, 건제씨가 확실히 알게 되었을 때 아마 하양씨는 건제씨의 지난 혼자 스스로를 향해 싸우던 시간에 지쳐 헤어짐을 고했지 않았나- 짐작하는 겁니다.


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물론 누군가에게 늘 기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 덕분에 하양씨같이 말이 통하는 한국인 여자를 어떻게든 곁에 두려고 꼬시지 않고 그냥 친구로서 이야기를 하고 떠나보낼 정도는 컸습니다. 근데, 제가 이런 깊은 제 과거 이야기까지 다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먼저 하양씨가 솔직히 터놓고 말씀해주신 덕분입니다."


와인 한 병의 알코올마저 다 날라간 밤 11시 45분의 인도네시아 발리는 하양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유광은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양이 눈으로 꽤나 많은 맥주캔이 비워졌다는 사실을 짚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이 못마땅한 듯- 하양은 한숨을 푹 쉬며 재차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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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날 사랑했다고요? 정말로요? 난 아직도 못 믿겠어.]


"그럼요. 전 그 사람이 얘기한 비밀도 뭔지 알 것 같아요."


하양이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치며 유광의 등을 찰싹- 때리는 모양이 꽤나 친한 친구같다.


[뭐예요, 같은 우울증이라고 편드는 거예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요. 저 우울증인 사람 되게 싫어해요. 제 모습 보는 것 같아서. 제가 제 모습이 어떤지 보는 게 얼마나 고통인건지, 하양씨는 모를 수 있겠다.


아무튼, 그 사람이 말하는 비밀이란 건- 아마 하양씨가 이미 은연중에 알고 있던 걸 거예요. 생각보다 아주 단순한 진실.

건제씨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도 당신에게 끌리는 이 시간에 사정없이 흔들린다는 것. 그래서 용기내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한다는 것. 사실,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요?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던 사람이 하는 사랑하려고 한다는 시작 선언은 결국-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자신만 모르는 비밀 같은 거예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 사람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 말 한 적 없으니까.


이상하게 진심이 되니까 절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오히려 그저 기대고 싶을 때에는 술술 잘만 나오던 그 다섯 글자가. 왜 안 나오나 몰라."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동양인 여자 하나가 마지막으로 남은 맥주를 말 없이 한 병 더 까고, 그 앞에서 말을 끝마친 것에 후련한 남자가 웃으며 잔을 맞댄다. 타이밍 맞게 나타난 호스텔 주인이 이제 밤 12시이며, 즉 공용 거실을 쓸 수 없는 시간이라 고하고 둘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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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번에 말 없이 떠나는 쪽은, 의외로 유광이다.

쫓아왔던 사람답지 않은 민첩하고 조용한 몸짓으로 홀로 호스텔 체크아웃을 한다. 하양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광은 완벽한 이별 연습에 성공했다 스스로 생각하며 웃는다. 곧 유광이 부른 택시가 호스텔 앞에 서고, 잠시 숨을 고르고 호스텔을 천천히 카메라로 담은 그가 발걸음 가벼이 떠난다. 비가 여전히 오지만 유광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조금 젖어도, 혹은 꽤 많이 젖어도 괜찮은 새벽 공기라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린다. 유광의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한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남자 도미토리 숙소를 기웃거리는 동양인 여자는 찾는 사람이 체크아웃을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이내 웃는다. 테라스에 나가니 며칠동안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쳤다. 물기로 가득한 벤치를 손으로 슥슥 닦아 하양이 잠옷 차림으로 털썩 앉는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먼저 떠난 것이 신선하다.


자신이 놓고 간 모든 인연이 스쳐지나간다. 일부러 핸드폰 로밍을 하지 않았던 이주일 전의 스스로가 조금 민망해진다. 친구들이, 깜짝 놀라려나- 지금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인스타를 좀 올려 볼까. 지나간 인연을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는 하양의 손가락 끝, 미련을 담은 시가 써진다. 당신이 봐 주기를- 누군가를 처음으로 마음 열고 기다릴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는 하양의 눈빛에 반짝이는 눈물이 얼마간 사진처럼 담긴다. 하양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양의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한다.


두 사람을 담았던 STAY GOLDEN이 비에 씻겨나가 반짝이도록 눈부신 외관을 뽐내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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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랑입니다.

이 단편은 여름, 이별, 그리고 호우주의보를 엮어 탄생한 이야기들입니다.


처음 스케치는

이별이 싫은 남자, 유광

이별이 사랑보다 쉬운 여자, 이하양


딱 두 문장의 설명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상상과 청춘들의 속 터놓음이 연결되어 이야기가 완성되니

무척 뿌듯하면서도 사실은 모두 어떠한 날의 제 한 조각들인지라

저를 터놓는다는 점에서 부끄럽기만 하기도 합니다.


저의 어떤 한 조각이 뚝 떼어진 유광과 이하양이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2023년의 9월에는 - 사랑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따스한 나날들 보내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젠가- 여름 다음의 시간들인

가을과 사랑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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