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개팅 동상이몽 류별편
[유광 진짜, 이번에는 확실한 거지? 나 또 지난번처럼 이유도 없이 바람맞는 거 아니지?]
-아 진짜. 이번에는 진짜 아니야. 나 인스타에서 우리 단체 사진 보여줬거든? 그 지난번에 낭독극 했을 때 그 때 사진 말야. 어어 2주 전에 너 뭔 야상같은 거 입고 찍은 그거. 아무튼 그 사진을 보더니 그 형님이 너를 콕 찍으면서 이 사람 소개시켜 달라고, 너무 예쁘시고 마음에 든다고 나한테 그랬다니까. 에헤이- 그 지난 번에는 미안하다니까. 이번에는 좀 믿어 봐라 좀!
뭘 잘했다고 자기가 더 큰 소리야, 이유도 없이 까인 건 나구만. 흘낏 째려보는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헤헤 웃어넘기는 남자가 여자의 접시에서 육회를 집는다. 입에 얼른 넣어버리는 남자를 여자가 더욱 매섭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쉰다.
그래, 저 유광같은 애한테 남자 소개를 의심도 없이 덥썩 받은 내 잘못이다.
내가 경계를 풀어버린 탓도 있으니 이번만은 넘어가준다.
생각하는 여자는 곧 그들의 테이블에 도착한 신랑 신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느라 바쁘다. 그런 여자 몰래 과도한 손짓과 발짓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표하는 남자, 유광은 다음 날 정말 약속대로 웬 남자의 전신 사진 몇 개와 전화번호, 이름, 직업을 카카오톡 메세지로 보냈다. 물론 받는 사람은 어제 그 여자, 류별이다. 유별말고 류별. 어릴 적 류별의 같은 반 학생들이 한 번쯤 놀렸던 그 별명을 류별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쟤 유별난 애라며?]
하는 수근거림이 류별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 같은 봉사단체에서 같은 유씨라고 신나서 방방 뛰며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가, 첫 날부터 류별에게
"뭐 저런 사람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고 막 부르는 사람이 봉사를 한대요?"
라는 냉기 폴폴 휘날리는 무시를 받았던 유광은 류별의 까칠함과 대놓고 두는 사회적 거리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를 챙겼다. 작년인가 언젠가 여름에 발리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자꾸 겹쳐 보인다나 뭐라나. 처음에는 자신을 향한 되도 않는 껄떡거림이라고 생각한 류별이 어느새 유광에게 스며들어 있는 대로 짜증을 다 내기 시작하고, 이를 본 봉사단체 회원들이 멋대로 '유류 남매'라는 이름을 붙여 둘의 싸움을 관전하는 게 익숙해진 어느 날- 유광이 류별에게 소개팅을 주선했었다. 멀쩡한 몸과 직업, 나이 두고 쓸데없는 독수공방 하지 말라며 이미 남자에게 류별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전달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또 얼마나 머리 끝까지 화가 가득 차올랐던지- 일찍 도착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먼저 시켜놓고 화장실 거울로 연신 머리를 정리하는 그녀가 다시 한 번 그날의 분노가 떠오른다는 듯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가 푼다. 그리고는 왼쪽, 오른쪽 눈을 번갈아 거울에 들이밀며 오랜만에 한 마스카라가 눈 밑에 번지지 않았는가 가벼이 확인한다.
[이번 소개팅은 그래도- 진짜 만나기 까지는 하네. 유광, 네가 도움이 될 때도 다 있고.]
[그치? 나 쓸모 있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랑 잘 지내자 이 말이야- 다음 주에 활동 끝나고 회식 있는 거 알지? 너 또 투표 안 했더라? 좀 이번에는 같이 가자! 가자아아아아- 가자고오오-]
카톡을 보내자, 10초안에 1이 사라진다. 역시, 사람 좋아하는 비글 같으니라고. 뭔 핸드폰을 맨날 들고 사나. 늘 얘만 보면 달려나오는 한숨은 기본, 고개 저음은 옵션이란 말이야. 다시 한 번 생각에 빠진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한다. 4시 30분 약속이니, 지금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다. 10분 정도 남겨놓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유별에게
'저는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습니다. 남색 자켓을 입고 있어요. 오시면 메세지 주세요.'
류의 연락을 먼저 하곤 했는데, 이 사람은 왜인지 약속 시간 1분 전인데도 가타부타 어디냐는 연락이 없네- 류별은 괜히 핸드폰 자판을 툭, 툭 엄지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며 먼저 자신이 도착했다며 메세지를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때였다.
가벼운 움직임에 살풋 풀내음이 닿는다. 고개를 들어 향의 근원지를 본능적으로 찾는다. 류별은 직감했다. 저 사람이구나. 하얀색 폴로 셔츠에 회색 캐주얼 정장 자켓, 검은색 슬랙스를 단정히 일요일 오후에 차려입고 노트북이나 책도 없이 혼자 카페에 들어서는 남자는 소개팅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름 신경쓴 태가 나는 외형에 성실함으로 합격점을 준 류별이 남자를 보며 손을 흔든다. 남자는 휘적거리는 손의 주인을 금세 알아보고 어색하게 웃는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혹시 소개팅 하러 오신 분 맞으실까요? 저- 제가 류별이에요. 그 유광이요.]
-네, 안녕하세요. 혹시 유광씨가 제 사진을 보여줬나요? 저인 줄 어떻게 아시고 …
[그냥, 감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앉으실까요? 제가 먼저 와서 자리 잡아놓긴 했거든요. 혹시라도 자리 없을까봐. 어, 그리고 여기가 불편하시면, 다른 곳으로 옮기셔도 돼요. 저는 아무 자리나 정말 상관없이 막 잡은 거라.]
이런 대화는 일주일 전에 했어야 했는데.
그 거지같이 예의 밥말아먹은 새끼가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기지만 않았어도. 그건 뭔 개매너래?
속으로 읊조리는 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류별은 더욱 눈 앞에서 괜찮다며- 이 자리 참 좋다며 자신의 자켓을 벗어 내려놓는 남자를 향해 싱긋 웃는다. 그리고 다시 지난주로 샛길.
유광이 참 좋은 남자라며, 자신의 눈을 한 번 믿어보라며 난리굿을 치는 바람에, 그리고 원체 먼저 연락이 온 사람을 매정하게 끊어내는 법을 모르기에,
'안녕하세요, 유광에게 연락처 전해 받은 사람입니다. 저녁은 드셨나요?]
하는 연락에 답장을 하기 시작한 게 무려 4주 전부터였다. 궁금하지도 않는 출근 시간 하늘 사진에, 퇴근 후 운동하는 방법까지 미주알고주알 잘도 카톡으로 떠들던 남자는
'죄송하지만 제가 해외 출장이 곧 예정되어 있어서요.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뵐 수 있을까요?'
라고 말했고, 류별에게 마침 그 날은 몇 달 전부터 예매했던 발라드 가수의 공연날이라 안 된다고, 다음 날짜를 잡자고 했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
'아- 그럼 제가 열흘 정도 죄송하지만 해외 출장 먼저 다녀온 뒤에, 좀 한가해지면 연락 드려도 될까요?'
라고 했었지. 그리고 나서 류별은 열흘이라는 한글이 언제 뜻이 변했나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열흘은 10일이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열흘 플러스 좀 더 한가해진 뒤'는 기약이 없는 내년 쯔음인가 보다- 하며 잊고 살 무렵, 마침 낭독극 봉사 연습으로 만난 유광을 만났다. 그래서
[그러고 보니 그 남자분 연락이 안 왔다. 무슨 일이냐?]
며 물었고, 그제서야 류별은 그 새 새로운 여자를 만나 자신에게 연락 할 필요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유광이 자신이 대신 미안하다며 싹싹 빌었고, 류별은
'네가 뭐 미안할 게 있냐. 예의 없는 그 남자가 잘못된 거지. 근데, 너 한 대만 맞자.'
며 무시무시한 얼굴로 쓸데 없는 짓을 한 주선자의 팔뚝을 세게 내리쳐 버렸지.
...세요?
[으에, 예]
어떤 계절 가장 좋아하세요, 류별씨는? 저는 가을이 참 좋아요.